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진짜 봄이 왔다. 바람의 질감과 온도가 며칠 새 확 달라졌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동안 얼마나 기다렸던 봄인가. 이럴 땐 봄을 맞은 티를 좀 내야 한다.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잘 누리는 사람들이 라이프스타일에서도 ‘클라스’가 다르다. 평소엔 단조롭고 재미없이 심심하다가 뭔가의 날에만 이벤트처럼 요란하게 티내는 건 좀 촌스럽기도 하다.
일상의 수준이라는 건 돈이 아니라 태도가 만든다. 다가온 봄을 만끽하러 꽃을 집안에 꽂아두는데 엄청난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꽃시장에 가면 1만 원 이하로 고를 수 있는 한 다발이 너무나 많기도 하다. 5000원 정도로 살 수 있는 한 다발도 꽤 많다. 그러니 꽃이 비싸고 비실용적이란 말은 거둬야 한다. 커피 한 잔 값이면 적어도 2~3일 기분 좋게 할 수 있고, 집안이나 책상 위를 돋보이게 만들 수도 있어서다.
대개 10송이 정도를 한 다발로 보는데, 개인적으론 1만 원 미만으론 라넌큘러스(Ranunculus), 1만 원 이상으론 튤립을 요즘 선호한다. 물론 이건 꽃시장 가격이라, 일반 꽃가게로 가면 좀 더 비싸다. 백화점 꽃 전문매장은 훨씬 더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는 투자할 만하다.
사실 꽃 선물은 남자가 여자한테 하는 이미지여선 곤란하다. 꽃 선물은 자기가 스스로에게 하는 선물이어도 좋다. 남자가 구애를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 일상적으로 꽃을 살 수 있는 게 더 낭만적이다. 일상의 풍요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남녀는 따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선물하는 건 가장 전통적이면서 오래된 로맨틱한 행동 중 하나다. 하지만 장미 100송이, 백합 100송이 같이 100송이 단위로 잔뜩 안기는 건 솔직히 세련된 느낌은 아니다. 이건 너무 이벤트성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꽃은 일상적 선물이지 결코 무슨 날만 줘야하는 게 아니다.
평소 꽃 선물을 자주 해본 사람, 그리고 자주 받아본 사람들이나 꽃을 반긴다. 안 그러면 꽃을 받자마자 ‘저 꽃 곧 시들어 쓰레기가 될 텐데 어떻게 처지하지?’라는 생각부터 앞선다. 꽃 선물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이것저것 섞어서 부피를 크게 만들고 색깔을 화려하게 조화시키는 것도 호불호가 갈리기 쉽다. 오히려 한 종류의 꽃만 담백하게 한 손에 잡힐 양으로 사는 게 깔끔하다. 이 정도가 어느 꽃병에 꽂아도 예쁘다.
꽃은 종이나 비닐로 포장한 상태로 보는 것도 좋지만, 꽃병에 꽂았을 때가 더 예쁘다. 꽃도 제철이 있고, 시기마다 좀 더 돋보이는 꽃들도 있다. 잘 모르면 사시사철 장미만 떠올린다. 그래서 장미꽃은 예쁘지만 고르는 사람의 센스에 따라서 세련되지 못하기 쉽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듯, 꽃도 그렇다. 뭘 좀 알아야 좀 더 세련된 선택을 할 수 있는 게 꽃이기도 하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꽃과 식물 관련한 인테리어, 즉 플랜테리어 관련 강좌가 지난해부터 급증했다. 몇 년 전 ‘쿡방’, ‘먹방’ 열풍으로 쿠킹 클래스가 급증했던 것과 비교된다. 지금은 쿠킹클래스보다 플랜테리어가 더 인기다. 셀프 인테리어 열풍이 불고, 홈퍼니싱이 대세가 되면서 플랜테리어도 트렌드가 되었다. 2030대들의 관심도 높고, 남자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더 이상 꽃꽂이가 여성적 이미지일 필요는 없다. 꽃을 좋아하고, 집안 인테리어에 신경 쓰는 건 절대 남녀로 구분될 성질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자 지금 시대의 기본적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건, 미세먼지가 보편화되는 시대이자 콘크리트 숲에만 사는 도시인이 늘어난 시대라서 그렇기도 하다.
심지어 ‘반려식물’이란 말도 유행한다. 식물이 하나의 가족이자 대화상대가 된다는 얘기인데, 1인 가구 증가 시대와도 맞물리는 유행이다. 한마디로 꽃이나 식물에 대한 이해나 취향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말이다. 더더욱 봄이면 반려식물, 플랜테리어, 꽃병이란 단어가 더 실감날 시기기도 하다.
봄은 옷으로도 온다. 좀 더 상큼하고 밝은 패션 스타일로 꾸밀 때다. 그래야 봄을 맞는 태도다. 이럴 때 봄맞이로 꺼낼 옷이 트렌치코트지만, 사실 그 안엔 스트라이프를 하나 받쳐주는 것도 좋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 패션 트렌드로 스트라이프가 언급된다. 지난 10년간 늘 스트라이프는 봄여름의 기본 아이템으로 꼽혔다. 마치 미니스커트가 매년 유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늘 사랑받듯 스트라이프도 그렇다.
누구나 옷장 속에 스트라이프 티셔츠 한두 개쯤 있을 것이다. 당장은 외투 안에 입겠지만, 봄이 좀 더 무르익으면 외투 없이 스트라이프 티셔츠 하나에 청바지나 면바지 하나만으로도 멋을 부리는 이들이 급증한다. 봄은 그런 시기다.
수많은 명품 브랜드에서도 2018 S/S 컬렉션에 스트라이프를 많이 활용하고, 패션 매거진에서도 봄을 맞아 스트라이프를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버티컬 스트라이프(Vertical Stripe), 말 그대로 세로줄무늬가 올봄을 주도할 트렌드고 꼽힌다. 가로줄에 비해 세로줄은 좀 더 발랄하고 경쾌하고 역동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스트라이프는 티셔츠에서, 버티컬 스트라이프는 드레스 셔츠에서 주로 써왔다. 물론 버티컬 스타라이프가 남자 드레스셔츠에선 스테디셀러일 만큼 자리 잡은 스타일이기도 하다. 재킷과 수트 안에서 자리했던 버티컬 스트라이프가 이제 재킷과 수트로도 과감히 확장되는 게 올해 패션 트렌드라고 한다. 스트라이프를 가로줄이건 세로줄이건 봄의 상큼함과 발랄함을 드러내기엔 이보다 더 제격인 것도 없다.
중요한건 봄이 왔는데 꽃도, 스트라이프도 외면한 채 겨울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내지는 말자는 것이다. 집안에 예쁜 꽃병도 좀 사두고, 주기적으로 꽃도 좀 사고, 봄에 어울릴 옷도 일부러 더 챙겨 입고 적극적으로 봄을 맞자. 일상의 풍요는 이런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취향과 안목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게 아니다. 일상의 풍요를 오래 누린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다. 요란한 이벤트보다는 풍요로운 일상이 더 삶의 질을 높인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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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갈아입듯, 머리 하듯, 집도 '스타일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