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2월 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는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재산국외도피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난해 11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51부는 사이버 정치관여 등의 혐의(군형법 위반)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수감된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의 구속적부심사 청구를 인용해 석방했다. 이들이 풀려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검찰은 물론 국민들도 즉각 반발했다.
당초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 입장에서야 당연한 반발이겠지만, 많은 국민들까지 반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들은 이들의 석방에 대해 형평성과 예측가능성 측면에서 납득하지를 못한 것이 아닐까.
우선 이재용 부회장의 석방을 검토해 보자. 이 전 부회장에 대해 항소심에서 1심과 달리 무죄로 판단한 부분(예컨대 제3자 뇌물공여, 재산국외도피 등)을 여기서 다투자는 것이 아니다. 항소심이 유죄로 인정한 부분만 보자.
항소심은 1심에서 인정한 72억 원에 달하는 뇌물액수를 깎아 그 절반인 36억 원만 인정했고 횡령한 돈도 줄어들어 36억 원만 인정되었다. 문제는 ‘36억 원을 횡령하고 뇌물로 준 것으로 판단된 이 부회장을 집행유예로 석방한 것이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점이다.
이 부회장에게 인정된 뇌물공여죄만 보더라도 형법에 따르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규정 되어있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1억 원 이상의 뇌물공여의 경우 2년 6월~3년 6월의 형이 기준이며, 이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의 경우 수뢰자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에는 긍정적인 사유로 보지만 뇌물 액이 5000만 원 이상인 경우에는 부정적 사유로 명기되어 있다.
항소심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뇌물을 제공했다고 판단하면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이 2심 선고 직전 횡령 금액을 모두 변제한 점도 고려됐다. 그러나 항소심은 양형기준에 뇌물 액이 5000만 원 이상인 경우 집행유예를 선고함에 있어 부정적인 사유로 명기된 것을 지나치게 가볍게 보지 않았나 싶다.
단순 계산을 해도 36억 원은 5000만 원의 70배가 넘는다. 박채윤 대표가 안종범 전 수석 등에게 59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의 실형이 확정된 사실을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일반 국민들이 공무원에게 수천만 원을 뇌물로 줬다가 실형 선고를 받게 되면 누가 승복하겠는가.
다음으로 김관진 전 장관 사건을 보자. 김 전 장관을 석방한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의 위법한 지시 및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변소 내용 등에 비춰볼 때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초 구속심사를 맡았던 영장전담판사는 “주요 혐의인 정치관여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범죄 성립에 대한 소명 정도에 대한 해석이 동일한 법원 내에서 불과 11일 만에 백팔십도 뒤바뀐 셈이다.
“구속의 첫째 요건이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이지만, 일단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면 영장을 청구한 검사나 영장을 발부한 판사가 모두 위 요건을 검토하였을 터이므로 영장발부 후 무죄를 입증할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실제로 죄를 범하였는지는 공판과정에서 증거조사를 거친 후에야 판단할 수 있는 것이어서 적부심사에서 판단함은 적절치 못하다.”
예비 법조인들이 교육을 받는 사법연수원에서 발간한 교재에 적힌 내용이다. 즉 죄를 범하였는지는 공판과정에서 다투어야지 적부심사에서 다투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교육을 받은 입장에서는 김 전 장관에 대한 범죄성립 여부가 다툼의 여지가 있어 석방을 한 적부심사 판단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다. 과연 우리 법원에서 여태까지 일반 국민들의 적부심사에서도 죄가 되는지 여부를 세세히 검토하고 판단했는지 묻고 싶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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