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손자병법에는 전쟁이 국가의 존립과 폐망을 좌우하는 중대한 일이고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적의 변화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다양한 전략 전술을 사용해야 승리할 수 있으며 (중략) 용병을 하는 경우 적을 기만하는 방법을 활용할 수도 있고, 적에게 이로움을 보여줌으로써 적을 유도할 수 있으며,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병력을 움직이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는 등 탄력적인 용병을 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취지가 기재돼 있습니다. 수천 년 전부터 제기되는 이런 주장에 대한 양측 입장은 무엇입니까?”(‘노컷뉴스’ 2015. 10. 31. “원세훈 사건에 ‘손자병법’ 인용?…황당한 재판부”)
지난 19일,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발각된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정치 관련 댓글 등은 공무원의 선거개입으로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과 간부들이 공모하고 지시해 진행된 것이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제18대 대선을 8일 앞둔 2012년 12월 11일 민주당 의원들이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에 선거 관련 댓글을 올리는 등 대선에 개입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해당 직원이 살고 있는 역삼동 한 오피스텔로 찾아간 것에서 시작됐으니, ‘유감스럽게도’ 5년 4개월이 지나서야 법원이 사건을 종결한 것이다.
5년 4개월 동안 ‘1심→2심→대법원 파기환송→파기환송 뒤 2심→대법원’ 등 다섯 번의 재판만큼이나 우여곡절도 많았다. 검찰이 2013년 6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기소했지만, 당시 권은희 수사과장과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은 경찰과 검찰 수뇌부의 수사 축소 압력을 주장했다.
2014년 9월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에서 국정원법(정치개입) 위반은 유죄지만 선거법(선거개입) 위반은 무죄라며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자, 김동진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에 “상식과 순리에 어긋나는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의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지록위마’는 교수들이 선정한 2014년의 사자성어로 뽑혔다.
이후 2심인 서울고법 형사6부는 2015년 2월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뒤집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5년 7월 전원합의체를 통해 대법관 13명 만장일치로 2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원 전 원장의 유·무죄에는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은 채 국정원 직원의 전자우편 첨부파일 2건의 증거능력만 문제 삼았다.
대법원 파기환송 뒤 2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7부는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재판을 1년 7개월이나 끌었다. 거기다 2015년 10월 원 전 원장을 보석으로 풀어주기도 했다. 법관 인사로 재판장이 바뀌고 나서야 원 전 원장은 선거법 위반이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다시 수감됐다. 재판장이 교체된 지 6개월 만인 2017년 8월이었다. 이때는 이미 국정원 댓글사건과 연관된 18대 대선에서 당선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고 구속된 상태였다.
법원은 ‘국민의 권리를 수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정의된다. 이를 위해 헌법에서 법관의 신분과 법관의 재판독립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 댓글사건에서 보여준 법원의 모습은 이런 법원의 정의와 동떨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만장일치로 원 전 원장의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파기환송한 것이나, 파기환송된 사건을 1년 7개월이나 끌면서 국정원의 댓글 활동을 뜬금없이 ‘손자병법’에 적용하는 황당한 질문을 해 부장검사가 자리를 박차게 한 재판부가 과연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최후의 보루였다고 할 수 있을까.
국정원 댓글사건은 지난 정권 내내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든 사건이다. 5년 4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법원은 국정원 댓글 사건을 종결했어야 하고, 분명히 종결할 기회가 있었다. 최소한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에 종결하는 기개가 필요했다. 정말로 ‘유감’스럽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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