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문재인 정부에서 연임됐다. 한은 총재가 연임된 것은 한은 70년 역사에서 11대 총재를 지냈던 김성환 전 총재(1970년 5월 2일~1978년 5월 1일) 이후 두 번째 있는 일이다. 이주열 총재는 도합 8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한은을 이끌게 됐다. 특히 이 총재의 연임은 한은이 외환위기 이후 정부로부터 독립을 이뤄낸 이후 처음 있는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이주열 총재는 1977년 한은에 들어온 이후 2012년 4월 한은 부총재를 마친 뒤 한은을 떠날 때까지 35년간 한은에서 외길을 걸어온 ‘정통 한은맨’이다. 특히 조사와 국제금융, 정책기획, 통화신용정책 등 요직을 역임해 한은의 임무인 ‘물가안정’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이 총재는 한은맨이면서도 정부와 협조가 잘 되는,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도 평가를 받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은행자본확충펀드나 시중은행 유동성 공급 등을 정부와 공조해 시장 안정을 이끌어 냈다.
다만 정통 한은맨이라는 자부심과 물가안정이라는 확실한 철학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 당시 김중수 전 총재와는 트러블이 있었다. 김 전 총재는 정부의 경기 부양책을 돕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오랫동안 써왔는데 이는 당시 물가 급등의 부작용을 가져왔다. 또 외부 출신인 김 전 총재는 한은에 젊은 피를 넣는다며 임원 승진 1순위인 조사국과 통화정책국 국장들을 보직 해임하고 젊은 인사들을 주요 국장에 전면 배치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이에 이 총재는 2012년 4월 부총재직을 끝내고 한은을 떠나면서 퇴임사를 통해 “글로벌과 개혁의 흐름에 오랜 기간 힘들여 쌓아온 과거의 평판이 외면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며 김 전 총재를 정면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 탓에 김 전 총재가 이 총재의 퇴임 후 길을 막으면서 한동안 고생스러운 생활을 해야 했다. 이 총재는 한은 부총재 퇴임 후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배려로 화재보험협회 차기 이사장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레 통보가 철회된 것이다. 이 총재는 이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고문과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를 지냈다.
이 총재는 박근혜 정부가 김 전 총재의 후임으로 지명하면 다시 ‘날개’를 달았다. 당시 여러 명이 한은 총재 후보로 물망에 올랐으나 첫 도입된 한은 총재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인물이 이 총재밖에 없다는 평가 덕이었다.
강원도 강릉 출신에 고등학교도 원주 대성고 출신이어서 학연·지연에 얽히지 않은 데다 35년간 한은에서만 일한 덕에 별다른 뒷말이 없었던 것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이 장점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통했다는 후문이다. 이번에도 여러 인사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이들 대부분 정부 여당에서 청문회 통과가 쉽지 않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이 총재가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정부와 경제 정책에서 박자를 잘 맞춘 것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물가안정을 내세운 이 총재는 경기 대응보다는 물가 안정을 더 중시하는 ‘매파’ 성향을 갖고 있다. 실제로 2014년 한은 총재 지명 당시부터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후 경제가 개선되지 않자 기준금리를 잇따라 내리며 통화 완화책을 썼다.
이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으로서 지금까지 통화정책 회의를 총 43번 주재했지만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지난해 11월 딱 한 차례다. 오히려 기준금리를 5차례나 내렸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잇단 기준금리 인상으로 기준금리 역전 우려가 커졌지만 미국을 따라 올리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는 등 경기 부양을 꾀하는 정부를 도왔다. 올해 시작과 동시에 벌써 추가경정예산을 언급하고 나서 정부로서는 알아서 도와주는 이 총재와 함께 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하지만 이 총재가 앞으로 계속해서 정부에 협조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 총재 임기 중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면서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된 때문이다. 이 총재가 취임하기 직전이던 2014년 3월 말 1022조 4462억 원이던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1450조 8939억 원으로 급증한 상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9일 한국을 부동산거품 파열이 임박한 세계 10개국 중 한곳으로 지목하며 경고음을 보낸 바 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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