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06~2007년 세계 조선업은 호황을 누렸다. 기쁨도 잠시. 거품경제의 절정기에 취했던 국내 조선업체들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야 했다. 선박 발주가 줄기 시작했고, 최근 10년간 조선 업황은 내리막을 걸어왔다.
전문가들은 수십 년간 세계 1위를 지키던 국내 조선업이 위기에 놓이게 된 건 세계 경기와 조선업황 변화를 예상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조선업계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는 2014년부터 시작된 수주 가뭄 여파로 노사관계와 재무 건전성, 선주들의 신뢰도 등이 크게 금간 상황.
최근 조선업황이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조섭업계 ‘빅3’는 연초부터 잇따라 수주에 성공해 일감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가 올해 불확실성을 털어내고 반등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각 사 전문경영인들 역할에 귀추가 주목된다.
# ‘노무 해결사’ 강환구 현대중공업 대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1월 임원 인사를 통해 기존 권오갑·강환구 각자대표 체제에서 강환구 단독 대표로 전환했다. 강 사장은 1955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 내 선체설계1부 부장과 의장설계2부 이사 등을 거쳐 2013년 조선사업본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4년 10월부터 현대미포조선 사장을 맡다가 2016년 10월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복귀했다. 강 사장이 현대미포조선에서 노무관계 안정화에 일조한 점을 인정받아 현대중공업 사장에 올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대중공업은 19년 연속 무파업을 이어왔으나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이 취임한 2014년 이후 매년 파업이 반복됐다. 강 사장은 1979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현대미포조선으로 옮기기 전인 2014년까지 35년간 현대중공업에 몸담았는데, 조직문화를 잘 알고 설계·생산 쪽을 두루 걸쳐 경영관리와 영업 등 지원부문 경력을 주로 쌓았던 권 부회장보다 노조와의 대화가 수월할 것으로 여겨졌다.
이 같은 기대는 지난 2월 초 적중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2016년 5월 임단협을 시작했으나 조선업 구조조정에 따른 노사 갈등으로 2년여 동안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수주 급감으로 일감이 줄면서 회사가 희망퇴직, 사업분할, 순환휴직 등 자구노력에 나섰고 노조가 이에 반발하며 협상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16년도 임단협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해를 넘기고 지난해 6월부터 2017년도 임금협상과 통합해 진행해 왔다. 사실상 표류 상태였던 현대중공업 노사교섭은 지난 2월 7일 노사가 합의를 이뤘다.
강 사장은 이번 타결로 노사관계 부담에서 벗어나 경영안정화로 나갈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올 들어 지금까지 현대중공업은 20억 달러(약 2조 1336억 원) 규모 29척의 수주 실적을 기록하고 있고 올 1분기 수주 가능목표도 60억 달러(6조 4008억 원)로 전망된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조선부문에서 전년 대비 34% 이상 증가한 132억 달러(14조 817억 6000만 원) 수주 목표를 세웠다. 올해 일감을 최대한 확보해 조선업황이 좋아질 때까지 버틴다면 내년부터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잇따라 안전사고가 발생한 점은 강 사장 경영 능력의 평가의 ‘뇌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현대중공업 생산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총 4건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 6일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작업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진 하청업체 직원이 사망했다. 노조 측은 과로로 인한 사고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일에는 해양16안벽에서 한 직원이 배를 옮기려고 줄을 푸는 과정에서 배 앞쪽 갑판 모서리에 부딪혀 사망했으며, 1월 말 2명이 생산 현장에서 숨졌다.
강 사장은 1월 3일 신년사를 통해 “안전한 일터 조성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며 “올해 통합안전교육센터 건립과 안전관리체계 내실화를 통해 중대재해 없는 원년을 달성하고자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1분기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4건의 안전 사고가 발생 ‘중대재해 없는 원년’이란 말이 무색해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 특성상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만큼, 무엇보다 안전에 주의를 귀울여야 하고 그 노력은 즉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현장중심’ 남준우 삼성중공업 대표
2017년 12월 삼성중공업 신임 대표로 임명된 남준우 사장은 생산현장 출신으로 삼성중공업 재도약을 이끌고 있다. 남 사장은 올해 경영 정상화를 위해 유상증자로 자본금을 확충하고 구조조정을 끝내는 데 힘 쏟을 것으로 보인다.
