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을 가본 것은 사법연수원 2년차였던 2006년이었다. 장장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프랑스 수도 파리였고, 첫 방문지로 선택한 곳은 그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그동안 책에서만 접했던 모나리자, 비너스상 등 수많은 회화, 조각 등 예술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설렘을 안고 방문한 박물관 입구에서 예상하지 못한 더 큰 감동을 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루브르 박물관 팸플릿에 ‘본 관람 안내도는 삼성전자 프랑스법인의 후원으로 인쇄되었습니다’라고 표기된 한국어 안내 팸플릿이었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되고, 국내 기업들 광고만 봐도 우쭐 해진다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삼성은 일제 식민지배와 6·25 동란을 겪은 우리에게 커다란 자부심이 되는 세계초일류기업임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카린 밀수사건부터 시작하여 최근 이재용 부회장 구속까지 재벌개혁의 단초를 제공한 부정적인 사건들 또한 많았다는 점을 외면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이 2명이나 구속된 격동의 시절인 2018년에도 삼성과 관련된 법적 논란이 곳곳에 산재해있다. 대표적인 사건만 몇 가지 언급하면 이렇다.
1.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하면서 다스 미국 소송과 관련해 삼성으로부터 67억 74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뇌물)를 적용했다. 즉 삼성은 이 전 대통령의 다스 미국 소송 변호사비에 해당하는 위 돈을 뇌물로 주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09년 12월 31일 특별 사면되는 등 혜택을 누렸다는 것이다.
2. 삼성그룹 노무를 총괄하는 그룹 옛 미래전략기획실이 임원이 포함된 TF를 만들고 ‘노조 파괴’ 전문 노무사 등과 함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에 대한 대응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삼성전자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노조 탄압을 위한 부당노동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3. 지난 2월 대전고등법원은 삼성전자 온양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온양 공장에서 28년간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의 유족이 노동부를 상대로 낸 소송의 결과였다. 법원은 작업환경보고서가 ‘영업비밀’이 아니며, 노동자들의 건강과 알 권리가 더 중요하므로 공개하라고 밝혔고, 노동부는 정보공개 요청을 수용하겠다는 지침을 세웠다. 그러나 삼성은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해 공개를 막았다. 법원 판결까지 있었지만 이례적으로 집행정지를 받아준 셈이다.
4. 두 달 전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포괄적 현안인 ‘승계작업’ 및 이와 관련한 묵시적 부정 청탁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제3자 뇌물 혐의에 전부 무죄를 선고했고, 뇌물도 36억 원으로 대폭 줄여 이 부회장은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러나 지난 6일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받은 뇌물이 72억 원이라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있다.
재벌개혁은 검찰개혁과 더불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슈가 되는 주제다. 그만큼 중요한 과제지만 수십 년간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저항이 거세다는 것을 반증한다. 삼성은 “1등만 살아남는다”고 줄곧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공정경쟁, 분배정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는 삼성도 준수해야 하는 최고 규범이다. 과연 자타공인 국내 1등 기업인 삼성이 이를 준수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15조 6000억 원에 달하여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고쳐 써서 시장의 찬사를 받았다. 이제 영업실적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존경받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초일류 기업으로 삼성이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는 10년여 전 루브르 박물관에서 감동받은 그대로의 진심이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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