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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자욱한데 'SUV 열풍'…놔둬도 괜찮은 걸까

해외에선 디젤차 판매 꺾였지만 우리는 잘 팔려…"노후 디젤 폐차 등 대책 새워야"

2018.04.18(Wed) 13:26:45

[비즈한국] 1999년 도쿄도청, 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자민당 소속 이시하라 신타로의 취임식이 열렸다. 이시하라 지사는 굳은 표정을 짓고 새카만 물질을 가득 채운 페트병을 들고 취임식장에 들어섰다. 디젤 자동차에서 나온 환경오염 물질이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디젤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디젤차 비중은 전체의 20%밖에 안 되지만 자동차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분진과 질소산화물의 70%를 배출하고 있다. 도쿄에서 하루 500ml 페트병 12만 개 분량의 먼지가 디젤차에서 나오고 있다.” 

 

이시하라의 취임식은 일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중심으로 늘어나던 디젤차 보급이 급격히 꺾였다. 전 세계적으로 가솔린차가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한다는 지적과 함께 연비 좋은 디젤차가 친환경적이라는 여론이 조성되던 때였다. 이시하라의 발언으로 도요타 등 대다수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은 디젤을 포기하고, 가솔린과 전기를 혼용하는 하이브리드 차량 개발로 노선을 선회했다.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 카페 회원들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의 한국. 미세먼지의 공습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전라남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이 뿌연 먼지구름에 잠겨 있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이 3월 23~27일 서울의 고농도 미세먼지(PM2.5)를 분석한 결과 국내 요인이 최대 6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류 등 날씨에 따라 중국 등 해외 유입량이 바뀌기 때문에 항상 국내 요인이 더 크다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먼지 성분을 따져봤을 때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미세먼지를 배출한다는 것이 연구원의 조사 내용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국내 미세먼지의 가장 큰 요인으로 디젤차를 꼽는다. 3월 22일 열린 ‘미세먼지, 자동차와 환경’ 토론회에서 김용표 이화여자대학교 엘텍공과대학 교수는 “질소산화물과 유기화합물이 햇빛을 만나면 미세먼지가 된다. 경유차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은 반응 속도가 매우 빨라 경유차의 조기 폐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자동차 시장에 SUV를 중심으로 한 디젤차 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코나(현대자동차), 티볼리(쌍용자동차), 스토닉(기아자동차), 싼타페(현대차), G4렉스턴(쌍용차), 쏘렌토(기아차) 등 각 제조사들은 세그먼트별로 SUV 모델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며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현대차 코나는 지난해 7월 출시된 뒤 약 2만 3500대를 파는 등 매달 3600~4000대의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스토닉 판매량 역시 매달 1600대를 웃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1~2월 국내 승용차 판매량(10만 4300대) 중 6만 8300대가 SUV였다. 전체의 65.5%다. 현대차는 올해 출시되는 신차 6대 가운데 5대를 SUV로 배치했다.

 

미세먼지 배출량이 많은 디젤차들이 SUV 인기를 업고 대거 출시됐다. 위에서부터 현대자동차 코나, 현대자동차 싼타페, 재규어 E-페이스, 폭스바겐 티구안. 사진=우종국 기자


수입차 업체들도 가세했다. 16일 재규어가 소형 SUV ‘E페이스’를 출시한 데 이어, 17일에는 지프가 중형 SUV ‘뉴 체로키’를 선보였다. 폴크스바겐은 18일 준중형 SUV ‘티구안’을 출시했다. SUV를 전략 차종으로 꼽은 셈이다. 

 

매일 미세먼지와의 전쟁을 치르면서도 소비자들은 주로 디젤로 구동하는 SUV를 선택한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이다. 디젤차 연비는 가솔린보다 20~30% 높은 데 비해, 연료 가격은 20~30% 저렴하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도심 주행 환경에서는 가솔린보다 디젤의 연비가 더 좋다. 

 

실내가 넓고 캠핑 등 야외 레저용으로 활용하기 좋다는 점도 SUV를 구입하는 이유다. 제조사로서도 디젤 엔진의 개발비가 저렴한 데 비해 차값은 가솔린 모델보다 비싸 이익이다. 정부도 2000년대 초 디젤이 친환경 연료라며 보조금을 지급하며 보급에 앞장섰다.

 

해외에서는 디젤 SUV의 인기가 한풀 꺾였다. 폴크스바겐의 ‘디젤게이트’ 등으로 디젤차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고,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돼서다. 독일 자동차공업협회(VDA)는 올 1분기 독일 자동차 판매량 87만 8600대 가운데 디젤차의 비중은 32.3%에 그쳤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42.7%와 비교하면 10%포인트 이상 하락한 수치다. 독일 법원이 대기 문제 해결을 위해 노후 디젤차의 도심 진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놓은 점도 판매량 감소에 영향을 줬다. 독일에서는 디젤차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셈이다.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디젤승용차 판매가 부진하면서 유럽 내 디젤차 판매 비중은 2011년 55.6%에서 지난해 44.2%로 떨어졌다. 도요타는 유럽에서 디젤 승용차 판매를 종료하는 한편 올해 이후 나오는 신차의 경우 디젤엔진을 탑재하지 않기로 했다. 포르쉐와 FCA도 디젤차를 퇴출한다는 입장이다. 포르쉐의 이런 입장이 모기업인 아우디폴크스바겐 그룹사 전체로 퍼질지도 관심사다.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해외에서 디젤차 판매가 꺾이고 다시 가솔린이나 하이브리드 판매가 늘어나는 데 비해 한국과 중국은 유독 SUV를 중심으로 한 디젤차에 관심이 높다”며 “세단에 비해 SUV의 물량 수급이 원활하며 전시장 한가운데를 SUV로 배치하는 등 마케팅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미세먼지, 자동차와 환경’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정부의 환경 개선 예산을 노후 경유차를 없애는 등 전반적인 운송 에너지 사용의 전환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8년 봄, 미세먼지 광풍과 디젤차 열풍이 맞붙는 형국이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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