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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독보적으로 특이한 응급의약품을 소개합니다 '숯!'

음독 환자 독성물질 흡수 위해 '인체해독제'라는 이름의 활성탄 복용 처방

2018.03.24(Sat) 21:00:02

[비즈한국] 독보적으로 특이한 응급실 의약품을 하나 소개한다. 의약품이라고 했으므로 정식으로 효과가 입증되었지만, 내가 처방하는 약 중 거의 유일하게 누구나 어디서든 제조할 수 있고, 압도적인 검은 빛깔을 띠며, 일상생활에 이용하거나 길에서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음식점이지만, 맛이 없어 아무도 먹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것을 집에 뿌려놓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를 닦거나 피부에 바른다. 검은색이라 보기에는 안 좋지만 전부 효과는 있다. 의학적으로 경환자에는 안 쓰이고, 매우 중해서 실제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환자에게만 쓴다. 흔한 물질이라 누군가는 이를 먹기도 하지만, 음용으로 시중에서 판매하면 불법이고, 허가는 의약품으로만 되어 있다.

 

활성탄은 응급실에서 음독 환자의 독성물질을 흡수하는데 사용된다. 게다가 활성탄은 장에 직접 붙어 모세혈관의 독성까지 빨아들인다.


이 약은 활성탄(Activated charcoal)이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 승인을 받은 엄연한 약이기도 하다. 그게, 우리가 아는 그, 엠티 갈 때 한 봉지 사들고 가서 고기 굽는 검은 숯, 그거 맞다. 내가 보는 의학 교과서는 이 약의 제조법을 이렇게 기술한다. ‘나무를 처음 500℃ 정도로 열분해시키고, 다음 단계로 이산화탄소 또는 증기를 주입하면서 다시 1000℃ 정도의 온도로 가열하여 만든다.’ 그렇다. 가끔 TV에 숯 장인이 나와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가마에 나무를 굽는 그 장면을 연상했다면, 그것도 맞다.

 

활성탄은 말 그대로 순수한 활성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활성 탄소는 유기물을 화학적으로 매우 강력하게 빨아들인다. 방금 언급한 1000℃ 가열 과정에서 숯은 산화 또는 활성화 단계를 거치면서 미세구멍(Micropore)을 갖게 된다. 이 구멍은 엄청나게 넓은 표면적을 만든다. 이로써 흡착력이 매우 강해지고, 미세구멍 내 박테리아 번식이 유기물의 산화 분해를 돕는 작용을 한다. 이 과정으로 늘어난 면적은 어마어마한데, 숯 1g의 표면적이 어림잡아 1000㎡(약 300평)이나 될 정도다. 최근 개발된 슈퍼 활성탄의 표면적은 이에 두 배나 된다.

 

이런 특성으로 활성탄은 환자의 독성물질을 흡수하는데 사용된다. 게다가 활성탄은 장내에 들어있는 소화물의 독성을 흡수하기도 하지만, 장에 직접 붙어 모세혈관의 독성까지 빨아들인다. 그 때문에 혈액 내의 물질을 재흡수해서 제거하는 효과도 있다. 이 원리로 정맥 주사를 과량으로 맞았을 때 활성탄 복용으로 제거하기도 한다.

 

인체가 독성 물질을 음독했을 때 활성탄은 거의 유일한 치료제다. 인류에게 이 이론만 있었을 때, 한 학자가 자신의 몸으로 입증해서 의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1831년 프랑스인 P.F. 토리(Touery)는 당시 최고의 맹독으로 알려진 스트리크닌의 치사량 10배를 스스로 먹었다. 대신 그는 이 맹독을 활성탄에 타서 먹었는데, 별 고통을 받지 않고 멀쩡히 살아났다. 이로써 인류는 치료약을 하나 얻었고, 그는 생명을 무탈하게 연장했으며, 2018년에 작성되는 지금 이 글에도 그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활성탄의 치료 범위는 매우 넓다. 사람이 음독하는 독성 물질 중에, 철, 리튬, 납 같은 금속이나 시안화물, 알코올류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효과가 있다. 의학 교과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활성탄이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면, 일단 써라.’ 많은 이들이 약물 중독 치료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위세척이, 부작용이 많고 효과가 회의적이며, 환자를 매우 괴롭게만 만든다고 널리 알려진 지금 상황에서는, 정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유일한 치료다.

