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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대통령' 국민연금 CIO, 왜 다들 꺼릴까

끊임없는 외풍이 가장 큰 부담...3년 취업 제한, 불만족스런 연봉, 지방 근무도 기피 이유

2018.04.03(Tue) 16:20:04

[비즈한국] ‘자본시장 대통령’으로 불리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가 찬밥 신세다. 그동안 금융투자업계의 굵직한 전문가들이 탐내던 자리였지만, 제한된 환경에 외풍까지 견뎌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매력 없는 계약직’으로 전락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국민연금이 새 '자본시장 대통령' 선임을 앞두고 있다.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사진=연합뉴스


‘세계 3대 연기금, 자산규모 615조 원,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 손.’ 국민연금의 수식어다. 기금운용본부장(CIO‧최고투자책임자)은 국민연금이 보유한 천문학적인 돈을 총괄한다. 보건복지부 장관의 위탁을 받아 국민연금의 자금을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업무를 책임진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하며 ‘자본시장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유다.

 

국민연금은 8대 CIO 선임을 앞두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이사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 공모에 착수했고, 서류전형을 통과한 6명의 후보자 면접 심사를 4월 3일 진행했다. 합격의 주인공은 이르면 4월 말 정해질 예정이다. 기금이사추천위가 최종 후보자를 결정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추천하면, 장관이 승인하고 이사장이 임명한다. 

 

# “하마평 오르는 것 조차 부담

 

국민연금 CIO는 2017년 7월 이후 8개월 동안 공석이다. CIO 교체는 임기와 관련 없이 빈번했지만 빈자리로 남은 국민연금 설립 이래 이번이 가장 길다. 첫 3개월은 이사장 역시 공석이었으나, 김성주 이사장이 새로 취임한 후에도 CIO 선임은 지지부진했다.

 

국민연금이 후보자 모집에 난항을 겪은 게 이유다. CIO가 공석이 되자 하마평은 꾸준히 돌았지만 선뜻 나서겠다는 사람이 없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국민연금은 CIO 공모 전 복수의 적임자를 물색하는데, 최근 8개월 간 적지 않은 수의 업계 전문가들이 거절하거나 별다른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일부 관계자는 후보자로 오르는 것조차 부담스럽다는 속내도 감추지 않았다. 하마평에 올랐던 한 자금운용업계 관계자는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다른 내용에 대해선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지만 (CIO에 대해선)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다. 이름이 올랐던 건 좋은 일이지만, 부담이 더 큰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선 과정에서 드러난 숫자도 후보자 모집이 어려웠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동안 국민연금 CIO 되기는 경쟁률이 30 대 1에 달할 정도로 치열했다. 자격 조건부터 까다로웠던 데다, 후보자로 거론된 인물들은 금융투자업계나 기관 등에서 자금운용 등을 총괄하는 굵직한 전문가들이었음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다. 

 

그러나 이번 공모의 후보자는 16명으로, 반토막 수준이다. 후보자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전직 금융업계 관계자거나 과거 인선에서 탈락한 후보자다.   

 

# 외풍 시달리는 CIO “이유 있는 기피

 

국민연금 CIO라는 화려한 간판에도 후보자들은 CIO 자리를 ‘매력 없는 자리’라며 손사래를 친다. 첫째 이유는 ‘외풍’이다. 앞서의 “부담스럽다”는 반응은 여기서 출발한다. CIO 임기는 기본 2년에 연임 1년을 포함한 3년이지만, 그동안 3년 임기를 채운 CIO는 단 두 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정권이 교체되면 임기를 채우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가장 최근의 전임 CIO들이 강력한 외풍에 휘말리면서 ‘기피 대상’까지 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연임 과정에서 이사장과 갈등을 빚고 물러났던 6대 홍완선 전 CIO는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실형이 선고돼 수감 중이다. 7대이자 전임자인 강면욱 전 CIO는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했지만,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이라는 논란이 적지 않았다. 강 전 CIO는 기본 임기인 2년을 채우지 못한 첫 CIO로 남았다.

 

국민연금 조직 구성상 외풍에 휘말리기 쉽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조직은 이사장 아래 CIO로 구성돼 있다. 이사장은 투자 위험성을 심의하는 리스크관리위원장을 맡고, 산하에 준법감시인도 두고 있다. 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적지 않은 돈을 운용하는 만큼 내부견제를 위한 구성”이라면서도 “문형표 전 장관-홍완선 전 CIO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실무자의 판단보다 장관과 이사장 등의 판단이 우선하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내부 견제기구들이 기금운용본부 밖에서 운영되는 데다, 책임자들 모두 직속 상급자라 외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 파다하다”고 지적했다. 

 

외풍이 없거나, 벗어난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사명감’만으로 선택하기 쉽지 않은 자리라는 얘기다. CIO는 퇴직 후 3년 간 금융 관련 업종에 취업할 수 없다. 1년이든 3년이든 한 번 CIO 자리에 오른 뒤에는 3년을 쉬어야한다. 한 자금운용사 관계자는 “퇴직을 앞두지 않은 이상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이 이 자리를 선택하기 쉽지 않다. 업계에서 3년을 떠나 있어야 하는데, 사실상 ‘무덤’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불만족스런 연봉과 전북 전주에 위치한 근무지도 기피 이유 중 하나다. CIO의 연봉은 3억 원 수준이만, 굵직한 금융업계 전문가의 연봉에는 크게 못 미친다. 서울과 먼 근무지 역시 결국 금융업계와 멀어진다는 이유로 부담스러운 요인으로 꼽힌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최근 CIO 연봉을 6억 원 수준으로 2배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시큰둥한 업계 반응을 돌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의 자금운용사 관계자는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과 견제를 위한 조직구성 논란은 수 년 째 이어지는 문제로 뚜렷한 해법을 찾기 어렵지만, 그 밖의 기피 요인들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꺼리는 분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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