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보병은 역사상 최초의 군종이며, 또한 최후까지 살아남을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맡는 군인이다. 50년 전에는 미사일 운용병이 없었고, 100년 전에는 전차병이 없었지만 보병은 인류가 역사를 기록할 때부터, 어쩌면 역사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을지도 모를, 전쟁의 시작과 함께 태어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보병은 현대전에서 가장 독특한 성격의 군사 장비라고 할 수 있다. 50년 전의 M4 셔먼 전차가 현대의 M1a2 에이브람스 전차를 절대 대적할 수 없고 현대의 F-22 랩터 전투기를 50년 전의 F-86 세이버 전투기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저 랩터 조종사가 오판과 실수를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50년 전 M14 소총으로 무장한 보병은, 현대의 최첨단 장비와 HK416 소총으로 무장한 보병을 전술과 환경, 지형지물과 훈련을 통해서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 전투기의 핵심 공격력 수단인 공대공 미사일이나, 전차의 전차포 위력이 수십 배 발달하는 동안, 보병의 주 무기인 소총의 화력은 2차 세계대전 때 등장한 StG44 이후 사실상 정체 수준이기 때문이다.
기계로 이루어진 무기체계인 전차나 전투함, 군용기와 달리 사람이 기본인 보병에 무거운 장비와 복잡한 전자기기를 탑재하기 어려운 것 또한 보병이 갖는 주요한 특징이다. 때문에 보병 장비의 발전과 전투력에 대한 한국군의 노력은 사실상 30여 년간 방치 혹은 방임된 것에 가깝다.
2000년대 이후 군 생활을 해 온 이 땅의 20~30대 청년들은 군대에서 50년 이상 된 개인장구류를 사용한 경험담을 이야기하는데 너무도 익숙하다. 필자도 육군 모 사령부에서 근무하면서 32년 된 소대지원화기와 40년 된 장간조립교를 활용해 훈련을 진행한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연간 40조 원의 국방비를 쓰는 나라의 절대 다수의 보병이, 수십 년 전의 낡은 개인장비로 사격과 소부대 전투를 연마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 나라에 거의 없을 것이다.
정당하게 군대를 다녀온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래서 군 생활 동안 나라를 지키는 자신감보다는, 진짜 전쟁이 터졌을 때 자신이 제대로 싸울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며 군 생활을 한다. 기업으로 치면 흑백 모니터를 보며 플로피디스크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업무를 시키는 셈이니, 군 복무를 하는 대부분의 장병들이 자신들이 전사라는 자각 자체를 하기 어려울 정도의 장비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물론 이렇게 한국군의 보병 장비가 낙후된 것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계량화할 수 있는 전력지수 면에서 우리 육군의 보병이 미국이나 선진국 군대와 비교했을 때 차이가 난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 군의 주력 돌격소총인 K-2와 최고의 돌격소총 중 하나인 HK416의 살상력과 명중률이 엄청난 차이를 보이거나, K-2 소총을 방어할 수 있는 방탄복을 HK416이 관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50년 전 군장을 사용하는 병사가 3일간 전투를 하고, 최신 군장을 사용하는 병사가 5일간 전투를 하는 식으로 분류하거나 성능을 평가할 수도 없다.
또한 우리 육군이 보병의 전투력을 아예 등한시한 것도 아니다. 우리 군의 K-11 복합소총의 경우 세계적으로 매우 극소수의 나라에서만 운용하는 무기체계로, 공중폭발 유탄을 발사하여 지붕이 없는 진지에서 사격중인 적을 살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IS 대테러전에 이르기까지, 보병전투의 개념이 단순 화력과 방어력의 싸움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전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개념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은 보병이 들고 다니는 총과 수류탄의 파괴력을 늘리는 것보다 보병이 휴대한 무기를 가장 잘 사용하는 위치, 시간, 상황을 잘 파악한 상태에서 적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사격을 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보병의 진짜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더 많은 탄약을 적보다 더 빨리 발사하여 적을 제압하고, 점이 아닌 면의 개념으로 공격과 방어를 하는 개념은 21세기의 보병전투가 아님이 명백해졌다. 백만 발의 총알을 쏟아 부어도 그 총알이 적의 심장을 관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된 셈이다.
그 때문에 21세기 선진국들은 보병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장비의 신뢰성, 표적 획득의 정밀성, 병사의 신체적, 정신적 퍼포먼스 향상을 목표로 수많은 투자와 연구를 진행 중이고 일부는 실전에서 큰 효과를 보았다.