 

하지만 용기 내서 활성탄을 먹기는 당연히 어렵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활성탄을 먹는 장면을 그리 안 좋아할 것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음독의 95% 이상은 자살 시도다. 환자가 내원하면 일단 빠른 시간 내에 물에 갠 활성탄을 처방한다. 방금까지 자살하려던 사람에게, 병원에서 숯가루를 탄 걸쭉하고 검은 액체를 권하니 당연히 잘 안 먹으려고 한다. 

 

그래서 더 잘 설득해야 한다. 당신은 이제 병원에 왔으니 안 죽고 살 것인데, 이 약을 안 먹으면 당신에게 장애가 남는다고 설득하면 대부분 먹는다. 그래도 끝까지 거부하거나 의식이 없으면 어쩔 수 없다. 콧줄을 껴서 위에 직접 주사로 넣기도 한다. 은근히 맛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 한번 복용하기 시작하면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데, 만약 구토하면 같은 양을 더 먹어야 한다. 

 

다 먹고 나면 필연적으로 검은 숯가루가 환자의 입 주위에 남는데, 신경 써서 잘 닦아주어야 한다. 이 약의 주의사항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색깔이 혐오스럽고, 나중에 몹시 검은 변이 나와 환자를 놀라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으므로 환자를 잘 안심시켜야 합니다.’

 

대신 숯을 식품으로 사용하면 불법이다. 직접 복용의 부작용은 거의 없지만, 유기물질의 흡수력이 너무 뛰어나 감기약과 같이 먹으면 감기약의 효과가 없어지고, 피임약과 같이 복용하면 임신할 수 있을 정도다. 이 흡수력 때문에 장복하면 소화장애나 기타 물리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외국에서 소량은 식품으로 사용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허가가 제한된 이유다. 

 

얼마 전 ‘안아키’라는 이론을 창제한 한의사가 갑상선 저하증 어린이에게 비싼 가격으로 숯을 팔아 복용시키다가 적발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먹는 행위야 말릴 수 없지만, 의학적 적응증이 아닌데 용도가 아닌 처방을 WHO 인증이랍시고 팔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환자의 건강을 해치는 행위다. 이런 사례가 제법 많이 적발된다. 활성탄 음용을 규제하는 것은 논리가 있다.

 

그래서 활성탄은 의약품으로만 합법적으로 복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음독 치료 전용으로 나온 활성탄은 캐나다에서 생산하는 ‘CharcodoteTM’ 하나뿐이었다. 대부분의 응급실에서 이 제품을 썼지만, 몇 년 전 이 생산 라인이 멈추고 말았다. 현장은 혼란을 겪었고, 유일하게 ‘인체해독제’라는 이름으로 허가되어 판매하던 국내 제품이 리폼되어 이를 대체했다.

 

당시 혼란은 환자군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했다. 하필 자발적으로 목숨을 끊으려던 사람이기에 누가 언제 치료받는 입장이 될지 애매했다. 무엇보다도 자살 시도자의 생존율을 높여야 한다는 개념은 많은 이들이 간과하기 쉬웠다. 다른 질환이었으면 즉시 음독자 전용으로 개발된 제품이 나왔을 것이었다. 엄연히 인권 문제와 직결된, 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항임에도 그랬다.

 

하여간 활성탄은 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약이다. 그러니 이제 고깃집에서 불타는 숯이 테이블 위에 놓이거나, 공기 청정이나 정수를 위한 숯이 눈에 띌 때, 여러분은 음용 시 약효를 한 번씩 떠올릴 수 있겠다. 무엇보다 생명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의사로서, 지금부턴 아무도 응급실에서 이 검고 걸쭉한 액체를 떠놓고 맛을 보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지독한 하루’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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