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 시장을 주름잡는 일본 완성차 3사는 세단에서는 캠리(도요타) 알티마(닛산) 어코드(혼다),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에서는 랜드크루저(도요타) 패스파인더(닛산) 파일럿(혼다)라는 대표 모델을 갖추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세단에선 쏘나타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SUV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현대차 ‘맥스크루즈’가 미국에서 ‘싼타페’로 팔리고는 있지만, 랜드크루저·패스파인더·파일럿의 경쟁자는 단종된 베라크루즈 또는 기아자동차 모하비다. 다양한 지형을 소화해야 하는 미국에선 출력과 공간이 중요한 반면 이동거리가 비교적 짧은 한국에선 연비와 가격이 중요하다. 현대차는 베라크루즈 단종 이후 동급의 차량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패스파인더가 국내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지난해 9월 닛산은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를 거친 ‘2017 뉴 닛산 패스파인더(패스파인더)’를 내놓았다.
첫인상은 듬직하면서 세련됐다. 최근 닛산의 패밀리룩인 ‘두 갈래 찢어진 눈’을 적용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형 SUV는 유선형보다는 ‘깍두기’ 스타일을 기본으로 디테일에서 세련미를 더하는 것이 어울린다. 지프, 레인지로버, 익스플로러(포드) 등이 그렇다. 곡선을 강조한 현대차 베라크루즈는 단종됐지만, 직선을 강조한 기아차 모하비는 살아남았다.
각진 형태를 기본으로 했지만 투박하지 않다. 앞에서 봤을 때 헤드램프·후드 상단이 일직선으로 이어져 와이드한 자세가 나온다. 뒷모습도 요란하지도 않으면서 리어램프 각도를 미세하게 치켜 올려 심심하지 않다. 측면에서도 직선을 위주로 쓰되 최소한의 각을 사용했다. 뒷모습은 기아차 모하비와 비슷한 느낌인데, 패스파인더의 디자인이 전반적으로 한국인에 익숙한 콘셉트다. 각을 잘 다듬어서인지 공기저항계수(Cd)는 기존 0.34에서 0.326으로 낮아졌다.
패스파인더를 몰아본 첫 느낌 또한 국산차를 몰 때처럼 익숙함이 전해진다. 수입차의 경우 스티어링 휠, 가속·제동 페달, 서스펜션 등에서 이질적인 경우가 많다. 현대·기아차에 익숙해져서 그럴 수도 있다. 미국산은 이질감이 큰 편이고 일본산은 한국차와 많이 비슷하다. 유럽차는 그 중간이다.
패스파인더의 민첩성과 파워는 남달랐다. 국산 대형 SUV는 3.0리터 디젤엔진을 사용하지만 패스파인더는 3.5리터 자연흡기 가솔린엔진이다. 닛산이 자랑하는 VQ엔진으로, 최대출력 263마력, 최대토크 33.2kg·m다. 무단변속기인 ‘뉴 익스트로닉 CVT’가 적용됐다. 닛산 자회사 자트코(Jatco)는 CVT 변속기 제조사로 유명하다. 2009년 국내에 알티마가 처음 들어올 땐 경차 위급에선 최초의 무단변속기 장착 세단이었다. 당시 CVT는 경차에만 사용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지금은 3.5리터급인 패스파인더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2톤이 넘는 차량 무게에도 불구하고 초기 가속과 고속 영역에서의 가속이 시원시원하다. 가솔린엔진이라 가속페달을 밟을 때의 반응속도가 빠르고, 정차 시 또는 저속에서 디젤엔진 특유의 소음이 없어 쾌적하다. 사이즈만 클 뿐 중형 세단을 몰 때와 큰 차이가 없다.
많이 팔리는 국산 중형 SUV는 2.2리터 디젤엔진을 사용하고 연비 위주의 세팅을 했기에 고속 영역에서의 가속이 굼떠지는 현상이 있는데, 패스파인더에는 그런 답답함은 없다. 반대급부로 연비는 좋지 않다. 공인연비는 도심 7.3km/l, 고속도로 9.9km/l, 복합 8.3km/l이다.
시승 코스는 한국닛산 사무실이 있는 선릉역에서 가평의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까지 왕복 64km 거리였다. 올림픽대로와 경춘고속도로를 타는 코스에는 금요일이라 차들이 많았다. 시야가 확보되면 급가속, 차량이 많아지면 급제동을 하면서 이동했더니 계기판에는 6.6km/l 연비가 찍혔다. 아무래도 휘발유 가격이 한국의 4분의 1인 미국에 적합한 세팅이다.
