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21일 서울 서교동 ‘진진야연’에서 팝업 식당 형태로 시연된 일본 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초의 명물 짬뽕. 나가사키 짬뽕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동시에 한국의 짬뽕과 다르지만 원형적인 구조는 거의 같다.
오바마 마을. 일본에 있다고 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했을 때 동명이라는 이유로 축제를 벌여 전 세계적인 이목을 끌기도 했다는 위트 있는 이 마을은 어디인가.
지도를 찾아봤다. 긴 일본 열도의 남단, 나가사키현에서도 동쪽으로 뻗어나간 시마바라 반도 서쪽에 있는 작은 동네였다. 있는 것은 멸치와 바다, 온천 정도. 바다 건너 사는 이의 흥미를 끌기엔 영 시시할 수밖에 없는 무명의 시골 마을이다.
이 마을이 서울로 와서 특별해졌다. 지난 21일 요리사 박찬일 씨의 기획으로 ‘진진’ 왕육성 셰프와 음식 칼럼니스트 박정배 씨, 그리고 운젠시 관광물산과 공무원 하야시다 마사아키(林田真明)씨가 참석한 ‘동아시아 짬뽕을 말하다’ 세미나를 통해서다. ‘진진야연’과 인접한 왕 셰프의 다른 식당 중 하나인 ‘진진가연’에서 열렸다.
나가사키에서 운젠시로, 운젠시에서 또 한 번 들어가야 있는 이 작은 마을의 진짜 명물은 짬뽕이다. 1980년대까지는 온천 관광상품으로 마을이 먹고 살 만했지만 인적이 뜸해지며 대체 관광 상품으로 개발한 것이 짬뽕. 이 오바마 짬뽕을 전국구 명성으로 끌어올린 이가 바로 하야시다 마사아키 씨다. 짬뽕계에서는 전국구 유명인으로 꼽히며 ‘짬뽕 번장(番長, 두목)’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를 모델로 한 드라마도 2015년 NHK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오바마의 짬뽕은 한국에 라면으로까지 출시된 나가사키 짬뽕과 거의 비슷하지만 돼지뼈에 닭뼈와 멸치를 풍성하게 사용하고 양배추 등 풍부한 채소와 해산물, 그리고 분홍빛 가마보코(어묵)을 고명으로 올린다. 육수에 돼지뼈만 사용해 깊고 진한 질감을 만들어내 진한 국물이 특징인 돈코츠 라멘의 원류로 지목되기도 하는 나가사키 짬뽕과 또 다른 별미다. 멸치의 익숙한 향과 시원한 해산물 향이 한국인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더군다나 이 세미나의 메인 행사로 점심과 저녁에 걸쳐 팝업 식당 형태로 ‘진진가연’에서 시연한 서울판 오바마 짬뽕은 면을 공수할 수 없었던 상황 상 한국의 탄탄하고 쫄깃한 짬뽕 면을 사용해 더욱 위화감이 적었다.
이 세미나에서 이들이 찾고자 한 것은 중국에도, 한국에도, 일본에도 있는 공통 음식 ‘짬뽕’의 족적이다. 하야시다 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일본 짬뽕 원류는 나가사키로 지목된다. 복건(福建)성 출신으로 나가사키에 정착한 요리사 진평순(陳平順)씨의 식당 시카이로(四海楼)에서 지나우동(支那 うどん)으로 불리던 것이 나가사키 짬뽕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복건성의 장육사면(長肉絲麵), 초육사면(炒肉絲麵)과 같은 면 요리가 나가사키의 식재료를 만나 변형된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양배추와 씁쓸한 맛을 내는 두꺼운 면, 다양한 해산물로 중국인 유학생들의 배를 불리던 메뉴라는 것.
한편 박정배 씨에 따르면 한국 짬뽕의 원류는 1970년대 인천의 풍등각으로 지목된다. 1960년대 초마면(炒碼麵)을 원형으로 한 우동, 또는 북경식 면요리인 대로면(大滷麵)의 변형으로 추정되는 울면의 한국적 변형이 짬뽕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왕육성 셰프 역시 고춧가루를 볶아 빨간 색을 낸 짬뽕에 대한 최초의 기억을 1970년대의 것으로 기억한다.
의의는 한국, 중국과 일본의 유사한 음식이 한 데서 만나 각자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교류하고, 인지한 데에 있다. 중국에서 시작되어 일본과 한국으로, 그리고 일본과 한국 사이에도 서로 영향이 오갔을 ‘짬뽕 로드’를 규정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가 따른다. 정확히 A의 영향으로 B를 도입해 C가 되었다, 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음식의 전파 경로이기 때문이다.
짬뽕은 천재적이거나 혁신적인 조리법이 아니기에 더욱더 원류와 족적을 명확히 하기가 어렵다. 재료를 강한 불에 볶다가 육수를 부어 주 에너지원으로 탄수화물, 즉 면을 말아 먹는 조리법은 전혀 비범하지 않다. 세계 어느 요리문화권에서나 사용되는 평이한 조리법이요, 각각의 문화와 환경마다 사용하는 재료의 맛과 향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중국의 짬뽕 조상이면 어떠하고, 일본의 시골 마을 짬뽕인들 어떠하고, 혹은 한국의 맵고 매운 짬뽕인들 또 어떠하리. 중요한 것은 너의 짬뽕과 나의 짬뽕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이날 그 누구도 경쟁하지 않았고, 굳이 추어올리거나 위세로 억누르려 하지 않았다.
중국의 그 무엇이었던 짬뽕이 서해를 건너고 현해탄을 건너던 그때에도 인정과 존중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너와 나의 입맛과 문화는 경쟁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가진 맛난 것을 너도 먹어보라 권하는, 그런 겸허한 호의를 통해 우리 사이의 짬뽕 가교는 놓였을 터다. 그리하여 오바마 마을로부터 온 맛 나는 짬뽕 한 그릇, 반갑게 먹었다.
필자 이해림은? 패션 잡지 피처 에디터로 오래 일하다 탐식 적성을 살려 전업했다. 2015년부터 전업 푸드 라이터로 ‘한국일보’ 등 각종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준비 중이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먹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음식 관련 행사, 콘텐츠 기획과 강연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이해림 푸드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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