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콜트의 핵심역량인 기타 제조능력을 이어가기 위해 최고의 자재, 최첨단 설비와 인적 자원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타 제조사 콜트악기(콜트) 홈페이지에 있는 소개글 일부다. 콜트 기타는 가격 대비 좋은 성능으로 연주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콜트, 콜텍 두 개의 회사를 보유한 박영호 콜텍 대표는 일렉기타 생산은 콜트에서, 어쿠스틱기타 생산은 콜텍에서 담당해왔다.
2007년 7월 충남 계룡시에 위치한 콜텍 공장이, 2008년 8월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콜트 공장이 돌연 문을 닫았다. 인적 자원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콜트의 소개글이 무색하게 공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은 전원 해고됐다. 이때부터 해고된 콜트와 콜텍 노동자들은 투쟁에 들어가 지난 1월 투쟁 4000일을 맞았다. ‘비즈한국’은 지난 27일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투쟁 중인 콜트와 콜텍 해고 노동자 임재춘 씨와 김경봉 씨를 만났다.
30년가량을 콜텍에서 근무했다는 임 씨는 콜텍 공장이 문을 닫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임 씨는 “당시 근로자들이 노조 설립 신고를 하고 회사와 교섭도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다”며 “금요일에 퇴근하고 월요일에 출근하는데 사전통보도 없이 공장 문이 닫혀 있었다”고 말했다.
임 씨는 이어 “3개월간 휴업하고 폐업할 것이라는 통보가 날아왔다”며 “퇴직금은 챙겨 줄 테니까 희망퇴직을 신청받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당시 회사가 밝힌 폐업의 이유는 경영상 어려움이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콜트악기는 2007년 매출 664억 원, 순이익 176억 원을 기록했다. 콜텍 역시(2006년 7월~2007년 6월) 매출 640억 원, 순이익 76억 원의 실적을 거뒀다.
해고 노동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는 ‘경영상 어려움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2년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뒤집고 일부 사업부문이 경영 악화를 겪고 있다면 인력 감축이 가능하다며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결국 2014년 6월 대법원은 회사 측의 손을 들어 정당한 해고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현재 해고 노동자들은 광화문역 인근에서 다른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텐트촌을 꾸려 투쟁하고 있다. 임 씨는 “처음에는 각자 투쟁하다가 2011년 4월 부평 공장에서 콜트와 콜텍 노동자들이 뭉쳐 함께 투쟁을 시작했다”며 “2015년에는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의 발언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투쟁했고, 2016년 말 촛불집회가 열리면서 우리도 광화문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2015년 9월 김무성 의원은 “콜트와 콜텍은 이익을 많이 내던 회사인데 강경 노조 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았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김 의원은 2016년 8월 “잘못된 사실의 발언으로 부당해고 당한 노동자들에 큰 상처를 준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문화제를 열어 노동 문제를 이야기하고 문화공연을 개최한다. 목요일에는 콜텍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한다. 또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는 인디밴드 뮤지션들과 함께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한다.
오는 4월 9일은 이들이 거리에 나온 지 11년이 되는 날이다. 해고 노동자들은 이 기간에 뮤지션들과의 거리 콘서트를 계획 중이다. 김 씨는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국민들에게 콜트와 콜텍의 이야기를 알릴 것”이라며 “우리를 지지하는 뮤지션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논의 중이다”라고 전했다.
국내 뮤지션뿐 아니라 해외 뮤지션들도 이들을 응원한다. 미국의 유명 록밴드 레이지어게인스트더머신(R.A.T.M)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는 2010년 ‘뮤직레이더’와의 인터뷰에서 “기타는 자유를 위한 수단이지 착취를 위한 게 아니다”라며 “모든 미국 기타 제조사와 콜트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콜트 노동자들이 복귀해야 한다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고 노동자들의 미국 원정 시위에도 동참했다.
현재까지 투쟁하는 해고 노동자들은 방종운(콜트악기 출신), 김경봉, 이인근, 임재춘(콜텍 출신) 씨 총 4명이다. 처음 투쟁에 참여했던 인원은 콜텍 노동자 26명, 콜트 노동자 21명이었지만 다들 생업을 찾아 떠났다. 임 씨는 “투쟁하면서 빚이 쌓이고 가족 간에 불화도 생겼다”며 “사회가 조금이라도 변했으면 하지만 변하진 않고 더 힘만 든다”고 털어놨다.
김 씨 역시 “정권이 바뀌었지만 노동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며 “회사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기에 만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고, 김무성 의원은 사과 후 노동자에게 신경을 쓰겠다고 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임 씨는 대화를 나누면서 가끔씩 회상에 젖었다. 그는 “80년대 국내 유명 기타 공장에서는 한 달에 수만 대의 기타를 생산했고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자부심도 있었다”며 “지금은 크래프터 기타를 제외하면 국내 기타회사 대부분이 해외에 공장을 두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현재 콜텍은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두고 기타를 생산한다.
그는 이어 “우리를 응원해주는 뮤지션들이 콜트 불매운동을 하는 게 큰 힘이 된다”면서도 “펜더, 아이바네즈 등 해외 유명 기타회사들이 콜텍에 OEM을 맡겨 콜텍의 경영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콜텍은 2016년 6월~2017년 6월 매출 1132억 원, 순이익 62억 원을 기록했다. 콜트악기는 2009년 5월 사업목적에서 ‘악기 제조’를 삭제하고 현재 부동산 임대업을 영위하고 있다. 콜트악기의 2015년 매출은 60억 원, 순이익은 9억 원이다. 이후 외부감사대상에서 제외됐는지 2016년 실적은 공개되지 않는다.
해고 노동자들은 콜텍과의 대화를 원한다. 그러나 콜텍 관계자는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나왔기에 더 이상 대화가 진행되는 사항은 없다”며 “국내 공장들도 현재로서는 다시 운영할 계획이 없다”라고 전했다.
투쟁을 시작한 걸 후회하지 않냐는 질문에 임 씨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사회 부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겠지만 투쟁 활동을 하면서 사회를 새로 볼 수 있게 되었다”며 “현재도 지방에 있는 공장에서는 근로기준법이 대부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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