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혹시 ‘I feel Gucci’(아이 필 구찌)라는 말을 아는가? 여기서 구찌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를 일컫는다. 뜻은 ‘아, 좋다’. ‘That's Gucci’(댓츠 구찌)라는 말도 있는데, 이것도 ‘그거 좋네’다. 밀레니얼세대 사이에서는 구찌가 Good(굿)이나 Nice(나이스)라는 의미로, 그들끼리만 통하는 일종이 은어이자 속어인 슬랭이다. 아니 구찌라는 브랜드가 어떻게 했길래 밀레니얼세대가 이렇게 사용하는 걸까.
가수 제시가 2017년 발표한 곡의 제목이 Gucci이기도 하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명품 브랜드 구찌가 아니라 다른 브랜드도 나오고, 굳이 패션 브랜드 구찌를 도드라지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여기서도 구찌는 패션 브랜드 얘기가 아닌 밀레니얼세대가 쓰는 슬랭이다.
요즘 K팝스타의 곡은 단지 한국만 겨냥하고 만든 게 아니다. 제시의 구찌라는 노래도 해외에서 커버한 영상이 유튜브를 찾아봐도 많이 나온다. 영어권의 밀레니얼 세대도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도 모두 구찌를 ‘애정하는’ 셈인데, 1921년에 만들어진 거의 100년이 다돼가는 ‘구제’가 어떻게 밀레니얼세대가 사랑하는 브랜드가 되었을까.
실제로 패션계 ‘Hot Brand of The Year 2017’(올해의 핫 브랜드) 1위가 구찌다. 심지어 ‘Top Products of The Year 2017’(올해 최고의 제품)에서 1, 3, 4, 5위가 모두 구찌 거다. 2017년에 구찌가 얼마나 뜨겁게 사랑을 받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명품의 침체 시기, 구찌도 위기였는데 어떻게 그들은 부활했을까. 사실 이게 오늘 얘기가 아니다. 구찌가 잘나간다는 게 중요한 얘기가 아니라, 어떻게 밀레니얼세대에게 구찌를 사랑하게 만들었냐는 점이다.
구찌의 부활에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사람이 2015년부터 CEO(최고경영자)를 맡은 마르코 비자리(Marco Bizzarri)다. 그는 구찌의 위기를 밀레니얼세대의 외면으로 보고,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을 했다.
30세 이하 밀레니얼세대 직원들과의 모임인 Shadow Committee(그림자 위원회)를 만들어, 임원회의가 끝난 후 임원회의의 주제를 가지고 그림자위원회를 열고 다시 토론한다. 또한 35세 이하 직원들과 정기적인 점심모임을 열어 회사 문화와 복지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세 가지씩 가지고 토론한다.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로 회사 정책을 바꿨다. 즉 경영자가 밀레니얼세대 사원들에게 배운 것을 의사결정에 반영했다.
이런 변화 중 하나가 여행 애플리케이션(앱)이다. 명품 패션 브랜드가 왜 여행 콘텐츠를 만들까 싶었다면, 밀레니얼세대가 기성세대와 달리 여행을 필수라 여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구찌의 화보 촬영지를 비롯해 브랜드에 영감을 준 전 세계 플레이스를 소개하는 앱 ‘구찌 플레이스’를 2017년 9월 런칭했는데, 여행자가 이 앱을 가지고 여행하다가 구찌 플레이스가 가까워지면 알람을 보내고 화보 촬영 뒷얘기와 장소에 관련한 구찌의 스토리도 알려준다.
GPS를 이용해 마치 증강현실 게임 앱 ‘포켓몬고’처럼 배지를 모으게 하고, 이 장소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 컬렉션도 구입할 수 있다. 패션 브랜드와 여행을 결합한 셈인데, 여행을 좋아하고 자기만의 특별한 취향과 스토리를 좋아하는 밀레니얼세대의 특성을 잘 활용한 사례다.
또 다른 변화가 모피 사용 금지다. 2018년 봄 시즌부터 일체의 모피를 사용하지 않기로 선언했는데, 기성세대에겐 비싸고 좋은 최고의 소재가 모피였지만 밀레니얼세대에겐 모피가 더 이상 멋지고 고급스럽고 세련된 소재가 아니다. 동물을 죽여서 털을 벗겨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패션에서 활용할 소재는 기술적 진화로 많아진 데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밀레니얼세대가 모피를 꺼린다는 것도 반영된 결단이다.
모피뿐 아니라, 스타일링에서도 전형적인 구찌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에서 많이 벗어나는 중이다. 확실히 밀레니얼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과감히 관성적으로 낡은 것을 버리는 게 보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구찌는 잘나갈 듯하다. 밀레니얼세대에게 명품 브랜드는 구시대적, 부모님세대의 물건 같은 이미지지만 유독 구찌만은 그 평가에서 살짝 벗어나있기 때문이고, 올해 구찌는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
사실 오늘은 구찌 얘기를 빗대서 우리가 잘 모르는 대상과 비즈니스를 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얘길 해보고자 했다. 잘 모르면서도 내 경험에만 의존하거나 내 지위가 가진 힘만 이용한다면 얼마나 위험할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멋진 남자의 클래스는 잘 꾸민 외모만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
함부로 아는 척하지 않고, 남의 얘기 듣는데 좀 더 관대해지면 어떨까. 특히 후배의 얘기, 자기보다 나이도 지위도 훨씬 낮은 사람들에게 귀를 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보다 강력한 클래스가 또 있을까. 꼰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지만 현실에서 꼰대는 너무나 많다.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싫어하는 꼰대가 ‘X세대 꼰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애초에 베이비부머세대 꼰대는 말도 안 통하니 무시하면 그만인데 X세대 꼰대는 얼핏 말을 알아들을 것 같다가도 큰 벽을 느끼니 더 배신감 느껴진다는 거다. 꼰대가 되고 안 되고는 의지가 아니라 실행의 문제다.
꼰대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만 하지 말고 부디 귀를 열자. 자기 경험과 판단을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예전에 고수했던 스타일이라고 계속 그것만 고집하지 말고 과감히 패션스타일도 한 번 바꿔 봐도 좋다. 신기한건 세련된 패션, 과감한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중년들이 고집도 적고 귀도 잘 연다는 사실이다. 패션은 단지 옷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거울이기 때문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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