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평창 동계올림픽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개막식 전까지만 해도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지만, 자국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것을 소중한 기회로 생각하며 10개월 전부터 티켓 추첨 신청을 하고 당첨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심전심일 터. 안방에서 보는 것과 현장의 분위기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수한 스포츠 경기 관람에 대한 기대를 품고서, 김연아 선수 주니어 시절부터 빙상경기를 챙겨본 오랜 팬의 마음으로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을 신청한 후 6개월이나 기다려 다행히 당첨의 기쁨을 누렸다. 기왕 가는 김에 스키점프와 아이스하키도 보기로 했다.
마침 도착한 날에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선수의 시상식이 열려서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가볍게 들렀던 시상식장에서 전통음악 전공자이자 클래식 레코딩 마스터 클래스 수료자는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았다.
‘어라? 음악과 음향이 심각하게 좋잖아!’
# 메달 수여식에 사용되는 ‘자진모리장단’
메달플라자는 야외 광장에 무대가 있는 구조다. 그런데도 실내에서 듣는 것 같은 풍부한 음향이다. 적재적소에 고급 스피커가 배치되고 원음도 매우 품질이 좋게 마스터링 된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가 시상식 배경음악에서 중요 비중을 차지하는 음악적 재료가 한국 전통음악이었다. 이것은 3+3+3+3박자가 빠르게 엮어진, ‘자진모리장단’이다.
유럽 클래식 음악이나 동서양 대중음악에서 흔히 나오는 ‘박자’ 형태가 아니라 진정 ‘장단’이어서, 전통음악 전공자는 일단 본능적으로 반가웠다. 과연 계속 집중하여 들으니 꽹과리가 정말로 당당하게 등장하여 자진모리장단을 제대로 연주했다. 전통음악이 더 많은 비중을 당당히 차지한 크로스오버 음악을 좋은 음향으로 올림픽 시상식장에서 들으니, 육성으로 감탄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시상식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는 곡이라 전반적으로는 단순반복 음형이 무난하게 흐르지만, 제법 세련된 서양 오케스트라와 전자음향의 조화로 짜임새가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조바꿈도 유려하게 연결되어 분위기를 전환한다. 정수리 쪽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스포츠 보러 갔다 음악에 먼저 행복한 충격을 받은 전통음악 전공자는, 이후에도 연신 귀가 즐거웠다. 스키점프장의 경기에 맞는 적절한 디제잉(DJing) 타이밍 진행에 놀라고, 피겨와 쇼트트랙이 열리는 아이스아레나의 ‘고퀄’ 음향시설에 감동하고, 장시간 진행되는 피겨 대회 정빙 휴식 중 초청 뮤지션 라이브 행사에도 만족하고, 심지어 전통음악 그룹이 초청되어 제대로 된 정가를 부르는 것을 보고 ‘누가 이런 세심하고 사려 깊은 기획과 섭외를 했을까. 심지어 방송 중계도 되지 않는 행사인데’ 하는 놀라움에 빠졌다.
특히 아이스하키센터는 NBA 중계에서 들었던 바로 그 익숙한 전자오르간 선율을 고퀄 음향으로 울려 퍼뜨려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난생 처음 직관으로 본 아이스하키 자체도 근본적으로 혼미하기는 마찬가지인 종목이었다. 조그만 퍽이 어디 가는지 시선 고정하다 갑자기 선수들이 종목을 바꿔서 격투기를 하는 걸 보니, 진정한 싸움구경은 이런 것이지 싶었다. 딱 그것에 어울리는 음악과 음향이다.
# 한국 음악의 현재와 미래 보여준 자랑스러운 폐막식
일부 경기를 직관하고 폐막식은 안방에서 봤다. 일단 현장의 음향시설에 감동을 하고 나니 텔레비전 음향이 영 마음에 차지 않는다. 조곤조곤 해설하는 지상파 방송국의 중계 대신 현장에서 풍부한 음향으로 음악만 누렸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컸다.
폐막식의 전반적인 무대연출과 음악은 전통음악 전공자의 관점에서 매우 만족스럽다. 훌륭한 스태프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하고 준비했다는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개막식에도, 폐막식에도 연이어 고등학교 후배님들이 장구와 거문고로 등장해서 반가웠고 대견했다. 전통음악을 제대로 하는, 그러나 젊고 어려서 신선한 감각을 몸에 가지고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낸 역사의 현장이었다.
약간의 케이팝과 마지막 댄스타임 디제잉을 제외하면 시종일관 개최국이 소유하고 있는 음악적 재료를 아낌없이 많이 사용한 태가 흠뻑 났다. 그럼에도 해외 손님들이 대한민국의 전통음악을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도록 영리하게 현대음악(대중음악)과 잘 융합한 결과물이다.
개막식에서도 한국음악이 많이 등장해 내심 반가웠는데, 폐막식에는 더 많이 등장한 셈이 됐다. 장사익 씨와 어린이들이 부른 애국가는 서양 창법의 성악가가 부르는 것보다 해외 손님들에게 더욱 신선하게 기억될 것이다.
강원도 출신 열세 살 소년 양태환 기타리스트와 강렬한 거문고 합주 선율, 거기에 더한 안무 퍼포먼스는 대한민국이 아닌 전 세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신선한 조합이다. 해외에서도 환영받는 국악 퍼포먼스 밴드그룹 ‘잠비나이’ 또한 절묘한 등장이었다. 오히려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는 ‘농담 반 진담 반’ 평가를 듣는 밴드다.
