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은행들이 경쟁 무대를 핀테크(금융+기술)로 옮긴 가운데, 최근 컴퓨터가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자산관리를 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적은 비용에 높은 객관성을 장점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고수익을 안겨줄 수 있다는 기대까지 나오지만, 실제 서비스 내용과 앞으로의 방향은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최근 수년 새 국내 은행들이 디지털 혁신 작업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인터넷 전문은행들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하나만으로 빠른 속도로 수익을 내면서 기존 은행들 사이에선 “발등에 불 떨어졌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더 늦기 전에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한 시중은행 디지털전략팀 관계자는 “그동안 은행들이 디지털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를 기초 단계에서 활용 하고 있었다면, 최근엔 흩어졌던 기능을 통합해 서비스를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로봇이 알아서 해주는 자산관리 서비스
‘로보어드바이저’는 이러한 디지털 서비스 가운데 하나다. 로보어드바이저란 로봇(Robot)과 자산관리·투자전문가(Adviser)의 합성어로, 인공지능 컴퓨터가 고유의 알고리즘과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자산관리를 해주는 일종의 온라인 서비스다. 쉽게 말해 기존의 프라이빗 뱅커(PB)의 역할을 로봇이 대신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개입이 최소화되면서 포트폴리오 작성에 객관성과 일관성이 높아진다. 모바일이나 PC만으로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수수료도 적고 시간이나 공간에 대한 제약도 없다. 금융권 일각에선 과거 고액 자산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자산관리 서비스가 로보어드바이저로 ‘대중화’ 됐다는 점에서 ‘금융업계 디지털 혁신의 핵심’으로 꼽기도 한다.
국내에선 신한은행이 2016년 최초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시작했다. 우리은행·KEB하나은행(이상 2017년 하반기) KB국민은행(2018년 1월) 등이 잇따라 도입하면서 현재는 국내 4대 은행 모두 운용 중이다. 로보어드바이저를 개발하는 핀테크 업체와 제휴를 맺거나 협력해 함께 개발하는 형태로 도입됐다.
올해 서비스를 시작한 국민은행을 제외하면 가입자 수가 각각 10만~20만 명에 달한다. 일부 은행은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소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가입금액 4000억 원을 돌파하는 등 빠른 속도로 몸집이 불어나고 있다.
은행들은 로보어드바이저로 은행 자산관리, 투자 시장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사에 몰려있는 고액 자산가를 끌어오면서도 일반 고객층까지 영역을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신규 모바일 펀드상품 가입자의 절반은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에서 유입되는 등 기존 은행 서비스로도 영향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인공지능과는 다른 로봇 알고리즘 한계
다만 걸음마 단계의 서비스인 탓에 로보어드바이저를 둘러싼 우려도 적지 않다. 특정 은행에 소속돼 한정된 상품으로 운용되는 점은 ‘양날의 검’으로 꼽힌다. 객관성과 일관성이라는 장점이 나오지만, 반대로 고객의 성향이나 목적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에 가입했다가 앞서와 같은 이유로 최근 철회한 직장인 A 씨는 “사람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 신뢰도 문제와 직결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A 씨와 같은 사례가 반복되면서, 일부 은행들은 전문가가 로봇이 내놓은 결과에 일정 부분 관여하는 ‘하이브리드 서비스’를 도입할 예정이다.
로보어드바이저의 활용 범위도 넓지 않다. 부동산, 은퇴, 수입·지출 관리, 세무 등의 재무관리 분야는 기존의 설계사들이 맡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의 자문 범위는 금융상품 간 포트폴리오 배분이나 주식 자산 배분 정도다.
알고리즘과 데이터 등 시스템 문제는 자동화 서비스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려 가운데 하나다. 로봇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특히 소액 자산가와 같이 데이터가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 유사한 전략만 추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문제는 수익률로도 직결된다. 현재 운용 되고있는 은행들의 ‘안정형’과 ‘중립형’ 로보어드바이저 수익률은 예적금 금리 수준에 불과하다.
그 밖에 시스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불완전 판매부터 수익률 하락, 특정 상품에 투자가 집중되는 금융시스템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눈높이를 낮춰야한다”고 강조한다. 은행에서 상용화 된 로보어드바이저는 완벽한 AI(인공지능)으로 보기 어렵고, 미래를 예측하고 고수익을 가져다주는 ‘알파고’ 개념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권의 로보어드바이저는 AI의 필수 기능인 딥러닝(Deep Learning, 기계가 스스로 학습한 뒤 결과물 도출),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계가 스스로 발전하는 기술) 등과 거리가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로보어드바이저 개발 업체 관계자는 “로보어드바이저는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는 ‘로봇 설계사’가 아니라 옆에서 도움을 주는 일종의 서비스 가운데 하나로 봐야 한다”며 “로보어드바이저의 기본 전제는 ‘시장 상황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다. 로봇이 투자해야 할 부분을 예측하고 ‘찍어주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자산들의 관계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게 이 기술의 핵심이다. 분석과 정리는 기계가 가장 잘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예를 들어 주식이 내릴 때 채권의 움직임이라든가, 세계 시장 상황에 대한 한국의 반응 등 큰 틀에서 유의미한 관계를 정리한다. 이 결과를 토대로 한 분야에서 큰 변동이 생기면 다른 분야로 자산을 옮기거나 분산하는 시스템”이라며 “시장은 사람의 말에 따라서도 움직인다. 이 때문에 잘못된 의사 선택으로 자산을 잃는 일이 없도록 ‘방어’에 초점을 두는 한편, 조금씩 꾸준히 안정적으로 성장해 복리 효과를 내는 게 로보어드바이저”라고 덧붙였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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