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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유사수신 행위'…기업의 새 자본조달 방식 ICO의 명암

올해 두 달 만에 전 세계적 2조 원 돌파…안전장치 미흡해 투자자 보호 사각지대

2018.03.15(Thu) 16:31:59

[비즈한국]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상화폐) 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열기의 중심은 거래소가 아니다. 가상통화공개(Initial Coin Offering, ICO)라 부르는 자본조달 시장이다. 지난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암호화폐 거래 열기가 주춤한 사이, 그동안 거래소에 몰려있던 투자금이 ICO 시장으로 빠르게 몰리고 있다. 반면 투자금 모집 방식이 사실상 ‘묻지마 투자’와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 암호화폐 투자금 빠르게 흡수하는 ICO 시장

 

ICO란 한 기업이 세상에 없던 새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이를 투자자에게 판매해 대규모 자본(현금 등 실제화폐)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2015년 암호화폐 ‘이더리움’ 개발자가 현금 대신 비트코인을 받고 이더리움을 나눠주면서부터 시작됐다. 벤처기업이 주식사장에서 IPO(기업공개, Initial Public Offering​)를 통해 투자 받는 것과 비슷하다. IPO가 투자의 증표로 주식을 지급한다면, ICO는 증표로 암호화폐를 받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기존 금융제도를 거부하고 이를 대체할 수단’으로 탄생한 암호화폐처럼 ICO도 주식시장을 거부한다. IPO가 기업이 주식을 투자자들에게 판매해 자금을 유치하고, 주주들은 경영에 참여하는 목적으로 출발했는데, 경영은 최대주주나 일부 경영진 위주로 흘러가면서 정작 주주들은 기업 경영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ICO는 투자자들에게 주식 대신 암호화폐를 준다. 증권회사 등을 거치지 않고 발행한 새 암호화폐를 독자적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한다. 투자자들은 발행 기업의 서비스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으며, 다른 투자자와 거래도 할 수 있다. 

 

투자한 암호화폐가 거래소에 등록돼 거래가 가능해지면 일반인들에게 재판매해 수익을 낼 수도 있다. 가령 100원에 새 암호화폐를 샀는데, 이 암호화폐가 거래소에 상장돼 1000원까지만 올라도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지난해 중반 이후 암호화폐 열풍이 전 세계에 번지면서 이러한 방식으로 수십 만, 수백만 배의 수익을 올렸다는 사례가 알려졌고, 이를 통해 ICO 투자자들이 몰렸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실제 시장 규모는 빠르게 성장 중이다. 통계를 집계하는 기관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실제 ICO 시장 몸집은 최근 2년 사이 크게 불었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2015년 전 세계 누적 ICO 규모는 약 500억 원(40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2017년 말 6조 원(57억 달러)를 넘어섰다. 

 

올해는 더 빠르다. 2월까지 알려진 규모만 2조 원(16억 6000만 달러)이다. 두 달 만에 2017년 한 해 투자금 3분의 1을 넘어섰다. 지난 1월 신규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2주 만에 약 1조 원을 유치한 뒤, 추가 유치 중이라 집계되지 않은 텔레그램 등의 사례를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 불어난다.

 

텔레그램은 신규 암호화폐 ‘Gram’​을 발행하고 오는 3월 말까지 1200만 개를 판매해 투자금을 모을 계획이다. 3월 15일 현재까지 1154만여 개가 팔렸다. 사진=텔레그램 ICO

 

이런 해외 흐름에 따라 국내 일부 기업들도 암호화폐 발행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다만 한국과 중국은 ICO가 금지돼 있어, 해외 법인을 설립하고 암호화폐를 발행한다. 한 IT업체는 올 초 해외에서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약 3000억 원을 모았다. 국내 신생 기업이나 소규모 스타트업들도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알려진 곳만 10곳이 넘고, 기획 단계에 있는 업체까지 포함하면 20곳에 달한다. 

