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 산업이자 세계 1위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핵심 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와 글로벌 경기 악화의 영향으로 수주량이 급감하며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아픔을 맛봐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지역 경제는 순식간에 황폐화 됐습니다. ‘비즈한국’은 특별기획 ‘일감 빼앗긴 조선소에도 봄은 오는가’를 통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선사들이 몰려있는 도시를 차례로 돌며, 경영난과 수주 불황으로 침체된 지역 경제와 현장에서 생업을 잇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할 예정입니다.
1부 - 울산편
2부 - 거제편
3부 - 목포편
지난 14일 오전 11시 울산 동구 슬도 낚시터. 40~50대로 보이는 남자 60여 명이 줄지어 낚시하고 있었다. 낚싯대 사이로 ‘골리앗 크레인’이 보였다. 7년 전 울산 조선소에 일하러 온 중국인 한 아무개 씨(49)는 “지금 일할 시간인데 요즘 공장에 일이 없으니까 여기(낚시터)에 이렇게 사람이 많다”며 “나도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다니다가 작년 5월에 잘렸다”고 말했다.
울산 동구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공장에 둘러싸여 있다. 그야말로 ‘현대 조선업 공화국’이다. “IMF(외환위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냈다”고 할 정도로 울산 동구는 불황을 겪은 적이 없다. 2016년 24척이라는 최악의 수주량을 기록한 여파가 현재 나타나며 경기가 눈에 띄게 내려앉았다.
현대중공업에서 34년째 일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56)는 “지금이 내가 본 중에 제일 안 좋은 때”라며 “일단 회식이 없어졌다. 한 달에 한 번 할까 모르겠다. 메뉴도 소고기에서 돼지고기 뷔페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시장 골목 상가 곳곳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12년째 보리밥집을 운영하는 엄 아무개 씨(68)는 “지금은 조선소 옷 입고 오는 사람이 한 팀도 없다”며 “요즘은 보리 반 되로 밥을 해도 반이 남기도 한다. 내 품값은 그렇다 쳐도 가게 운영비도 못 낸다”고 말했다. 횟집 사장 김 아무개 씨(39)는 “하나도 못 팔 때도 많다. 회식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라며 “잘 될 때는 손님을 하루 저녁에 테이블을 세 바퀴 돌릴 때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빈 원룸도 늘고 있었다. 협력업체 직원이 주로 살던 방어동 지난 2월 공실률은 30%를 기록했다. 원룸 건물 두 채를 운영하는 박 아무개 씨(64)는 “한 달 은행 이자 150만 원을 갚지 못해서 생돈이 들어가고 있다”며 “한 번은 월세를 안 내고, 전기세, 수도세도 안 내길래 찾아가 봤더니 그냥 도망가고 아무도 없었다. 보증금이 적으니까 말도 없이 나간다”고 토로했다.
원룸 시세는 전세금 500만 원에 월세 45만 원에서 전세금 100만 원에 월세 20만 원 선으로 내렸다. 그마저도 방이 나가지 않아 2개월 단위 세입자도 받고 있다고 했다.
동구 지역에서 가장 번화한 일산해수욕장 주변. 유흥주점에 점포임대 광고가 붙어 있었다. 전화를 해보니 “지난해 9월부터 내놨는데 안 나간다. 처음엔 권리금 5000만 원을 불렀는데 지금은 2000만 원”이라며 “동구에서 술집을 하면 안 망한다는 소리가 있었는데 요즘엔 솔직히 진짜 힘들다”고 밝혔다.
울산 지역 조선소 종사자 수는 2015년 6만 5878명에서 2017년 3만 7216명으로 감소했다. 2년 새 2만 8662명이 줄었다. 게다가 현대중공업 정규직 직원 경우 한 사람당 5주씩 쉬면서 순환 근무를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선박 수주가 되는 것을 지켜보고 5월 이후에 (순환 근무를 더 할지 말지) 결정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협력업체 수도 현저히 줄었다. 2015년 314개였던 협력업체가 2017년 190개가 됐다. 2년 새 124개 업체가 문을 닫은 것이다. 지난 11월 다니던 협력업체가 사라져 일자리를 잃은 최 아무개 씨(27)는 “일 잘 하다가 갑자기 다음날 사장이 불러놓고 회사 없어진다고 통보했다”며 “당장 들어오는 돈은 없고, 다른 일자리 알아보기가 정말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집값 상승률은 전국 최저 수준이다. 전국 단독주택가격 상승률 평균이 5.51%이고 울산은 4.87%이지만 동구 지역은 0.77%다. 거제시 다음으로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해 9월 입주를 시작한 이 지역 176세대 오피스텔은 현재 30세대만 들어찬 상황이다.
최진혁 울산상공회의소 경제조사팀장은 “울산은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세 업종이 3분의 1 비중으로 먹여 살리고 있다”며 “특히 동구는 조선업 특화지역이라 조선 경기가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은 2018년 들어 가스선, 유조선, 컨테이너선 등 29척을 수주했다. 2016년 24척, 2017년 48척을 수주한 것과 비교하면 호조다. 조선업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피어오르지만, 실물 경제에 훈풍을 몰고 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다.
조선소를 다니는 서 아무개 씨는 “지금 수주량이 늘고 있다지만 설계가 끝나고 일감이 나오기까지는 1년 6개월에서 2년 정도 걸린다”며 “예전에는 공장이 24시간 돌아갔는데 지금은 야근은 고사하고 5시부터 6시까지 하던 연장근무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5시 이후에 크레인이 불이 켜지는 그때 경기가 돌아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때 공장지대가 몰려 있는 울산 동구의 야경은 울산시에서 정한 ‘울산 12경’ 중 하나였다. 밤 8시. 어둠이 찾아오자 휴식을 취하는 ‘골리앗 크레인’이 더욱 잘 보였다. 공장은 유지 관리를 위한 예비 불만 켜진 상태였다. 야경이라기에 무색할 만큼 새어 나오는 불빛이 반감돼 있었다. “밤낮과 주말이 없이 공장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던” 울산은 밤이 되자 적막감만 감돌았다.
울산=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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