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투자는 생산 활동, 즉 자본재의 총량을 유지 또는 증가시키는 활동이다. 투기는 생산 활동과 관계없이 이익 추구 목적으로 실물자산이나 금융자산을 구입하는 행위다. 투자와 투기는 이익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투자는 실수요자들에게 자산을 제공하는 행위이고, 투기는 가수요자들끼리 자산을 주고받는 행위가 대부분이다. 투자는 이용·관리할 의사가 있지만, 투기는 이용·관리할 의사가 거의 없다. 투자는 예측되는 미래가치가 목적이지만 투기는 단기적인 양도차익이 목적이다. 투자는 자기나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만, 투기는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최근 다양한 경제 주체들을 만났다. 부동산 투자자, 투자와 무관하게 직장만 다니고 있는 사람, 주식이나 비트코인 투자를 하는 사람 등이었다. 이 중 누가 투자자이고, 누가 투기꾼일까?
첫 번째 부동산 투자자는 최근 2년 동안 단 한 채의 부동산도 매수하지 못했다. 그는 5년 전 매입한 부동산만 소유하고 있다. 2016년 이후 부동산 투자가 매우 어려운 시장이 되었다. 시세가 신규 아파트 중심으로 상승하는데, 신규 아파트는 투입 비용이 옛날 아파트보다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존 투자 아파트들의 소유기간은 대부분 5년이 넘었다. 2년 전세로 세 번의 세입세대들에게 임대 주택을 제공했다.
둘째, 직장생활만 하는 사람은 직장 때문에 최근 3년 동안 2번 이사했다. 서울의 자가 소유 아파트에 살다 지방 발령으로 사무실 근처 미분양 아파트를 매수했다. 투자 수요가 거의 없는 곳이었지만 직장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급하게 다른 지방으로 다시 발령을 받다 아파트를 또 사야 했다. 본의 아니게 3주택자가 된 것이다.
새로운 발령지는 수요가 많은 곳이지만 기존에 살던 곳과 두 번째 매입했던 지역은 실거주 수요가 거의 없어 집을 내놓은 지 1년 가까이 되었지만 매수 문의조차 없다. 어쩔 수 없이 낮은 가격으로 전세를 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주식으로 돈 좀 번 사람이다. 바이오 테마 등 주식투자, 가상화폐 투자 성공으로 시세 높은 신규 아파트를 매수한 투자자들이 꽤 있다. 최근 부동산 투자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주식과 가상화폐 이야기를 자주 한다. 대학교에는 주식, 가상화폐 투자 동호회가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다시 정리해 보자. 첫 번째 부동산 투자자의 경우, 2016년 이후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았다. 이번 정부에서 투기 세력으로 규제하는 다주택자지만, 최근 2년 이상 아파트 시세 상승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아울러 부동산 시장에 전세 물량을 시장 시세대로 5년 이상 꾸준히 유지·공급하는 다주택자다.
두 번째 사례의 경우, 최근 2년 동안 투자 의도 없이 2채의 부동산을 사야 했다. 기존의 아파트들은 매수 문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보유하고 있다. 매수 시세보다 10% 이상 낮춰 내 놓아도 매매가 안 된다. 현재 3주택 소유자다. 다주택자 규제가 본격화되는 4월까지 매도를 못한다면 다주택자로서 여러 규제를 받아야 한다.
세 번째 사례를 보자. 주식,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생산 활동에 참여했을까? 이미 상장되어 있는 주식들이니 주식 가격이 더 오르더라도 해당 기업의 투자금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진이 본인들 주식을 팔아 시세 차익을 얻고, 시설·설비 보충이나 R&D 투자를 한다면 모를까, 일반 투자자들이 생산·유지 활동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비트코인의 경우, 어떤 생산·유지 활동에 도움이 될까?
