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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림 탐식다반사] '한 입에 10만 원' 국산 양식 철갑상어 캐비아의 호방함

15년 자란 철갑상어에서 채취한 알이 최상급…희생 없이 짜내는 기술이 '핵심'

2018.04.09(Mon) 17:04:15

[비즈한국] 캐비아란 뭘까. 세계 3대 진미라고는 하는데, 이제까지 그 평판에 걸맞은 감동을 받아본 적이 없다. 푸아그라처럼 한 접시의 메인이 되지 못하고, 트러플처럼 어마어마한 향으로 존재감을 뽐내지도 않는, 그래서 위조된 평판이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했던 존재. 마치 콩국수 위에 눈치 없이 뿌려진 무미건조한 깨처럼, 음식 위에 올라 앉아 비주얼이나 담당하는 덧없는 장식 같은 존재.

 

라는 선입견을 가진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음식 위에 ‘몇 알’ 얹어 두면 까만 것이 보기에 좋긴 한데 맛을 느끼기엔 너무나 적다. 한 알만 혀 위에 얹어 놓고 맛을 느껴보려고 안간힘은 써봤다. 맛은 들큰하고 껍질은 질긴 것이 영 별로. 직업상 남들보다는 많이 겪은 식재료지만, 이제까지 캐비어를 먹어본 바가 다 그랬다. 

 

순금이나 자개로 만든 숟가락에 수북이 얹어 먹는 것이 제대로 먹는 방법이라곤 하는데, 문제는 그 한 숟가락의 캐비아를 입 안 가득 넣어 보자면 한 입에 10만 원 꼴로 돈이 든다는 것. 그리고 한 식재료의 맛을 공부하기에 한 입은 부족하다는 것. 캐비아는 내게 그 정도 투자를 결정할 정도로 흥미를 끌지 못하는 식재료였다.

 

세상의 좋은 생선 알은 연어알도 있고, 저렴한 대구알이나 날치알도 있는데 굳이 무슨 캐비아. 심지어 맛으로 따지면 단연 매콤하고 쌉쌀한 청어알젓이 최고 아닌가. 겨울에 먹는 알찬 도루묵에 도치, 또 열빙어도 있고.

 

건방진 생각이었다. 사람이 모를수록 섣부른 결론을 내는 법이다. 지난 3월 30일, 충청북도 충주시 인근 남한강변의 ‘알마스 캐비아(ALMAS CAVIAR)’ 농장에 다녀왔다. 내륙 양식으로 철갑상어를 5만여 마리 키우고 있는 곳이다. 캐비아에 대해서는 의외의 사실이 많은데, 우선 내륙에서 양식이 된다는 점부터 의외다.

 

3월 30일 충주의 ‘알마스 캐비아’ 농장 풀밭에서 캐비아 코스 요리를 선보인 포시즌스호텔 서울 보칼리노 치로 페트로네 셰프. 사진=이해림 제공

 

그리고 철갑상어가 상어와 관계없는 별종 생물이라는 것도 의외다. 영어로 Sturgeon. 한국어의 옷을 입으며 생김새만 비슷한 상어와 혼동되게 됐다. 철갑상어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로, 2억 5000만 년 전부터 존재해왔다. 7년에서 15년 정도 성장기를 거치며 성어는 2킬로그램부터 2톤까지로 다양한 체급을 갖는다. 수명은 100년 이상으로 인간보다 오래 산다.

 

이 생물의 알을 인간이 무척 좋아하여 왕성하게 먹다 보니 멸종 위기에 처하기도 했는데, 배를 갈라 알을 꺼냈기 때문이다. 내가 굳이 캐비아에 관심을 두지 않은 데는 이 이유도 있었다. 연어는 살코기까지 알차게 먹기라도 하지, 철갑상어는 알만 빼먹고 살을 먹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생산자들은 철갑상어를 희생하지 않고 알을 얻는 지속가능한 방법을 고안했다.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기술이 핵심 기술이라 알마스 캐비아에서는 극비에 부쳤다. 

 

 

보통 캐비아는 까만 색을 띠고 있는데, 금빛 광택이 돌아 시각적으로 ‘부티’가 난다. 하지만 황금색을 띠는 캐비아도 있다. 몸이 황금색을 띤 철갑상어의 알이 그렇다. 캐비아의 색상은 철갑상어의 체색을 그대로 따라 나온다.

 

‘벨루가(Beluga)’라는 단어는 익숙할 텐데, 상품명이 아니다. 15년 정도 자란 철갑상어로부터 얻는 것을 부르는 말이다. 크기가 가장 크고 값도 가장 비싸다. 10년 이상 자란 철갑상어 알은 ‘오세트라(Osetra)’라고 하고, 7년 이상 된 철갑상어 알은 ‘세브루가(Sevruga)’라고 한다. 각각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을 상징 색으로 사용한다.

 

포시즌스호텔 서울이 이날 알마스 캐비아 농장에서 캐비아를 주제로 ‘풀밭 위의 식사’를 선보였다. 2일부터 시작해 5월 13일까지 이어가는 캐비아 프로모션 쇼케이스인 셈이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보칼리노’, 중식당 ‘유유안’, 일식당 ‘키오쿠’, 스피크이지 칵테일 바 ‘찰스 H’에서 캐비아를 활용한 메뉴를 대대적으로 선보인다. 

 

그간 푸아그라나 트러플 프로모션은 익숙히 볼 수 있었지만 캐비아를 이토록 호방하게 내세운 프로모션은 포시즌스호텔 서울이 처음이다. 그리고 가족끼리 조용히 운영해나가는 알마스 캐비아는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서 이렇게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도 포시즌스호텔 서울과의 협업에서 처음이다.

 

항생제 등을 쓰지 않고 키워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알을 정중하게 뽑아내 천일염만으로 절인 캐비아를 최적의 음식 조합으로 맛 봤다. 세계 3대 진미라는 호들갑스러운 이름에 처음으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짭짤한 고대생물의 알 맛이 입 안을 봄볕처럼 채운 풀밭 위의 미식이었다.​

 

필자 이해림은? 패션 잡지 피처 에디터로 오래 일하다 탐식 적성을 살려 전업했다. 2015년부터 전업 푸드 라이터로 ‘한국일보’ 등 각종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준비 중이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먹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음식 관련 행사, 콘텐츠 기획과 강연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이해림 푸드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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