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중국 시진핑 주석의 지배체제가 점점 굳건해지는 모양새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공산당 당헌과 헌법에 명기된 데 이어,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마저 폐지함에 따라 애초 2023년 초까지이던 임기도 늘어나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이런 변화가 중국경제에 ‘우호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한다. 현재 진행 중인 국영기업 개혁이나 공급 측 개혁 등 대부분의 정책이 지속성을 가지고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경제사를 전공한, 특히 ‘제도학파’의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다른 의견을 제시할 것 같다. 여기서 ‘제도학파’란, 재산권을 비롯한 국가의 다양한 제도가 경제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를 가진 학자들을 지칭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더글라스 노스 교수는 영국의 경제발전이 본격화된 기원을 ‘명예혁명’에서 찾는다. 노스 교수는 1989년 배리 웨인게스트와 함께 쓴 논문을 통해, 명예혁명이 영국 정부의 자의적인 재산권 강탈을 막음으로써 장기적인 투자활동을 촉진했다고 주장한다.*
명예혁명 이전 영국 왕실은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금을 올린다거나, 돈을 받고 특허권이나 귀족 작위를 마구 발행했다. 혹은 은행가들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일이 수시로 일어났다. 결국 청교도혁명은 왕실의 자의적인 재산권 침해에 대한 대응으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게 노스 교수의 주장이다.
청교도혁명 이후 다시 왕정이 수립되었으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특히 찰스 2세의 뒤를 이어 제임스 2세가 왕위에 오른 뒤, 재산권의 침해가 이전보다 훨씬 더 심하게 발생하자 1688년 영국 의회는 명예혁명을 일으켜 제임스 2세를 퇴위시키기에 이른다. 이후 영국 의회는 새로운 왕 윌리엄 3세와 권리장전을 맺어, 왕이 더 이상 재산권을 자의적으로 침해하지 않을 것을 약속 받는다.
노스와 웨인게스트는 두 번에 걸친 혁명으로 인해 영국 왕실은 의회의 위협, 즉 재산권을 위협할 경우 왕을 내쫓을 수 있다는 것을 믿을 만한 위협(Credible Threat)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결과 영국에서는 왕실이 더 이상 자의적으로 국회의 동의 없이 국민의 재산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중단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장기투자와 관련된 영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들의 논문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영국 국채 이자율의 변화를 나타낸 아래의 그래프이다. 명예혁명을 기점으로 영국의 국채 이자율이 크게 하락했는데, 이는 왕이 돈을 빌려놓고 갚지 않을 위험이 사라짐에 따라 리스크 프리미엄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백년전쟁 당시 영국왕 에드워드 3세가 연전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40%에 달하는 높은 이자 부담 때문에 항상 군자금 부족에 시달렸음을 감안할 때, 명예혁명 이후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든 데에 저금리가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노스와 웨인게스트 교수의 지적에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제도가 완비된 나라가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제도가 완비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왕을 쫓아내고 ‘재산권 보호’에 앞장설 국왕을 해외에서 데려오려는 시도가 나타난 것은 그만큼 사회가 발달하고 또 재산권 보호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부르주아 계급이 성장한 탓이 아니냐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최근 발간된 책 ‘제도와 조직의 경제사’는 흥미로운 분석을 소개한다. MIT대학교의 대런 아세모글루 교수와 두 명의 공저자는 제도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매우 색다른 시각에서 분석했다.**
이들은 유럽이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식민지 정책에 몇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첫째 유형은 북미나 호주처럼 선진국의 제도와 시스템이 완비되고 또 유럽 사람들이 대거 이주하는 것이다. 다른 유형은 유럽 사람들의 이주가 제한된 가운데 철저하게 식민지의 자원을 약탈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아세모글루 등은 이러한 식민지 정책의 차이가 유럽 사람들이 그 지역에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인지 아닌지에 달려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즉, 쾌적한 기후를 가진 온대지방에는 유럽인들이 많이 이주해서 유럽의 제도가 이식되었고, 반대로 열대 혹은 한대지방 등 18~19세기 유럽인의 사망률이 높던 지역에는 유럽인이 이주하는 대신 그 지역의 자원을 약탈하는 식으로 식민통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복잡한 계량 분석과정을 다 소개할 수 없고, 결론만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19세기 전반 유럽인의 사망률은 현재 제도의 질에 마이너스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과거 식민지 시절 유럽인 정주자의 사망률이 높아 정주가 어려웠던 지역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사유재산 침해의 리스크가 높다는 뜻이다. (중략) 사유재산 보호의 정도가 높을 수록 1인당 국내총생산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은 결과를 보였다. -책 104쪽
학술서적이라 용어가 어려운데, 간단하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유럽인들은 18~19세기에 열대지방의 전염병, 예를 들어 황열병이나 말라리아에 면역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역에 거주한 사람들은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그 결과 18~19세기에 유럽인 사망률이 높은 지역일수록 유럽인들이 이주하지 않으려 들었고, 그 결과 유럽에서 형성된 자유시장경제의 제도가 ‘당시에는’ 전혀 정착되지 못했다.
그런데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열대지방의 전염병은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다양한 백신이 보급된 데다 에어컨이나 모기장 등 보건환경의 개선만으로도 전염병의 위험을 퇴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8~19세기 유럽인의 사망률은 현재 경제성장률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아래 그래프에 나타난 것처럼 18~19세기 유럽인 사망률은 현재의 소득을 설명하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 된다.
18~19세기 유럽인 사망률이 높았던 나라의 ‘현재’ 재산권 보호 수준이 미약한 이유는 결국 ‘경로 의존성’ 때문이다. 18~19세기 식민 통치 중에 아무런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자원 약탈만 이뤄졌고, 이런 불행한 과거가 지금까지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아세모글루 교수 등의 주장대로라면, 재산권 보호 등 핵심적인 제도는 경제의 성장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 사례가 중국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힘들 수도 있다. 1949년 이후 공산당의 통치가 지속되었건만, 1949~1976년에는 만성적인 경제위기를 겪은 반면 1977년 이후에는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이라는 탁월한 지도자 덕분에 성장률이 높아졌는지, 아니면 집단농장의 (사실상) 폐지 같은 대대적인 제도 변화가 성장을 촉진했는지는 아직 결론 내리기 힘들다. 다만, 이번 시진핑 주석의 권력 기반 강화는 제도주의 경제학자들에게 많은 연구 거리를 제공할 흥미로운 이슈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Douglass C. North and Barry R. Weingast, “Constitutions and Commitment: The Evolution of Institutions Governing Public Choice in Seventeenth-Century England”, The Journal of Economic History Vol. 49, No. 4(Dec., 1989), pp. 803-832.
**Daron Acemoglu, Simon Johnson, and James A. Robinson, “The Colonial Origins of Comparative Development: An Empirical Investigation”,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91 No. 5 December 2001.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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