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폭풍할인’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1000만 원은 기본이다. 추가 할인 프로그램을 적용하면 정가보다 1700만 원까지 싸게 살 수 있다. 고급 수입차의 대명사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얘기다. 두 브랜드는 올 들어 유례없는 할인 행사를 벌이며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사실상 국내 수입차 시장을 양분하는 두 브랜드는 어째서 할인 공세를 펼치고 있는 걸까.
BMW는 2월부터 3시리즈와 3그란투리스모(GT) 모델을 1200만원 할인 판매하고 있다. 차주가 현재 보유 중인 차량을 BMW에 중고 매각 시 500만 원을 추가 할인 받아 최고 1700만 원까지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6430만 원인 3GT X드라이브 스포츠 모델을 4730만 원에 구입할 수 있다. 취·등록세를 합하면 50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딜러 재량에 따라 최고급 윈도 틴팅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BMW는 올해 신형 3시리즈(G20) 출시를 앞두고 구형 모델 처분에 나섰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지난해 출시한 5시리즈의 할인폭도 만만치 않다. 1000만 원가량 싸게 살 수 있다. 7000만 원에 육박하는 M스포츠패키지 모델을 취·등록세를 포함해 6000만 원에 구입이 가능하다. 중형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벤츠 E클래스를 제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BMW 수원전시장의 한 딜러는 “벤츠는 기어봉이 트럭처럼 스티어링휠 옆에 장착돼 있어 고급감이 떨어진다”며 “실내의 고급스러움과 전자장비 및 주행 성능은 BMW가 한 수 위며 중요한 셀링 포인트”라고 자평했다.
벤츠도 BMW의 도발에 맞불을 놓았다. 공식 할인이 없는 것으로 잘 알려진 벤츠는 콧대를 낮추고 지난달부터 C클래스를 중심으로 약 900만 원의 할인 행사에 나섰다. 중고차를 반납할 경우 500만 원의 추가할인이 있다.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3개월간 이자를 대납해주는 영업점도 있다. 3월 들어서는 E클래스에 대해서도 대규모 할인에 돌입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할인 시즌은 연말이다. 해가 바뀌면서 차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늘고, 연간 판매 목표대수를 달성하거나, 재고를 소진할 목적에서다. 이처럼 연초부터 두 브랜드가 동시에 할인 경쟁에 나선 것은 치열한 시장점유율 싸움에 있다.
2월 벤츠와 BMW는 각각 6192대, 6118대를 판매했다. 3~6위인 도요타·렉서스·랜드로버·포드의 판매량을 모두 합해도 3725대밖에 되지 않는다. 수입차 시장의 양자대결 구도가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디젤게이트’로 판매가 중단된 아우디·폴크스바겐이 5~6월께 판매가 재개될 전망이다. A7·티구안 등 다수의 아우디·폴크스바겐 모델들이 인증을 마쳤거나 준비 중이다. 온·오프라인 딜러망 복구에 시동을 걸고 있다. 아우디·폴크스바겐은 디젤게이트가 발생하기 전 수입차 시장 1위 브랜드로 현재 수입차 시장의 지형을 흔들 것으로 보인다. 아우디·폴크스바겐은 지난해 세계적으로 1000만 대 이상 판매한 글로벌 1위 업체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배출가스 파문이 터지기 전 폴크스바겐은 압도적인 수입차 1위 브랜드였다. 판매를 재개하면 수입차 시장이 요동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벤츠와 BMW는 아우디·폴크스바겐이 판매를 재개하기 전에 큰 폭의 할인을 통해 고객 수요를 미리 끌어온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렸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이 파업과 실적 부진으로 생긴 공백을 공략하는 측면도 있다. 2월 한국GM과 르노삼성은 각각 5804대, 5353대 파는 데 그쳤다. 벤츠는 1~2월 두 달 연속 르노삼성 판매량을 제쳤고, BMW도 역대 처음으로 국내 완성차 브랜드를 앞섰다.
지난해부터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점도 수입차 브랜드들의 판매 촉진에 불을 댕겼다는 분석도 있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전년 대비 10% 이상 올라 수입차 수요가 늘었을 것이란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집값 상승은 소비가 늘어나는 자산효과로 이어진다. 값이 비싸고 크기가 큰 순서로 바뀐다는 것이 경제학적 설명이다.
주식시장에서도 경기 확장기 ‘자동차-가전-소매품’ 등 순으로 주가가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의 할인 공세는 아우디·폴크스바겐의 판매 재개, 집값 상승과 경기 호전, 국산차 브랜드들의 부진 등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셈이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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