 

최근 해외에서 ICO를 계획 중인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 등이나 외신 보도 집계를 종합해 보면 2017년 ICO 규모는 약 6조 원으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IPO 약 39조 8600억 원의 7분의 1 수준”이라며 “최근 해외에선 ICO가 400년간 이어져온 IPO 방식을 대체할 수단이라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기업들이 ICO를 위해 관심을 두는 곳은 싱가포르로 알려졌다. 지난해 중순까지 스위스나 미국에 ICO가 몰렸지만 싱가포르가 최근 ‘세계 3대 ICO 시장’으로 올라섰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싱가포르는 규제를 강화한 다른 주요 국가와 달리 아직까지 ICO에 가이드라인만 있다. 절차가 복잡하지 않은 데다, 회사도 2주 정도면 만들 수 있다. 스위스보다 비용도 적고 들고 지리적으로도 장점이 많다는 분석이다.

 

# 묻지마 투자? 투자자 보호 장치 미흡 

 

ICO가 암호화폐 시장의 ‘새 트렌드’로 급부상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IPO와 비교해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 기업부터 기존 기업까지 대규모 자금을 현금으로 쉽게 유치할 수 있다는 ICO의 장점이, 시선을 달리하면 ‘양날의 검’처럼 투자자 보호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IPO의 경우 세계 각국의 증권거래소가 엄격한 기준을 정하고 이 기준을 충족한 기업만 상장해 주식을 거래할 수 있다. 금융회사가 보증한 기업의 업력과 재무구조가 공개되고 평가 받는다. 매출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면 IPO를 진행하지 못한다. 

 

반면 ICO에는 별다른 규제가 없다. 증권회사나 거래소를 거치지 않아 IPO와 같은 과정이 생략된다. 새 암호화폐 발행 기업이 홈페이지를 개설해 발행 목적과 사업 계획을 적은 ‘백서(White paper)’와 입금계좌만 공개하면 된다. 

 

결국 사업계획만으로 투자금을 유치하는 셈인데, 문제는 사업계획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백서에는 ‘블록체인’ ‘AI’ ‘딥러닝, 머신러닝’ 등 일명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실현 가능성도 모호한 데다 어떤 사업을 하는지, 수익창출 모델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상 ‘묻지마 투자’와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어떤 부분을 믿고 투자하라는 건지 알 수 없다. 전통 자본조달 시장에서 스타트업이 이런 방식으로 IR을 하면 투자자들에게 외면당하는 건 물론이고 곧바로 시장에서 퇴출된다”며 “투자의 증거이자 주주 권리인 주식을 받는 IPO와 달리 ICO는 발행된 암호화폐를 받으면 그게 전부다. 배당과 이자뿐만 아니라 투자 기업이 부실해지면 청산할 수 있는 권리도 없다. ICO는 투자자가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 ICO 시장에선 ‘리버스 ICO(Reverse ICO, 신생 기업이 아닌 기존 기업이 암호화폐를 발행해 투자금을 유치하는 방식)’이 등장했지만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암호화폐 발행이 기존 주주들의 권리와 충돌하면서다. 암호화폐 가격 상승과 주식 상승은 별개다. 주식은 그대로인데 암호화폐 가격만 오르면 기존 주주들은 별다른 이익이 없다. 여기에 암호화폐로 올린 수익이 기업 가치에 반영할 규정도 없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의 반발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ICO에 대한 추가 규제를 준비 중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최근 “ICO가 투자자 보호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대규모 사기에 악용될 수 있다”며 ICO 관련 기업 약 80곳에 소환장 및 정보공개 요구서를 발송했다. 지난 14일에는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산하 자본시장·증권·​투자소위원회는 ‘암호화폐와 ICO 시장 조사’라는 주제로 청문회를 열고 투자자 보호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국내 금융당국도 ICO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4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암호화폐 발행, 유통 과정에서 현행법에 저촉될 여지와 사기·다단계와 연루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국내 ICO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은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9월 국내에서 모든 ICO를 금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해외에서 ICO를 해도 국내 소비자에게 권유할 시 불법으로 간주한다. 국내 ICO를 유사수신행위의 한 형태로 규정하고 이를 위해 유사수신규제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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