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극심한 취업난 속 해외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해외파’라는 스펙을 쌓고 귀국해도 취업이 잘 되지 않아 통역, 과외 등 어학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공과 무관하게 어학원 강사로 취업하는 이들도 있다.
일본 도쿄의 유명 국립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A 씨(여·31)는 7개월간 취업 준비를 하다, 취업난을 견디지 못하고 국내 유명 어학원의 자회사에 취직했다. 2016년 9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일대일 맞춤학습 전문 B 사에서 근무한 그는 “어학원 강사가 되기 전 심사숙고하길 바란다”며 취업준비생들에게 당부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20일 A 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근무시간은 오전 7시부터 12시까지, 그리고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하루 9시간이었다.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받은 보수가 얼마일까? 9개월 동안 받았던 보수를 공개하면 비웃을지도 모른다.”
A 씨는 ‘강사보수료 세부내역서’를 공개했다. 첫 월급으로 받은 보수는 41만 5810원이 전부였다. 세전 보수는 43만 원이라 기재돼 있었는데, 세금이 3.3%밖에 적용되지 않은 건 A 씨가 B 사의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용역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였기 때문이다.
“B 어학원뿐 아니라 국내 대다수의 어학원이 강사들을 개인사업자로 채용한다. 월급이 아니라 수강생 숫자에 따라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거다. 스타강사가 아니라면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보다 못 버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나다.”
이후 A 씨가 받은 보수는 86만 5000원(2016년 10월), 83만 7500원(2016년 11월), 97만 원(2016년 12월), 124만 7500원(2017년 1월), 100만 5000원(2017년 2월), 72만 7000원(2017년 3월), 65만 7500원(2017년 4월), 54만 원(2017년 5월)이다. B 사에서 일했던 9개월 동안 받은 보수를 합산하면 728만 원. 한 달 평균 보수가 80만 8888원인 셈이다.
“얼마나 인기가 없으면 이 정도밖에 못 버냐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인기 과목인 일본어를 가르치긴 했지만,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인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온라인 어학원이 급부상하면서 오프라인 어학원이 위축된 이유가 크다. 동료 강사 중에도 나와 비슷하게 보수를 받는 이들이 있었다. 입소문이 나기 전, 처음 어학원 강사를 시작하면 대부분 40만~50만 원 수준밖에 벌지 못한다. 그게 현실이다.”
A 씨는 2007년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88만 원 세대’라는 책을 언급했다. 이 책에는 ‘88만 원 세대’가 ‘취업난을 겪으며 어렵게 직장을 구해도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청년 세대’라 소개돼 있는데, 이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2017년에 자신이 ‘88만 원 세대’보다 못한 현실 속에서 살았다고 했다.
“최저생계비보다 적은 돈으로 생활하느라, 출퇴근하는 교통비가 가장 부담스러웠다. 오전반과 오후반 수업을 병행하다 보니 일반 직장인보다 출퇴근 교통비가 두 배 이상 들었다. 출근 중 수강생이 수업을 취소해버리면 정말 힘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받는 보수가 나의 가치를 말해준다’는 말처럼 나의 가치가 40만~120만 원으로 판단되는 것만 같아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다. 지인들 사이에서 “일본 유명 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아놓고 80만 원밖에 못 번다’는 얘기를 들을까봐 조마조마했다.”
B 사에서 일하는 일본어 및 중국어 강사(원어민 강사 제외)는 수업 진행 횟수만큼 보수를 받는다. A 씨의 용역계약서에 따르면 강사들의 용역 보수는 수업료의 33.33%다. B 사의 일대일 맞춤 수업료가 10회에 45만 원이므로, 수강생이 한 달 이내 10회 수업을 모두 수강하면 강사가 15만 원(세전)을 받는다. 10명의 수강생이 10회씩 수업을 들으면, 강사는 150만 원(세전)을 받을 수 있다.
“토요일에도 수업하고, 타 지점에 파견 나가서 그룹 수업도 병행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벌이는 월 40만~120만 원이 전부였다. 열심히 해도 최저임금도 못 벌다 보니 점점 지쳐갔다. 오프라인 어학원 시장이 위축되다 보니 모객이 쉽지 않다. 한국인 강사는 3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하는데, 계약서를 새로 쓸 때마다 보수가 너무 적어서 힘들다고 얘기했다. 그때마다 ‘학생이 늘어나면 처우도 좋아진다’는 식의 달콤한 말로 만류했다. 그때는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형편이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
2017년 5월 31일 A 씨의 계약은 해지됐다. B 사 측에서 매출 저조를 이유로 사실상 해고를 통지했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A 씨는 실업급여 수급 방법을 찾아 나섰지만, 신청서조차 제출하지 못했다. 직원으로 근무했던 게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일해 왔기에 실업급여 신청자 조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부모님께 용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월세조차 내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가 됐을 것이다. B 사를 그만둔 뒤 개인 과외도 생기고 간간이 통역 및 번역 아르바이트도 하고 기업 강연에도 나간다. B 사에서 일했을 때보다 훨씬 많이 번다. 돌이켜 보면 B 사와 계약 갱신이 이뤄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아직까지 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면 지금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을 거다.”
마지막으로 A 씨는 “해외 유학을 했다는 이유로 부푼 꿈을 안고 국내 취업을 준비했다가 극심한 취업난에 ‘어학원 강사라도 해봐야지’ 하는 취업준비생들이 많다. 이들에게 어학원 강사가 겉보기처럼 화려한 게 아니라는 걸 얘기해주고 싶었다. 심사숙고 후 어학원 강사를 선택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B 어학원 관계자는 “A 씨처럼 100만 원 미만의 보수로 힘들어하는 강사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타 어학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강사들 대다수가 적게 받는 건 아니다. 스타강사들은 높은 보수를 받는다. 강사 인기도에 따라 보수가 천차만별”이라며 “강사와 개인사업자로 용역계약을 맺는 건 국내 어학원의 전반적인 문제다. 그렇지만 사업자(강사)와 사업자(어학원) 간의 거래다 보니, 투명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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