40년 전의 미 육군 보병과 현대의 미군 보병은 같은 구경의 소총을 쓰고 같은 무게의 군장을 가지고 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의 시가지전투 및 근접 교전부터 먼 거리에서의 장거리 교전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빨리 대응사격을 하며 훨씬 더 빨리 명중탄을 맞고 피격되었을 때에도 훨씬 더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 공격력과 방어력이라는 지표에 넣을 수 없지만 신뢰성이 높은 장비를 갖고 더 편한 환경과 마음에서, 더 실전적인 훈련으로 대응태세가 몸에 익힌 상태에서 교전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K11이 아무리 공중폭발탄이 좋다고 한들, 실전과 같은 시가지 훈련장에서 수개월 동안 훈련을 받고, 우수한 응급처치 장비와 최신형 조준기와 야간작전장비를 갖고, 사용하기 편하면서 고장이 적은 개인장비와 추위와 더위, 외부 환경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해주는 ‘보병을 위한’ 장비로 무장한 보병을 이길 가능성은 적다. 사람이 핵심인 보병의 특성상, 인간의 신체능력과 인지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보병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이 21세기의 전쟁에서 충분히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육군이 미래의 ‘5대 게임 체인저’ 중 하나로 지정한 ‘워리어 플랫폼’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한국 육군이 크고 웅장한 탱크, 자주포, 미사일에 집중하는 동안 등한시된 개인장구류와 개인전투장비를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김중로 국회의원 주최로 열린 워리어 플랫폼 세미나에서는 이 워리어 플랫폼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는데, 보병이 전투에 사용하는 전투장비를 크게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계획의 골자다.
첫 번째 단계인 개별조합형은 현재 병사가 사용하는 개인장비 수십 종을 지정해 국제기준에 맞는 제품을 보급한다는 개념이고, 두 번째 단계인 통합형 개인전투체계에서는 기존에 보병에 지급되지 않았던 첨단 착용형 전자장비를 완비하여 보병 부대원들이 서로 한 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지막 일체형 개인전투체계에서는 기존의 군복, 개인장구, 개인화기로 구별된 병사의 전투장비를 하나로 합치고, 병사의 방어력뿐만 아니라 기동력과 화력을 제공하는 ‘입는 로봇’으로 완성하겠다는 개념이다.
육군이 워리어 플랫폼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보병의 전투 임무 수행능력을 높이는 것은 대단히 칭찬받아 마땅하고, 또 지나치게 늦은 감이 있기에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할 중요한 사업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군의 워리어 플랫폼 획득 계획은 걱정되는 부분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병이라는 우리 군의 자원을 하나의 무기체계(Weapon System)으로 본다는 생각 자체는 좋지만, 실행계획에서 실제로 문제가 될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계인 개별조합형의 실행계획을 살펴보자. 수십 년간 위장무늬만 바뀐 군복이나 군장을 최신 트랜드에 맞는 신제품을 생산해 병사에게 입히고, K1 소총과 K2 소총에 발전된 표적 지시장비, 조준경, 탄알집과 같은 부수장비를 더 좋은 것을 장착해서 명중률을 높이고 방탄장비를 개선해서 병사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수십 가지의 개인장비를 한꺼번에 바꾼다는 것이 핵심인데, 이를 2022년까지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제는 이런 개인장비의 ‘일괄·대량·단일’ 보급이 개인장비 개선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인데, 수십만 명이 단 한 종류의 장비를 공급하는 대형 사업이 되면서 입찰과 심사절차가 자연스럽게 복잡해지고 그 과정도 길어지는 탓에 입찰과 심사가 끝나 보급이 진행될 때에는 또다시 선진국보다 낙후되거나 실전에서 문제를 일으킨 장비를 퇴출하지 못하고 그대로 떠안을 수도 있다.
예산 계획 역시 우려스럽다. 육군은 워리어 플랫폼의 보급을 위해 기존의 피복, 장구, 장비예산을 조금씩 꾸준히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미래에 사용할 구매예산을 끌어다가 집중적으로 투자해서 일거에 전투력 수준을 급격히 향상시킨다는 개념인데, 실제로는 이런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탄알집, 소음기와 같은 필수 전투장비는 수명주기가 짧은 소모품인 데다 실전을 겪지 않아도 훈련도중의 망실이나 수리비용도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신형 컴뱃팬츠와 방한외피가 기존 장비보다 성능이 훨씬 개선되었다고, 마치 중학교 교복처럼 선배가 후배에게 물려줄 수 있는 물건일까?
