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17년에 발간한 책 ‘인구와 투자의 미래’를 읽은 독자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투기등급 채권에 투자하는 것은 경기가 나빠지면 위험하지 않나요?”
이 지적은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최근 흥미롭게 읽은 ‘채권투자 핵심 노하우’에 주식이나 투기등급 채권 같은 위험자산이 경기가 나빠질 때 얼마나 수익률이 악화되는지 잘 설명이 되어 있다.
경기침체기로 진입하면 시장 위험 프리미엄, 즉 가산금리가 급등하게 된다. 이에 따라 (채권 금리와 가격이 반대로 움직이므로) 투기등급 회사채의 가격은 하락한다. 주식과 비슷한 속성인 것이다. 따라서 가능하면 경기하락기에는 투기등급 채권 투자를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책 212~213쪽
책의 내용이 현실이 부합하는지 살펴보자. 아래의 그래프는 2000년 이후 미국 투기등급 채권의 수익률을 보여주는데, 2000년이나 2008년, 2015년 등 경기 여건이 좋지 않았던 시기마다 어김없이 수익률이 악화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채권투자 핵심 노하우’의 지적처럼, 한국 종합주가지수(KOSPI)의 변화 방향도 투기등급 채권의 수익률과 비슷하게 움직인다. 2000년과 2008년, 2015년의 KOSPI 수익률은 각각 -9.0%와 -10.7%, +1.5%를 기록해 2015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투기등급 채권처럼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상황이 이런데, 한국 투자자가 투기등급 회사채에 투자할 이유가 있을까?
이상의 이야기만 본다면 투기등급 채권에 투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상의 분석은 미국 투자자들의 수익률이며, 한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다. 아래의 그래프는 원화로 환산한 투기등급 채권의 연도별 수익률을 보여주는데, 2000년 -5.7%의 부진한 성과를 보였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의 수익률은 +8.7%, 국제유가가 급락했던 2015년의 수익률은 +7.3%를 기록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 이유는 바로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 변화에 있다. 투기등급 회사채의 투자 성과가 급락하는 등 ‘경기부진’ 위험이 높아질 때에는 미국 달러나 일본 엔 같은 이른바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강화된다. 쉽게 표현하자면, 경기가 나빠지고 투기등급 회사채 성과가 부진할 때에는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급등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 때문에 한국 투자자들에게 미국 자산에 투자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실제로 원화로 평가된 미국 투기등급 회사채의 2000년 이후 평균 투자 성과는 6.98%로 매우 훌륭하다. 물론 같은 기간 KOSPI의 평균적인 성과가 7.23%인 것에 비해 약간 부족하지만, 대신 KOSPI와 투기등급 회사채의 변화 방향이 다르다는 점에서 이 둘은 매우 좋은 ‘자산배분’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만일 미국 투기등급 회사채와 한국 주식에 분산 투자하면 어떤 성과를 기록할까?
아래의 그래프가 이 의문을 풀어준다. 1990년에 한국 주식에 50%, 미국 투기등급 채권에 50%를 투자했다면 2017년까지 연 8.6%의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을 것이다. 반면 수익률의 변동성, 다시 말해 투자 성과의 표준편차는 단 9.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참고로 1990년 주식에 자산을 100% 투자했다면, 2017년까지 연평균 수익률은 4.3%, 수익률의 변동성은 무려 26.2%에 달했을 것이다.
한국 주식에 100% 투자하는 것보다 미국 투기등급 채권 등에 분산하여 투자하는 게 수익률은 높이고 투자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아무리 분산해서 투자해도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수십 년에 한 번 정도는 투기등급 채권과 한국 주식이 함께 폭락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연 8.6%라는 놀라운 수익을 제공하는 것 아니겠는가.
누군가 이야기했듯, “일체의 위험을 피하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투자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어떤 위험도 지지 않으려 애쓸수록 투자 성과는 낮아져, 결국 인플레를 감안하면 오히려 손실을 보는 선택이 될 위험이 높을 테니까 말이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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