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은 모든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소재로, 철강업체의 경쟁력은 그 나라 경쟁력의 기반이 된다. 철광석·유연탄을 녹여 액체 상태의 쇳물을 뽑아내는 공정인 제선,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제강, 쇳물을 슬래브(커다란 쇠판) 형태로 뽑아낸 후 높은 압력을 가하는 압연의 세 가지 공정을 모두 갖춘 제철소를 일관제철소라고 하는데, 국내에선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여기에 해당한다.
2016년 생산량 기준 세계철강협회에서 발표한 철강업체 순위에서 포스코는 다국적사 아르셀로 미탈, 중국 바오우강철그룹, 중국 허베이철강, 일본 신일철주금에 이은 5위다. 현대제철은 13위. 2016년 기준 포스코 매출액은 약 53조 원, 현대제철은 약 16조 원이다. 포스코가 현대제철의 3.3배 규모. 나라별 철강생산량 상위국은 중국, 일본, 인도, 미국, 러시아, 한국 순이다.
# 권오준 포스코 회장
포스코는 1968년 창립한 포항종합제철이 전신이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로 받은 일본 배상금 7370만 달러, 일본수출입은행 상업차관 5000만 달러와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의 기술 지원을 받아 창립됐다.
임직원들이 ‘롬멜하우스’라 불리는 건설사무소에서 새우잠을 자고 영일만 모래가 섞인 밥을 먹으며 제철소 건설에 매진한 일화는 유명하다. 1973년 국내 최초 조강 103만 톤의 설비가 준공돼 가동을 시작했다. 1985년엔 광양만 공장을 착공해 1992년 준공했다. 포스코는 1998년 한때 세계 1위 철강회사에 오르기도 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엘리트 엔지니어의 길을 걸었다. 1950년 경상북도 영주시 출생으로 서울사대부고,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 졸업 후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을 지내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유학길에 올라 소재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피츠버그에서 기술연구원으로 있다가 1986년 포스코 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포스코 기술연구소장, 유럽사무소장,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원장, 포스코 부사장(기술부문장), 사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한국철강협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한·호주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포항공과대학교 이사장, 한국공학한림원 이사장을 맡는 등 외부활동도 활발하다. 지난해 10월 세계철강협회 부회장을 맡았고 순번에 따라 2년차인 올해 10월 회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권오용 효성그룹 홍보총괄 상임고문은 권 회장의 동생이다.
권 회장이 취임하던 2014년 포스코 매출은 65조 원대였으나, 2015년 58조 원, 2016년 53조 원으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철강의 주 수요처인 국내 조선·자동차·건설 업종의 불황이 심화됐고, 중국·인도 등에서 철강 생산량을 급속히 늘리면서 수출에서 고전하고 있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을 비롯한 수입 철강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한 것은 매출 하락에 직격탄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권 회장은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권오준호 2기 경영목표와 성장 청사진’을 묻는 질문에 “월드 프리미엄(WP) 제품 강화화 스마타이제이션(smart+digitalization)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통해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답했다.
최근 권 회장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2차전지 육성에 힘쓰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2월 7일 광양제철소 내 리튬생산공장에서 연산 2500톤 규모의 리튬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포스코가 독자적으로 리튬추출기술을 개발한 것은 2010년으로 권 회장이 포스코 기술연구소장을 지낼 때다.
권 회장은 리튬생산공장 준공식에서 “많은 제약과 난관에도 오늘의 결실을 거둔 것은 미래 성장사업에 대한 비전과 열정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배터리용 리튬은 물론, 양극재용 고순도 니켈과 양음극재 개발 등 에너지소재사업에서 기술경쟁력을 차별화해 미래 신성장사업을 육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흘 후엔 경북 구미에 위치한 포스코ESM(POSCO Energy Storage Materials)에 들러 생산과 출하 작업을 점검했다. 포스코ESM은 이차전지용 양극재를 생산해 LG화학에 납품하고 있다. 현재 니켈 80% 이상 고용량 양극재(NCM 방식) 양산이 가능한 업체는 전 세계적으로 포스코ESM을 포함해 두 곳뿐이다.
이 자리에서 권 회장은 “포스코ESM이 생산하는 양극재는 포스코의 이차전지 소재 사업에 필수적으로, 2020년까지 양극재 사업에 3000억 원을 추가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히는 등 이차전지 소재 사업 육성에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지난해 포스코는 철강·비철강 부문에서 모두에서 실적이 개선돼 연결기준 매출 60조 원, 영업이익 4조 6000억 원을 기록했다. 포스코는 “권오준 회장 취임 직후인 2014년부터 꾸준히 진행된 구조조정(150건)으로 재무효과 7조 원의 목표를 달성했다. 유동비율과 부채비율 개선으로 재무건전성이 강화돼 지난해 2012년 이후 최대 영업이익(별도기준)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의 한국산 철강 관세 부과에 대해 포스코는 “최근 언급되는 무역확장법 제232조는 대형 철강사보다는 중소 강관업체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증권가의 리포트들이 나와 있다. 대형 철강사들이 전혀 피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 무역규제로 이미 수출량이 많이 줄어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현대제철은 1953년 6월 10일 설립된 대한중공업공사가 전신이다. 한국전쟁 전후 시설 복구에 필요한 철강재 생산을 위해 평로제강공장, 분괴·압연공장, 박판 압연공장을 잇달아 건설했다. 1962년 인천중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1964년 설립된 인천제철에 1970년 흡수합병됐다.