세 가지 사례 중 어떤 것이 투자고, 어떤 것이 투기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첫 번째는 투기가 아닌 것 같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투기가 될 수 있다. 투기 여부를 실수요 유무 여부로 판단한다면 말이다. 궁극적으로 실수요에 도움이 되면 투자가 될 수 있고, 매수할 실수요가 없으면, ‘실수요를 확인도 하지 않고 묻지마 투자한 것’이라면 투기가 될 것이다. 미래가치에 대한 확실한 분석이 없었으니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실수요가 많아 자유경제시장의 논리대로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실수요가 없는 시장에는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해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사례처럼 수요가 없는 지역에 왜 아파트를 공급하게 내버려 두었을까? 지금 서울 및 몇몇 지역만 실수요가 많아서 공급이 문제이지, 지방의 꽤 많은 지역은 오히려 공급이 많아 문제다. 서울보다 오히려 실수요가 부족한 지방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더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지방 부동산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주식이나 가상화폐는 완전 가수요 시장이다. 대학생들도 가상화폐에 많은 투자를 했다. 몇 년 전 대학생들이 아파트 갭투자를 한다고 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갭투자로 아파트를 샀다고 문제가 된 경우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시세가 빠지더라도 임대를 줄 수 있는 실물이 남는다. 전세를 끼고 투자를 할 정도의 아파트라면 실수요는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주식이나 비트코인 등은 실수요라는 것이 없다. 모두 가수요다. 미래 가치를 담보할 수 없는 투자물이라는 것이다. 그럼 투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실력이 좋은 외국인, 기관 투자자, 주식 투자자들이야 그들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선택한 것이니까 상관없겠지만, 이런 투기 시장에서 시세 차익만 보고 진입하는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을 위한 어떤 안전장치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추진하는 주거복지 로드맵을 보면, 이제 19세 이상이면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든다. 전세자금 대출로 주식이나 비트코인 시장에 뛰어들 대학생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이다. 전세자금 대출은 절대 학생들에게 현찰로 직접 주면 안 된다. 바로 임대인에게 줘야 한다. 그런 구체적 실행 항목이 필요해 보인다.
아파트는 목돈이 필요하므로 어느 정도 자산이 있는 사람만이 투자가 가능하다. 그러나 주식은 1000원으로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려가 된다. 최근 주식 시장이 좋다. 점점 더 큰 유동성 시장이 될 것이다. 부동산 쪽에서도 토지 보상금이 더 많이 풀릴 테니까 말이다.
지난 2월 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동연 부총리에게 투기와 투자의 차이를 설명해 보라는 질의를 했다. 김현미 장관과 김동연 부총리는 단기적 시세 상승 목적으로 접근하면 투기고, 장기적 접근이면 투자라고 설명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부동산 투자는 대부분 ‘투자’다. 반면 주식이나 가상화폐 매수는 대부분 ‘투기’다. 정부가 말하는 ‘투기’의 정의가 모호하다.
백 번 양보해 부동산 투자자를 투기꾼이라고 하자. 투기와 투자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우리 경제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부동산 시장에서 필요한 건 투기꾼과 투자자의 구분이 아니라, 국민들이 희망하는 지역 내 희망하는 주택에서 거주하는 것이다. 결국 주택의 수요와 공급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물리적인 주택의 추가 공급이 어렵다면 특정 지역에 몰린 수요를 분산시켜야 한다.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장기적인 대안이라도 나와야 한다. 수요를 분산하는 정책 중 가장 좋은 것은 수요가 몰린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간의 교통망을 엮는 것이다. 철도망, 도로망 등의 사회기반시설(SOC) 투입이 더 많아야 한다는 의미다. SOC 비용이 축소된 2018년 예산을 보면 씁쓸한 마음이 든다. 희망하지 않는 입지에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보다 희망하는 지역과의 교통망을 연계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복지정책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와 부동산 팟캐스트 1위 ‘부동산 클라우드’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부자의 지도, 다시 쓰는 택리지’(2016) ‘흔들리지 마라 집 살 기회 온다’(2015) ‘수도권 알짜 부동산 답사기’(2014) ‘대한민국 부동산 투자’(2017) ‘서울 부동산의 미래’(2017)가 있다.
※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부동산 인사이트] 다주택자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범일까?
·
[부동산 인사이트]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오면 서민 주거문제가 해결될까
·
[부동산 인사이트] '청약위축지역' 지정으로 예상되는 두 가지 갈림길
·
[부동산 인사이트] 강남에 집중된 정부 정책, 비강남 주민은 웁니다
·
[부동산 인사이트] '강남'과 '강남의 새 아파트'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