남 사장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조선 전문가로 통한다. 1958년생인 그는 울산대학교 조선공학과를 졸업, 1983년 삼성중공업에 입사했다. 입사 후엔 선박개발 담당, 시운전팀장, 안전품질담당, 생산담당 등을 두루 역임했다. 상선과 해양플랜트를 가리지 않고 생산현장을 관리해와 고객과 접점이 많다는 점에서 영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말 삼성중공업은 2018년 5월까지 1조 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삼성중공업은 재무건전성을 못 미더워 하는 선주들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유상증자에 성공해야 한다. 삼성중공업이 유상증자를 진행해 빚을 갚고 나면 순차입금이 7000억 원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재무건전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남 사장은 1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유상증자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그는 “2016년 유상증자를 했던 상황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기 때문에 주주사나 주주들도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느낄 것”이라며 “유상증자가 실패한다는 생각은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삼성중공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원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은 2017년 9월 말 기준 자구계획안 가운데 약 65%를 진행했다. 노사합의가 지연되면서 구조조정 작업도 차질을 빚어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영업손실 4900억 원, 2018년 영업손실 2400억 원을 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남 사장은 원가를 줄여 위기를 극복할 것을 강조했다.
남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수주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만큼 한 건의 계약이라도 더 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영업활동을 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며 “우리가 원하는 일감을 제때 확보하려면 기술을 개발하고 낭비와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해 원가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남 사장은 원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삼성중공업은 2017년 12월 진행된 조직개편에서 전체 조직 수를 기존 89개에서 67개로 줄였다. 조직 기능을 일원화하거나 통합했고 주요 인물과 조직을 전진배치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삼성중공업은 설명했다. 사외이사를 제외한 임원은 기존 72명에서 50명으로 22명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손실을 회계장부에 그대로 반영하며 오롯이 올해 업황 회복만 바라볼 수 있게 됐다”며 “올해 삼성중공업이 유상증자와 구조조정 작업을 무사히 끝낸다면 불황에서 벗어나 새출발 원년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연임’ 기로 앞에 놓인 ‘구원투수’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대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지난해부터 잇따라 수장의 세대교체를 이뤄온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정성립 사장이 지난 2015년부터 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앞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대우조선해양 1·2대 대표이사를 역임한 바 있다.
정 사장은 말단 사원에서 시작해 20년 만에 사장자리에 오른 입지적 인물로 알려진다. 1950년생인 그는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과 마찬가지로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했다. 정 사장은 업계 다른 전문경영인들과 달리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첫 사회생활은 조선업이 아닌 산업은행. 1974년 1976년까지 산업은행 조선반 기술부에서 근무했다. 1976년 동해조선공업에 입사해 조선업계 첫 발을 내딛었다. 당시 담당 업무는 해외영업이었다.
정 사장이 대우조선해양과 인연을 맺은 건 1981년 대우조선해양의 전신인 대우조선공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다. 1982년 말레이시아 1인 지사장을 거쳐 1985년 대우조선해양 선박영업 1부장, 1989년 노르웨이 오슬로 지사장을 지냈다. 이후 관리본부장 전무, 지원본부장 등을 역임하고 2001년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2006년까지 회사를 이끌었다. 2012년까지는 대우정보시스템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고 2013 STX조선해양 대표이사를 거쳐 2015년 다시 대우조선해양으로 돌아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정 사장은 2015년 취임 후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노조를 설득하는 한편, 스스로 급여 전액을 반납하는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해 솔선수범했다. 그 결과 채권단으로부터 추가 자금지원을 이끌어내고 흑자전환에도 성공했다. 최근 잇따른 수주 낭보를 전하며 목표 달성에도 청신호를 밝히고 있다. 정 사장의 임기는 올해 5월 28일 종료되는데 업계에선 정 사장이 쌓아온 경력과 대우조선해양에서 보여준 경영성과 등에서 연임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연임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다. 정 사장 취임 이후에도 대우조선해양에서는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조 원의 혈세로 살아남은 대우조선해양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선 정 사장 역시 청산 대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6년엔 200억 원대 횡령을 저질러온 직원이 적발됐다. 이 직원은 2008년부터 2015년 말까지 8년에 걸쳐 범행을 일삼았으며,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아울러 지난해에도 납품 업체와 짜고 돈을 빼돌린 내부 직원들이 대거 적발돼 4명이 구속되고 4명이 불구속되는 등 총 11명이 입건되기도 했다.
정 사장의 연임 여부는 14일, 15일 중 열릴 예정인 이사회에서 결정된다. 3월 말 예정인 주주총회 최소 2주일 전에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 사장 연임이 사실상 결정됐다는 말도 나왔는데 KDB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후보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관리위원회에서 후보자를 추천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일군 기업들은 창업 1~2세대를 지나 3~4세대에 이르고 있지만 최근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가족 승계는 더 이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카리스마 넘치는 ‘오너경영인’ 체제에 거부감이 커지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담당 업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늘고 있다. 사업에서도 인사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전문경영인이며 그 자리는 뭇 직장인들의 꿈이다. ‘비즈한국’은 2018년 연중 기획으로 각 업종별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의 위상과 역할을 조명하며 한국 기업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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