또한 표적지시기나 조준장비, 총기 부착물들은 단순히 붙인다고 끝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습관, 그리고 총기의 세부적인 특징에 따라 위치와 사용방법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설정해야 하고, 훈련할 때마다 손망실이 걱정되어서 떼어놓거나 사용하지 않으면 조준장비와 총기 부착물로 기대되는 사격 명중률 향상과 반응속도 향상은 기대하기 힘들다. 오랜 훈련을 통해서 익숙해진 장비와 사용법을 숙달해야지만 실전에서 제대로 된 효과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선진국들이 개인장구의 성능향상과 함께 집중한 것은 훈련, 특히 다양한 상황에서의 대응능력을 훈련을 통해 체험함으로서 돌발 상황에서의 대처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특히 부상 시 퇴출과 응급처치능력은 방탄복과 방탄헬멧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병사들의 생존성을 크게 개선시켰는데, 보병들에게 최신형 헬멧과 군장, 조준경을 쥐어주고 ‘멀-가-중’ 식으로 실전과 동떨어진 사격훈련을 숙달시키면 전투력 향상 효과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단계와 3단계 계획인 통합형 개인전투체계와 일체형 전투체계는 걱정이 더욱 크다. 미래전에서의 보병이 어떤 기능을 갖추고 미래병사의 모습을 사전에 연구하는 것은 좋지만 보병전투체계는 실전경험에 따라 과거의 예측이 틀릴 경우가 많았다.
당장 우리 군의 2단계 워리어 플랫폼 계획인 통합형 개인전투체계에 사용되는 개념이 초소형 프로젝터를 눈에 직접 쏴서, 내비게이션이나 전투 정보를 증강현실(AR)로 보여주거나, 조준장비에 동영상 데이터 링크를 달아 보병이 보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CCTV를 보듯 지휘관이 파악하는 것, 그리고 총에 장착된 카메라로 총을 조준해서, 담장에 숨은 상태엣 총만 들어 사격을 하는 개념은 이미 미국이 1990년대 말에 연구했던 ‘랜드 워리어’ 개념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다.
미 육군은 랜드 워리어 프로젝트에서 이런 기능들이 유용함을 확인했지만, 기술적 난이도와 비용에 비해서 보병의 전투능력을 높일 다른 수단들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대량으로 보급하지 않고 일부만 실전 배치한 기능들인 것이다.
3단계 일체형 개인전투체계에 이르러서는 거의 SF적 개념으로 가는데, 3단계에서 보병은 초 소형 미사일을 소총처럼 휴대하거나 팔뚝에 붙인 다음 발사하고 온몸을 기계로 감싸서 군장 수송능력과 행군능력을 키우고 심장박동이나 혈압 등 건강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SF적인 미래개념이 나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미래의 전쟁에 대해서 한발 먼저 앞서 나가는 사고는 칭찬하고 장려할 만하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미래의 전쟁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한 차원이 되어야지, 반드시 병사가 소형 미사일을 아이언맨처럼 쏴야 한다거나, 입는 로봇을 몇 년도에 보급하겠다는 관점으로 진행하면 곤란하다.
앞으로의 기술개발과 실전 경험에 따라서, 2030년의 보병이 수천만 원짜리 초소형 미사일을 주렁주렁 들고 다니는 게 나을지, 아니면 기존의 재래식 소총과 총알을 개량해서 들고 다니는 것이 더 나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실제로 우리는 보병 화력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복합소총을 만든 것이 아니라, 복합소총을 세계 두 번째로 실용화하기 위한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복합소총을 만들었다가 결함에 시달리고, 정작 복합소총의 살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술개발이나 부대 편제, 작전훈련에 대한 관심이 적어 그저 유탄발사기처럼 쓰는 실정이다.
솔직해지자. 대한민국 육군 장병은 아직도 보급 나온 팬티를 도둑맞지 않기 위해서 이름을 쓰고, 할아버지가 하던 방법 그대로 소총에 바둑돌을 올려놓고 사격훈련을 하고, 비싼 보급품을 망실하지 않기 위해 A급 장비를 창고에 고이 모셔두는 군대다.
단순히 좋은 팬티랑 좋은 조준경, 좋은 군장을 보급한다고 2022년의 우리 보병이 전투력이 극대화 될 것이라는 것은 순진한 믿음이다. 낙후된 보병의 장비만큼이나 단일 규정의 보수적이고 느린 획득체계, 파손을 두려워해야하는 보급품 관리, 실전적이지 않은 훈련을 개혁하지 않는 한 워리어 플랫폼의 수많은 개선 장비들은 무기체계의 핵심 요소가 아닌 그저 행정적 군대의 보급품이 될 뿐이다.
한국군은 실전적 이유가 아니라, 그저 보기 안 좋다는 이유로 군복 상의를 안에 집어넣는 규정을 만들다가, 수십 년이 지나 군복 그 자체를 바꾼 다음에야 꺼내 입기 시작한 군대다. 그 수십 년이 되는 시간동안 왜 상의를 빼 입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 상의를 빼 입을 경우 실전에서 어떤 문제가 있고 명중률, 응급처치, 훈련 상황에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정확하게 측정하고 실험한 적이 없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한국군의 문화에 있다.
한국군의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의 후배 보병들은 손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외골격 강화복을 입고 훈련에 나서면서도 보급품에 대한 불만과 실전 상황 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 걱정하며 하루하루 전역을 기다릴 것이다. 이번에는 제발 다르길 바랄 뿐이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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