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안녕하십니까. 고려대 물리학과 79학번 최태원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4일 고려대학교 졸업식 연단에 섰다. 재계 서열 3위의 거물급 기업인이 대학 졸업식 축사로 나선 건 우리나라에선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자신을 SK그룹 회장이 아닌 고려대 동문으로 소개한 최 회장은 “학교에서 요청을 받았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원고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가닥을 잡았다”고 운을 뗐다.
최 회장은 “여러분은 준비를 끝내고 이제 실전에 나가 생존해야 합니다. 생존만 하려고 살다보면 언젠간 서글픔이 찾아옵니다. 서글프지 않으려면 가장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무기를 통해서 생존에만 쓰지 말고 행복해지는 데 쓰십시오”라며 행복을 강조했다.
또,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어지는 것을 해야 합니다. 남이 부과하는 많은 것들을 하게 되면 경쟁이 훨씬 심합니다. 그것들을 얻기 위해 쓸데없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남들과 다른 것을 한다고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며 “이타적인 행동을 하십시오. 세상의 가치가 변하고 있습니다. 최근 저희 SK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그 가치가 절 행복으로 이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사회적 가치를 강조했다.
솔직하면서도 거침없는 입담도 눈길을 끌었다. “저는 실패가 상당히 많았던 사람입니다. 두 번이나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가장 어둡고 뼈저린 경험입니다”라며 “저는 그것이 진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안에 있으면서 내 삶이 자유롭지 못했고, 정의롭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실패를 자산으로 삼으십시오. 실패를 통해 얻는 자산은 어마어마 합니다”라고 격려를 덧붙였다. 최 회장은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끝으로 15분여 동안 연설을 마쳤다.
애플을 이끌던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축사가 끝나자 현장에선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명연설로 회자되는 그의 연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졸업생에게 메시지를 던지기에 충분했던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장인 빌게이츠에 이어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 또한 2017년 하버드 졸업식 연사로 나와 대중의 환호를 얻기도 했다.
기업인 신뢰도 24%, 주요 28개국 중 25위. 글로벌 컨설팅 업체 ‘에델만’이 지난해 발표한 ‘에델만 신뢰 지수 보고서’에 나타난 우리나라 지표다. 아직까지 대중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 우리나라 기업인이 대학 졸업식 연사로 나서는 문화는 자리 잡지 못했다. 이러한 가운데 최 회장이 대학 졸업식에 참여한 것은 의미있는 변화라는 반응이다.
김주현 고려대 전자정보공학과 졸업생(27)은 “긍정적인 것 같다. 사회 첫발을 내딛는 자리에서 사회 선배인 기업인이 와서 격려해준다면 앞으로도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졸업생은 “우리나라 기업인이 대학 졸업식에 와서 졸업생에게 전해줄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박현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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