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공무상 취급한 사건의 수임을 금지하고 있다. 즉 ‘변호사는 공무원·조정위원 또는 중재인으로서 직무상 취급하거나 취급하게 된 사건’을 수임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변호사법에 의해 규제가 되고 있는 수많은 수임제한 규정 중 유일하게 형사처벌을 과하고 있다.
그렇다면 형사처벌까지 하면서 이러한 규제를 두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변호사가 공무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알게 된 비밀 등을 이용하여 소송을 수행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공정성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풀어준 범죄자의 변호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전직 대법관이 대법관 재임 중 판결한 사건을 수임한 의혹이다.
고현철 전 대법관은 2004년 재임 시절 사내 비리를 감찰팀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정 아무개 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행정소송의 상고심을 맡았다. 당시 대법원은 이 사건을 기각해 정 씨의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2009년 퇴임한 고 전 대법관은 법무법인으로 자리를 옮긴 뒤 정 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회사 측 변호를 맡았다.
이에 대해 2014년 법원은 고 전 대법관에게 변호사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전직 대법관이 법을 위반한 사건이었기에 커다란 화제가 되었고 이후 전관들이 사건을 수임하면서 조심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가오는 14일, 전직 대통령으로는 다섯 번째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앞두고 있다. 문제는 이 전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언급된 변호사 중 정동기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 변호사는 대검 차장이던 2007년 8월 17대 대선을 앞두고 이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 의혹이 불거진 도곡동 땅에 대해 “도곡동 땅이 이명박 후보의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밝혀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역할을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와서는 이 전 대통령의 변호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현재 검찰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해 100억 원대 뇌물수수 의혹 외에도 제17대 대선 당시 논란이 된 도곡동 땅 등 다수의 차명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사실상 결론 내린 상태다. 여기서 일반 국민들은 반드시 법 위반이 아니더라도 뭔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검차장으로 재직 당시에 죄가 없다고 한 정 변호사가 그 후 검찰이 죄가 된다고 한 사건을 수임해서 변호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냐는 것이다.
대검차장은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검찰 내 2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시 수사팀으로부터 사건 관련해 보고도 받았을 것이고 더 나아가 증거 등 사건기록도 검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수사기밀정보를 이미 인지한(또는 인지할 수 있는) 상태에서 변론에 나서는 것은 공정성을 훼손하고 사법 불신을 초래하므로 이를 막는 것이 앞서 언급한 변호사법의 입법 취지다.
정 변호사 측은 2007년 당시 대검차장의 지위에 있었을 뿐 실제로 피의자를 조사하거나 수사기록을 검토한 사실이 없고 단지 보고만 받았을 뿐이므로 직무상 취급한 사건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변호사법은 직무상 ‘취급한’ 사건뿐만 아니라 ‘취급하게 된’ 사건도 수임을 금지하고 있다. 즉 실제 직접적으로 사건을 처리하였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그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특정한 지위에 있었으면 수임이 금지된다.
따라서 대검차장으로서 보고를 받고 공연히 수사 결과를 밝혔다면 이는 ‘취급하게 된’ 사건으로 볼 여지가 높다. 더욱이 지휘감독관계가 엄격한 검찰 조직 특성상 검찰 내 2인자인 대검차장으로서 이러한 항변을 한다면 매우 궁색하게 여겨진다. 현재 정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 사건 수임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해서 이에 대한 법 위반 여부를 검토 중이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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