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1일 포스코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미래비전 선포식을 열고 글로벌 100년 기업으로서의 미션과 비전을 발표했다.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68년 연결매출 500조 원, 영업이익 70조 원을 달성하자는 목표다. 이 자리에서 권오준 회장은 미국의 테드(TED) 강연 방식으로 ‘한계를 넘자(Unlimit the Limit: Steel and Beyond)’는 미션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 미래선포식 이후 불과 17일 만에 권 회장은 긴급 이사회를 열고 사의를 표명했다. 2014년 3월 제8대 포스코 회장에 취임한 후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했으나 임기 2년을 남겨두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와 함께 역대 포스코 회장들이 모두 정권과의 풍파를 겪으며 불명예스럽게 사퇴한 흑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포스코는 1968년 창립된 포항종합제철이 전신이다. 설립 추진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작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금 마련의 어려움으로 무산됐지만,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로 받은 일본 배상금 7370만 달러, 일본수출입은행 상업차관 5000만 달러와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의 기술 지원을 받아 창립되었다.
당시 임직원들이 ‘롬멜하우스’라 불리는 건설사무소에서 새우잠을 자고 영일만 모래가 섞인 밥을 먹으며 제철소 건설에 매진한 일화는 유명하다. 1973년 국내 최초 조강 103만 톤의 설비가 준공돼 가동을 시작했다. 1985년엔 광양만 공장을 착공해 1992년 준공했다. 포스코는 1998년 한때 세계 1위 철강회사에 오르기도 했다.
1988년 주식 일부를 국민주로 공개한 데 이어, 1998년 포항제철은 민영화를 선언하며 사명을 포스코로 변경했다. 포스코는 외국인 지분이 57%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을 자청하지만 특정 지배주주는 없다. 현재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11.08%), 2대주주는 씨티뱅크.N.A(10.56%, 2017년 사업보고서 기준)다. 씨티뱅크.N.A는 단순 DR(주식예탁증서) 수탁기관이다.
8대 회장인 권오준 회장의 전임자인 박태준·황경로·정명식·김만제·유상부·이구택·정준양 전 회장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한 이력이 있다. 대부분 재임 당시 정권과의 불화로 물러난 것이 공통점이다.
박태준 초대 회장(1968년 4월~1992년 10월)은 짧은 시간 포스코를 세계적인 철강업체로 키운 일등공신이면서 포스코가 정치권과 엮이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포항제철 대표이사 회장을 겸임하면서 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회장 재임 중 민정당 대표를 지냈으며 포스코 회장에서 물러난 뒤 자민련 총재를 했다.
그가 물러난 이유는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박 회장은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직을 거절한 뒤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히고 회장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1993년에는 뇌물 수뢰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포스코 회장에서 5개월 만에 물러난 황경로 2대 회장(1992년 10월~1993년 3월)은 한 인터뷰에서 “1992년 포항제철 회장이 될 때 (노태우)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권력 실세의 개입으로 물러나야 했다”고 말했다. 당시 ‘권력 실세’는 김영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행정실장과 대통령 민정비서관, 사정비서관을 지낸 K 전 의원이라고 직접 말했다. 황 전 회장 역시 수뢰 혐의로 철창신세를 져야 했다.
정명식 3대 회장(1993년 3월~1994년 3월)도 취임 1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황경로 회장과 마찬가지로 정 회장도 ‘박태준 회장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1994년 1월 초, 인사 문제 등으로 정 회장과 조말수 사장 간의 갈등이 발생했고, 이어 2명 모두 동반 사표를 제출했다. 1년 6개월 사이 네 명의 회장이 포스코를 거쳐 갔다.
김만제 4대 회장(1994년 3월~1998년 3월)은 첫 외부 출신이자 유일한 영입 사례로 남았다. 미국 덴버대학교 경제학 학사, 미주리대학교 경제학 박사를 받은 그는 한국개발연구원장,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한미은행장, 재무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삼성생명 회장,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포스코 내에서는 ‘사장-부회장-회장’ 순으로 승진하는 절차를 깼다는 이유로 김 회장에 대한 뒷말이 많았다. 김 회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4년간 포스코 회장을 맡았고, 김대중 정부 출범과 동시에 사임했다. 포스코 퇴임 후에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유상부 5대 회장(1998년 3월~2003년 3월)의 임기는 정확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와 일치한다. 당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의 한 축을 담당한 자민련의 총재가 박태준 전 회장이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박태준 총재와 유상부 회장 등 ‘TJ(박태준) 사단’이 감사원 감사를 통해 김만제 전 회장 체제의 흔적을 지울 기회로 여겼다는 설이 돌았고, 결국 김만제 회장은 사임했다. 유상부 회장은 연임에는 성공했으나 잔여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물러나야 했다.
이구택 6대 회장(2003년 3월~2009년 1월)은 노무현 정부 5년을 포함해 6년 가까이 재임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퇴했다. 이 회장의 연임이 결정되던 2007년 2월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CEO후보추천위원회는 ‘포스코가 오너 없는 기업인 만큼 CEO 교체 후 경영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투명한 승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경영진에 요구했다.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기존 CEO가 연임하려는 폐단을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뒤 CEO 추천위원회는 윤석만 포스코 사장과 정준양 포스코건설 사장이 회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당시 회의석상에서 윤석만 사장은 외압을 폭로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치권의 인사 개입 의혹 등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정준양 사장이 7대 회장에 올랐다.
정준양 7대 회장(2009년 1월~2014년 3월)은 이명박 정부 시절 취임한 후 박근혜 정부에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서울대학교 공업교육과를 졸업한 정 회장은 1975년 포스코에 입사한 후 제강기술과장, 제강부장, 생산기술부장, 광양제철소장, 생산기술부문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생산 및 기술 분야 전문가다. 정 회장은 각종 비리와 비자금 의혹이 제기되며 박근혜 정부 출범 후 1년 뒤 사퇴했다.
권오준 8대 회장(2014년 3월~2018년 4월)은 엘리트 엔지니어의 길을 걸었다. 1950년 경상북도 영주시 출생으로 서울사대부고,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 졸업 후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을 지내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유학길에 올라 소재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피츠버그에서 기술연구원으로 있다가 1986년 포스코 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포스코 기술연구소장, 유럽사무소장,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원장, 포스코 부사장(기술부문장), 사장을 지냈다.
권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인 2017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두 달 뒤인 5월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6월 미국, 11월 인도네시아, 12월 중국을 방문할 때 경제사절단에 권 회장이 참여하지 않아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방미 경제사절단에선 포스코가 제외됐으며, 인도네시아와 중국 방문 시엔 계열사 임원이 동행했다.
권 회장의 사퇴 의사 표명 이유로 사실상 외압에 의해 자진사퇴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시민단체가 포스코건설 등 전·현직 경영진 7명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검찰이 첨단범죄수사2부에 맡기며 수사를 본격화하고, 국세청의 세무조사설도 계속 나오고 있다.
포스코는 이런 분석에 대해 “권 회장이 취임 후 지난해까지 4년간 재무구조 강화, 사업구조 개편 등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신성장동력 발굴에 매진하는 강행군 속에 피로가 누적됐다”며 “최근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조언이 있었고, 최근 창립 50주년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다음 50년을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주변에 사퇴 의사를 밝혀 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포스코 관계자는 “권 회장의 사퇴 의사 표명에 정치권의 압력설이나 검찰 내사설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덧붙였다.
우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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