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국 초중고 부모 자녀 간 대화 시간이 하루 50분도 채 안 되는 가정이 69.2%달한다.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고등학생 2명 중 1명은 하루 평균 가족과 대화 시간이 30분도 되지 않는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 노동자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 2069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305시간 많이 일한다. 우리나라 학생 공부 시간은 주당 50시간. OECD 회원국 학생보다 평균 17시간 오래 책상에 앉는다.
부모는 많이 일하고, 자녀는 길게 공부한다. 가정에서 사라지는 대화, 어떻게 대화하는지조차 잃어 간다. 서로에게 멀어지고, 공감(共感)의 부재가 자리를 메운다. 이유미 마노컴퍼니 대표(38)는 ‘공감이 상실된 시대’가 마음 아팠다.
‘공감(共感)의 상실’이 안타까웠던 ‘마노컴퍼니’ 이유미 대표
“상위 1% 영재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심리검사를 할 때였어요. 아이한테 ‘친구가 울 때 어떻게 해줄 거야?’라고 물으면 몹시 이상한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안 놀 거예요’, ‘줬던 선물을 빼앗을 거예요.’ 아니면 ‘지금 이걸 왜 묻지?’라는 표정으로 아무 대답을 못 하는 거죠. 질문 외우기, 문제 풀기는 정말 잘하는 친구들이었거든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유미 대표는 대학에서 발달심리학을 전공하고 교육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서울·경기 지역 생후 18개월 400명 아이들이 72개월이 될 때까지 추적 연구를 할 때였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아이들에게 이상한 점을 느꼈다. 지능이 높은 대신에 공감 능력이 떨어졌던 것.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부모와 자녀의 대화를 도와주는 ‘마노카드’를 만드는 회사를 창업했다. 2016년 10월이었다.
마노카드는 감정·장소·관계·행동 네 종류로 나뉘고 각각 25장씩 100장 구성이다. 아이는 카드를 이용해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을 때 자신이 감정을 어땠는지를 부모에게 말한다. ‘화났어요’, ‘수영장에서’, ‘누나랑’, ‘싸웠을 때’요. 마노카드는 자연스럽게 부모와 자녀의 일상을 공유하게 하고, 속사정까지 말하게 만든다.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꼬치꼬치 캐묻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가장 좋아해요. 마노카드를 이용하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기 감정을 말하는 거죠. 부모님들이 아이들 반응에 굉장히 놀라워합니다. 일 끝나고 집에 가면, 아이들이 부모님이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미리 카드로 만들어 놓고 기다린다는 거예요.”
마노컴퍼니는 마노카드 외에 ‘데일리이모션’, ‘듀얼 스토리북’을 판매한다. 데일리이모션은 아이가 감정 스티커를 동그란 일일 일정표에 붙이게끔 만들어졌다. 부모는 아이가 시간대별로 기분이 어땠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수 있다.
마노컴퍼니의 제품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지만, 최근 대학생이나 성인이 찾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 대표는 저변을 확대할 계획도 갖고 있다.
“홍보 부스를 차리면, 20대 커플 분들이 많이 찾아오세요. 마노카드로 대화하면서 그 자리에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진지한 대화를 하기도 해요. 좀 놀랍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평소에 정말 눈을 마주 보고 대화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던 거죠.”
직원은 이유미 대표까지 포함해서 단 두 명. 유일한 직원은 마노카드 디지털화를 기획하고 있다. 마노카드를 찾는 사람은 단체 포함 한 달에 100여 곳. 시작한 지 1년 6개월이 된 스타트업으로서 발군의 성과이지만 어려움은 여전하다.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선 수업을 직접 진행하는 교육 사업을 해야 하지만 이 대표는 망설여진다.
“저희는 제조업인데, 처음이다 보니 생산 단가를 높게 잡았더라고요. 아직 잘 남질 않아요. 사실 정말 시간이 빠듯해서 본인이 마노카드를 사진 않겠지만, 혹시 수업을 진행한다면 100% 내 아이를 맡기겠다고 하실 만큼 많은 부모님 수업 요청을 합니다. 수업을 진행하면 수익이 많이 날 것 같지만 그러지 않고 있어요.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이 일을 하면서 뿌듯한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유미 대표는 울컥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아이와 엄마가 대화하는 걸 보면 아이의 얼굴이 너무 밝아요. 그걸 보면 뿌듯함을 느껴요. 첫째 아이를 잘 못 안아 주는 분이 있었어요. 둘째는 너무 예쁜데, 첫째한테 이상하게 좋은 소리가 안 나간다고. 마노카드를 통해서 첫째가 학교생활에서 힘들었던 점을 안 거예요. 엄마가 힘들까봐 이야기하지 못한 것도요. ‘내가 너무 아이의 마음을 몰라줬구나’ 깨닫고 아이를 안아 줬다는 분도 있었어요.”
이 대표가 바라는 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공감’의 경험을 심어주는 것이다. 인터뷰를 끝내며 그는 환하게 웃었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할 기회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온 거 같아요. 그 과정에서 공감받은 경험 자체가 없어서 남을 공감하기 힘든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한 번의 경험을 시켜줄 수 있을까. 그게 제게 가장 큰 숙제예요. 그러려면 아직 부족해서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죠.”
마노컴퍼니는 서울특별시 ‘2017년 학교폭력예방디자인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공간인 ‘아이엠그라운드’를 지난 12일부터 위탁 운영하고 있다. ‘아이엠그라운드’는 학교와 학원 이외 친구들과 어울릴 공간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다. 마노컴퍼니는 마노카드를 이용해 다양한 ‘공감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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