‘춘앵무’는 본디 궁중에서 즐긴 전통무용이다. 전 세계인들에게 조선왕조의 시대의 무용을 잠깐이나마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국 독무로 혼자 추는 것이 기본이다. 키가 늘씬하게 큰 국제 미인대회 출신 배우이자 전통음악 전공자인 이하늬의 춘앵무는 그런 면에서 무척 적절했다. 음악은 춘앵무 오리지널 음악이 폐막식 분위기에는 다소 이질적일 수 있기 때문에, 잠비나이의 편곡 선율에 자연스레 얹히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단 입장’에서는 시종일관 판소리와 구음이 메인으로 나왔다. 대한민국 전통음악 하면 판소리가 대명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아무리 전통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판소리는 분명히 들어본 적이 있으리라. 브라스밴드 음악과 판소리의 콜라보, 특히 코리아 단일팀 입장 때 자진모리로 연주하는 꽹과리 선율이 극대화되면서 민요 ‘쾌지나칭칭나네’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들으니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다.
‘꼭두’가 등장하며 구성진 가락의 피리독주가 나왔을 때, 추모의 시간이라는 느낌이 단번에 왔다. 우리 전통문화의 소소한 면모를 최대한 영리하게 담으려는 기획자와 음악감독의 노력이 진하게 와 닿는 시간이었다. 진혼을 하는 구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게 뭔가 싶어 당혹스러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 음성을 잠깐만 들어도 눈물이 차오르는 사람들 역시 분명히 적지 않다.
‘우리 것이 최고’라는 맹목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외국인 역시 조금만 집중해서 들어도 처연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음악이다.
눈물을 추스르고 있을 때 새로운 선수위원 소개가 이어졌다. 외국 사람들이니 여기선 전통음악이 좀 쉬려나 싶었는데, 소금과 해금의 병주가 제대로 전통 방식을 유지하며 나온다. 아! 정말 고마운 한국음악 작곡가님들. 그리고 그런 작곡가님들을 30년 만에 올리는 올림픽에 섭외한 기획자들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올림픽찬가를 부른 오연준 군, 변성기 오기 전에 이런 귀한 자료를 남기게 된 것은 엄청난 영광이리라. 그 영광에 걸 맞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이 역시 전 세계에서 오연준 군 아니면 누가 할까 싶었다. 올림픽기를 내려 받은 군인들이 조선시대 군관 복식을 하고 있는 걸 보자니, 음악뿐만이 아니라 정말 문화요소 전반적으로 전통의 정체성을 어색하지 않게 잘 녹이는 행사임이 분명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보다 더욱 과감하고 풍부하게 사용된 전통음악은 무척이나 훌륭했다. 그럼에도 전 세계 사람들이 자연스레 누리고 공감할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로 결과물이 뽑아져 나온 것은, 분명히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칫하면 촌스러워질 수 있고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크로스오버의 위험성인데, 이번 평창올림픽의 음악은 결코 촌스럽지 않고 충분히 고급스러웠다.
# ‘비판보다는 격려’가 올림픽정신에 부합
그렇게 흡족한 마음을 품고 열어본 SNS 뉴스피드에는 ‘폐막식이 너무 별로였다’는 불만이 쏟아진 것을 확인했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우리 전통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호불호가 있을 수 있고, 전통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 또한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그렇게 각자가 느끼는 감각과 취향이야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객관적인 만듦새’가 요소요소 아름답게 빛을 발한 음악과 공연을 전통문화에 무지한 가벼운 식견으로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건 옳지 않다. 관객과 시청자의 취향이 존중받아야 하는 만큼, 겨우내 고생해서 음악과 퍼포먼스를 꾸려낸 스태프와 공연자의 노력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우리에겐 불과 1년 전만 해도 ‘아라리요 평창’이라는 기괴한 홍보 이벤트로 문화체육부 예산 수억 원을 낭비한 일이 있다. 올림픽이 열리는 강원도지역의 아리랑도 아닌 경기아리랑을 일본식 뽕짝 스타일로 저렴하게 편곡한 노래가 많은 사람의 귀를 괴롭혔었다.
효린과 싸이를 흉내 낸 것으로 추정되는 트럼페터(이후 제작자의 남편으로 밝혀진)의 이해 못할 퍼포먼스로 많은 사람들이 공분했던 일이다. 그 영상이 전 세계적 망신이 될 수 있다는 걸 결국 문화체육관광부도 깨달았는지, 은근슬쩍 소리 소문 없이 유튜브에서 내려버렸다.
평창올림픽 행사에 대해 무조건 비난부터 하기 전에, 한 번만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자. 개막식도, 폐막식도, 경기장도, 시상식도, 모두 그런 이상한 음악들과 퍼포먼스로 도배가 될 뻔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치른 올림픽은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행사임에 분명하다.
올림픽 정신에는 비난이 아니라 격려가 어울린다. 그리고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패럴림픽도 남았다. 다시 박수를 치자. 자원봉사자들, 선수들, 행사 준비한 이들을 고마워하며.
필자 송선형은? 서울대학교 국악과 작곡 전공 학·석사를 마치고, 전북대학교 한국음악과 이론전공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는 문화예술 인문학 강의와 세미나 진행을 하는 전문가 그룹 ‘유스엠’ 이사를 맡고 있다.
송선형 예술인문그룹 유스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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