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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성과 높이고 싶다고? 자리 배치부터 바꿔라

비효율적 MIT '빌딩20' 노벨상 수상자 9명 배출…개인 공간 확보하되 '연결'해야

2018.04.23(Mon) 09:57:47

[비즈한국] 기업이나 국가가 경쟁자보다 앞서 나가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예전에는 간단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게 최선이었다.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세포이(인도의 용병집단)를 고용해 무굴제국을 멸망시키고 식민지를 개척해나간 과정을 보면 ‘전쟁이 혁신을 이끈 동력’이라는 말에 상당 부분 동의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전략을 쓰기 힘들다. 일단 핵무기가 개발되어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 이전에 함께 멸망할 가능성이 높아진 데다 명분 없이 전쟁했다가 오히려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보라!). 따라서 물리적인 군사력을 투입해 우위를 점하고, 더 나아가 상대를 식민지로 만들어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경쟁우위를 만들고, 또 일단 만들어진 우위를 지속할 수 있을까?

 

답은 바로 생산성에 있다. 여기서 생산성이란, 투입된 자원에 비해 얼마나 많은 산출물을 내놓느냐를 측정한 것이다. 예컨대 2000만 원에 팔리는 승용차를 5000명이 연 100만 대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동일한 인력과 설비를 활용해서 차를 연간 120만 대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 회사의 생산성이 20% 향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일 다른 기업들의 생산성 수준이 고정되어 있다면, 이 회사는 개선된 생산성을 기반으로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가격을 인하할 수도 있고, 또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행사의 스폰서로 나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에어비앤비의 본사 내부. 직원의 개인 공간을 확보하되 다른 사람들과 자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다. 사진=에어비앤비


더 나아가 기업들의 생산성이 날마다 개선된다면, 이 나라의 경쟁력도 쑥쑥 성장할 것임에 분명하다. 물론, 어떤 나라가 가장 생산성 향상속도가 빠르고 또 혁신적인지 정확하게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시장에서 가격은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데다 지금 팔리는 상품이 정확하게 어떤 이에 의해, 또 어떤 과정에 의해 생산되었는지를 측정하기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성을 측정할 때는 공장이나 연구소 단위의 1년 결과물을 가지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측정과 연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야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히 합의된 것은 없다. 

 

가장 대표적인 논쟁점이 연구실 혹은 사무실의 ‘최적 자리 배치’ 문제다. 개방형 구조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지, 아니면 각자 방을 하나씩 주는 게 생산성을 향상시키는지를 둘러싸고 20년 넘게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이 대목에서 최근 흥미롭게 읽은 책 ‘명저, 비즈니스에 답하다’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1990년대 초 맥길대학교 케빈 던바 교수는 과학자들이 어떻게 탁월하고 위대한 발견을 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일반적인 방법을 활용하지 않았다. 단순히 업적과 논문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분자생물학 실험실 4군데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학자들이 연구하는 모습을 가능한 많이 촬영했다. 동시에 과학자들과 광범위한 인터뷰를 실시하면서 각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추적하였다.

 

이 결과,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열심히 고독과 싸우다가 갑자기 놀라운 발견을 하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던바의 연구는 과학자들의 탁월한 발견이 고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10명 남짓의 학자들이 모여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최근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정기적인 실험실 모임에서 나온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혁신의 시작은 현미경이 아니라 과학자들을 연결해주는 회의탁자라는 네트워크였다. -책 140쪽

 

이 이야기를 들은 많은 기업들은 연구실 및 사무공간의 재배치에 착수했다. 책상과 칸막이를 없앤, 이른바 열린 사무실을 도입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이어졌다. ​

 

세계적인 IT 컨설팅 회사, 애틀랜틱시스템스길드의 주임 컨설턴트인 톰 디마코는 수많은 사무실을 방문해 사무공간과 생산성의 관계를 연구했다. 그는 동료인 티모시 리스터와 함께 세계 최고와 최악의 프로그래머를 가리는 코딩 테스트를 고안해냈다. 이 테스트에는 92개 회사의 개발자 600명이 자신의 사무공간에 코딩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참가했다. 테스트 결과, 최고 프로그래머 그룹과 최악 프로그래머 그룹은 성과가 10배 차이 났다. (중략)

 

이들의 성과를 갈라놓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연구 결과, 경력이나 연봉 그리고 테스트에 투자한 시간 등은 설명력이 높지 않았다. (중략) 그런데 테스트 결과에서 한 가지 패턴이 눈에 띄었다. 성적이 좋은 프로그래머들은 같은 회사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서로 힘을 합친 것일까? 아니다. 참가자들은 이 코딩 테스트에 대해 일체의 대화도 하지 못한 채 홀로 작업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차이였을까? 