1978년 민간기업 불하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인천제철은 현대그룹에 인수됐다. 현대그룹 계열사가 된 인천제철은 1982년 국내업계 최초로 대형 구조물의 골조로 사용되는 H형강을 생산하는 등 기술적인 발전을 이루며 성장했다.
인천제철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강원산업을 인수하며 연 800만 톤에 육박하는 생산량을 갖추게 됐고, 동시에 국내 제강의 35% 이상을 차지하며 세계 2위의 전기로 업체가 됐다. 같은 해 삼미특수강을 인수하며 연간 25만 톤의 스테인리스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현대그룹의 분할로 인천제철은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편입됐고 같은 해 INI스틸로 사명을 변경했다. 2004년 한보철강 당진공장을 인수해 7개월 만에 열연강반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당진공장을 인수한 INI스틸은 곧바로 일관제철소 건설에 착수했다. 2006년 현대제철로 사명을 변경하고 일관제철소 기공식을 가졌다.
2010년 일관제철소 1·2고로, 2013년 3고로가 준공됐다. 이로써 현대제철은 연산 1200만 톤 규모의 고로 3기를 갖추고 열연, 후판을 생산하게 됐다. 2014년 당진에 특수강 공장을 준공하고 2015년 현대하이스코를 합병했다. 현대제철은 현재 세계 최고의 자동차소재 전문제철소로 자평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우유철 부회장과 강학서 사장이 각자대표 체제로 경영을 맡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우 부회장이 CEO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제철 홈페이지의 CEO 인사말에는 우 부회장 사진과 서명이 올라 있다.
우 부회장은 권오준 포스코 회장과 비슷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1957년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 서울대학교 조선공학과 학부·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3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뒤 현대우주항공, 현대로템을 거쳐 2004년 현대제철 기술개발본부장(전무)에 올랐다. 2005년 부사장에 오른 뒤 현대제철 기술연구소장, 구매본부 본부장, 생산총괄 사장 등을 거쳤다.
우 부회장은 2010년 일관제철소 체제가 가동됨과 동시에 현대제철 대표이사에 올랐다. 2014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미국 대학교에서의 공학박사 학위, 철강회사 기술연구소장을 거쳐 최고경영자에 오른 경로가 권오준 포스코 회장과 유사하다.
우 부회장은 2004년 INI스틸 전무로 발탁돼 한보철강 당진공장 인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기술연구소장과 당진제철소장 등을 거친 만큼 현대제철 품질경영의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조선공학을 전공했고, 현대중공업, 현대우주항공, 현대로템을 거친 경력 덕에 철강업뿐만 아니라 연관산업 전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룹 주력인 현대·기아자동차의 품질을 뒷받침하는 역할에도 적합하다는 평이다.
현대·기아자동차는 2013년 출시한 제네시스 2세대 모델(DH·현 G80)을 시작으로 전 모델에 현대제철이 생산한 초고장력강판 50% 이상을 적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12년 미국 IIHS(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에서 도입한 스몰 오버랩 충돌 테스트에서 대부분의 차종이 최고점을 받는 등 자동차 안전성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단골 소비자 불만인 아연도금에 대한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 현대제철은 순천공장에 세 번째 아연도금설비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현대제철은 국내 수요 감소와 중국 철강업체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건설 등 계열사에 대한 안정적인 납품이 그 비결이다. 내부거래 비중이 높지만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해외법인 등이 개별 법인으로 분리돼 있어 내부거래 비중이 5% 이상인 계열사는 현대글로비스가 유일하다.
2012년 14조 원대이던 매출은 2013년 13조 원대로 소폭 하락했으나,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연속 16조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 1월 2017년 매출액이 19조 1660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철강업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18%가량 늘어난 셈이다.
다만 영업이익은 미국과 중국 자동차 판매 감소에 따라 소폭 감소했다.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 우 부회장의 중장기 과제가 될 것이다. 미국의 한국산 철강제품 고율 관세 부과에 대한 대책도 당장 꺼야 할 발등의 불이다. 타 자동차 메이커의 경우 저렴한 수입선 또는 현지 철강업체로 구매처를 바꿀 수 있지만, 현대·기아자동차는 현대제철 제품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일군 기업들은 창업 1~2세대를 지나 3~4세대에 이르고 있지만 최근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가족 승계는 더 이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카리스마 넘치는 ‘오너경영인’ 체제에 거부감이 커지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담당 업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늘고 있다. 사업에서도 인사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전문경영인이며 그 자리는 뭇 직장인들의 꿈이다. ‘비즈한국’은 2018년 연중 기획으로 각 업종별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의 위상과 역할을 조명하며 한국 기업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우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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