국내 도입 모델은 상시사륜구동(AWD)으로, 엔진을 가로로 배치하는 전륜구동 기반이다. 시승코스에는 오프로드가 없어 본격적인 사륜구동 성능을 시험해볼 수는 없었다. 닛산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적용된 ‘인텔리전트 사륜구동 시스템’은 다이얼을 돌려 ‘2WD’, ‘오토’, ‘4WD 록’의 세 가지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2WD는 앞바퀴에 100% 구동력을, 4WD 록은 구동력을 앞 50%, 뒤 50%로 강제 배분한다. 오토는 주변 환경에 따라 최적의 토크 밸런스를 배분한다.
인테리어는 다소 올드한 느낌을 주지만, 패스파인더의 절제된 외관과 잘 어울린다. 최근의 차량들이 미래지향적인 센터패시아를 추구하지만, 패스파인더는 클래식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촌스럽거나 퇴색되어 보이진 않는다. 내비게이션이 장착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천연가죽 시트, 12개 스피커로 이뤄진 ‘보스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 등 고급스런 옵션을 넣으면서 가격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3열 시트의 활용성이 큰 것이 국산 중형 SUV와의 차별점이다. 2~3열을 연결하는 바닥이 살짝 높아지면서 1~3열 바닥이 완벽하게 평평하진 않지만 3열 시트에 앉으면 적당한 히프 포지션과 레그룸이 나온다. 이 점에 대형 SUV의 매력이다. 뒷문을 열고 2열 시트 측면의 레버를 당기면 등받이가 앞으로 기울어지고 하부 시트는 위로 들려 최대 140mm 슬라이딩을 할 수 있어 3열의 탑승 편의를 돕는다.
캠핑 마니아를 위한 ‘트레일러 토우 기능’이 기본 장착됐다. 보트, 트레일러 등 최대 2268kg까지 견인 가능하다. 캠핑용 트레일러는 750kg까지는 일반 보통 면허로 운행 가능하다. 과거엔 750kg 초과 시 대형 트레일러 면허가 필요했지만, 캠핑 열풍에 힘입어 2016년 하반기 소형 트레일러 면허가 신설돼 이 면허로 750kg 초과 3000kg 이하까지 운행 가능하다.
패스파인더의 토우 가능 무게라면 국내의 웬만한 트레일러는 운행이 가능하다. 닛산 관계자는 “타 SUV는 토우 장치를 추가로 달라야 하는데, 무거운 걸 끄는 만큼 일체형으로 장착된 패스파인더의 내구성이 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게를 지탱하는 고리뿐만 아니라 전기배선을 연결하는 소켓이 초기 설계에 반영됐기 때문에 고장이 적을 것으로 기대된다.
닛산이 인피니티 차종에 세계 최초로 적용했던 360도 어라운드 뷰 모니터는 이제 SUV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기능이다. 덩치가 큰 패스파인더로선 비좁은 지하주차장에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역시 보편화된 기능이긴 하지만 양손에 짐을 든 채 발동작만으로 트렁크를 여는 ‘핸즈프리 파워 게이트 리프트’도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최신 고가 차량들에 장착된 첨단기술만큼은 아니지만 패스파인더는 제한적인 주행보조 편의장치를 장착했다. 전방 주행 차량의 속도 및 거리를 감지하는 인텔리전트 비상 브레이크, 앞차와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주는 인텔리전트 차간거리 제어, 차량 양측의 사각지대에 다른 차가 있으면 사이드미러 안쪽의 라이트가 켜지면서 경고를 보내는 인텔리전트 사각지대 경고 시스템 등이 적용돼 있다.
옥에 티라면 국내 소비자가 민감하게 여기는 운전석·조수석 에어백이 탑승자의 몸무게, 시트와 에어백 사이의 거리, 충돌 강도 등을 고려해 폭발압력을 조절하는 스마트 에어백이 아니라, 폭발 압력을 2단계로 조절하는 ‘어드밴스드 듀얼 스테이지 에어백’이 장착됐다는 점이다.
닛산 패스파인더의 가격은 5390만 원이다. 혼다 파일럿 가격 5460만 원과 70만 원 차이다. 상시사륜구동과 전방추돌 경보 시스템(드라이브 와이즈 선택품목)을 갖춘 기아차 모하비의 가격이 4899만 원임을 감안하면, 가솔린 엔진이냐 디젤엔진이냐, 그리고 국산차와 수입차의 애프터서비스 차이가 패스파인더의 선택을 가르는 변수가 될 것이다.
우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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