 

최고의 성과를 낸 사람 중 62%가 업무공간에서 사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고 말했다. 반면 최악의 성과를 낸 사람 중에서는 고작 19%만이 사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고 했다. 최고의 성과를 낸 그룹 중 38%만이 테스트 도중에 주변의 불필요한 방해가 자주 있었다고 말한 반면, 최악의 성과를 낸 그룹은 무려 79%나 주변에서 불필요한 방해를 겪었다고 말했다. -책 140~141쪽

 

결국 프로그래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생활이나 개인공간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은 케빈 던바 교수의 주장과 배치되지 않는다. 간단하게 말해, 각자에게 개인적인 공간을 제공해주되 통로나 혹은 회의실에서 동료들이 자주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배치하라는 것이다. 

 

‘MIT 빌딩20’이 이런 식으로 배치된 건물이었다. 1943년 2차세계대전 중에 지어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허름한 3층짜리 건물 ‘빌딩20’은 전쟁이 끝나면 6개월 이내에 철거된다는 조건으로 지어졌기에 환경이 엉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엉망진창의 건물은 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특히 적의 비행기를 신속하게 포착하는 레이더 기술을 발명함으로써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왜 이 건물에 일하던 연구자들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위대한 성과를 남겼을까?

 

그 이유는 바로 ‘비효율’에 있었다. 건물을 대충 짓고 또 제대로 관리도 되지 않아 연구실 번호가 제각각이어서, 자기 방을 찾으러 가다 다른 연구실을 찾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E226호는 빌딩20의 E동 2층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엉뚱하게도 3층에 있는 식이었다. 특히 엘리베이터가 없는 저층 건물이라는 게 이동거리를 더욱 길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 

 

끝도 없이 이어진 복도를 따라 자기 방을 찾아가다가 복도에서 다른 과학자들을 만나 잡담을 나누고 또 리쿠르팅을 서로 했던 것이다. 자기 연구가 어떤 상태인데, 괜찮은 사람 있는가, 묻고 떠들고 잡담하는 가운데 막혀 있던 문제가 풀리는 기적 같은 경험이 매일처럼 벌어졌던 셈이다. 빌딩20은 부지불식간에 ‘효율적인 공간 만들기’ 실험무대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

 

MIT의 빌딩20. 대충 지은 탓에 연구실 번호도 제멋대로여서, 과학자들은 끝도 없이 이어진 복도를 따라 자기 방을 찾아가다가 복도에서 다른 과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을 구했다. 이런 비효율이 놀라운 생산성을 낳았다. 사진=MIT


반면 한국의 사무 및 연구공간 배치는 MIT 빌딩20의 대척점에 서 있다. 높은 직급일수록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직급이 낮은 사람들은 개방된 공간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일한다. 물론 직위 높은 사람들이 더 생산성이 높을 수 있기에 ‘사적인 공간’을 배려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름 일리가 있다. 오랜 경험을 쌓은 데다 훨씬 네트워크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00년대 정보통신혁명이 시작된 이후 경쟁구도가 날로 달라지는 세상이 출현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버나 테슬라, 아마존 같은 무서운 경쟁자들이 산업을 나누었던 칸막이를 부수고 있는데, ‘과거의 경험’이 지속적으로 유용할지도 고민해 보자는 이야기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누구나 쳐다볼 수 있는 개방된 공간보다는 칸막이 하나라도 쳐진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배려하고, 더 나아가 구분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연결하기보다는 조금 둘러가게 디자인해 다른 부서의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복도나 작은 회의실에서 손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평등한 분위기를 형성하도록 유도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모든 공간을 재배치하자는 것은 아니다. 연구개발이나 마케팅 등 창의성이 중요한 부서부터 바꿔보자는 제안일 뿐이다. 인적자원 말고는 제대로 된 자원 하나 가진 것 없는 한국에서, 자리 배치 한 번 바꿔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다면 크게 남는 장사 아니겠는가.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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