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일군 기업들은 창업 1~2세대를 지나 3~4세대에 이르고 있지만 최근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가족 승계는 더 이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카리스마 넘치는 ‘오너경영인’ 체제에 거부감이 커지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담당 업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늘고 있다. 사업에서도 인사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전문경영인이며 그 자리는 뭇 직장인들의 꿈이다. ‘비즈한국’은 2018년 연중 기획으로 각 업종별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의 위상과 역할을 조명하며 한국 기업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1960년생인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1985년 한일은행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우증권, 메리츠증권을 거쳐 2002년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에 합류해 2007년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대표이사 경력만 10년이 넘는장수 CEO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유 사장 영입을 위해 1년에 걸쳐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김 부회장은 유 사장에게 두터운 신뢰를 보내며 한국투자증권 경영 대부분을 유 사장에게 맡겨왔다.
증권업계에서 거물로 꼽히는 유 사장은 지난해 말 차기 금융투자협회장으로도 거론됐다. 유 사장은 “생각이 없다”고 했음에도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1월 권용원 키움증권 사장이 금융투자협회장으로 당선됐지만 증권업계에서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유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광휘일신(光輝日新)’이라는 사자성어를 언급했다. ‘빛은 그 자리에 있지만 항상 새롭게 빛난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안주하지 말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변화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투자증권은 2017년 6조 2005억 원의 매출과 6847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가 대표로 취임한 2007년 당시의 매출은 1조 2929억, 영업이익은 2376억 원으로, 지난 10년 간 엄청난 성장을 이뤄낸 셈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유 사장 취임 후 한국투자증권은 기존 위탁수수료 수익에 의존해 오던 증권사 수익 구조를 ‘IB-AM(Investment Banking-Asset Management)’모델을 기반으로 개편했다”며 “국내 금융투자회사 중 가장 다변화되고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유 사장이 강점을 보이는 분야는 국제영업이다. 그는 1992~1999년 대우증권 런던 현지법인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메리츠증권 상무, 한국투자증권 부사장으로 근무할 때도 국제영업 파트를 맡은 바 있다.
유 사장이 대우증권 런던 현지법인에 근무할 당시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진다.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루 한국 주식시장 거래량의 5%를 혼자 매매하는 신기록을 세운 것. 영화 ‘007’ 시리즈를 좋아했던 유 사장은 007 시리즈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이름을 빌려 ‘제임스 류’로 이름을 짓고 사무실 전화번호 끝자리도 007로 만들었다. 한국투자증권은 “친근한 이름과 쉬운 전화번호를 활용해 유 사장이 외국 투자자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유 사장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도 동남아시아 진출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인도네시아 단빡증권을 인수, 올 상반기 중 현지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 해외법인으로 전한할 계획이다. 앞서 2010년에는 베트남 현지법인 KIS 베트남(KIS Vietnam)을 설립했고, 오는 3월 계획 중인 38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완료하면 자기자본 기준 베트남 7위 증권사가 된다.
유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향후 글로벌 경제성장은 아시아 및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빠른 시일 내 인도네시아 인수 작업을 마무리하고 단기간 내 업계 10위권에 안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유 사장의 다른 과제는 초대형 투자은행(IB)을 선도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한국투자증권은 초대형 IB 가운데 최초로 단기금융업을 인가 받았다. 요건을 갖춘 미래에셋대우, KB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은 아직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유 사장은 직원들에게 “한국투자증권은 최초로 단기금융업의 인가를 받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며 “고객에게는 경쟁력 있는 금리제공을, 혁신기업에게는 적극적으로 모험자본을 공급함으로써 선두주자로서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직원들은)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
1961년생인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은 1989년 동원증권에 입사, 1996년 서초지점장을 맡으며 최연소 지점장 타이틀을 얻었다. 당시 동원증권에는 박현주 동원증권 강남본부장 이사(현 미래에셋대우 회장), 구재상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장(현 케이클라비스자산운용 대표)도 근무하고 있었다.
1997년 박 회장은 최 부회장, 구 대표 등과 의기투합해 미래에셋금융을 설립했고, 최 부회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를 맡았다. 그는 미래에셋벤처캐피탈 대표와 미래에셋증권 대표를 거쳐 2007년 12월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다.
최현만 부회장의 좌우명은 ‘성실한 실천’이다. 말만 앞세우기보다 책임감을 갖고 성실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말로만 공언을 하고 실천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며 “성실하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실천만이 지속가능한 경영의 바탕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 부회장은 2012년 6월부터 2016년 4월까지 미래에셋생명 대표를 맡았다. 박현주 회장이 그를 미래에셋대우에 복귀시킨 이유는 당시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이 합병하면서 통합법인의 연착륙을 맡길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 부회장은 현재도 통합법인의 전략을 총괄하며 미래에셋대우 성장에 힘쓰고 있다.
최 부회장은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과 동원증권 출신, 장수 CEO라는 공통점이 있어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가 형성된다. 지난해 1분기 한국투자증권의 순이익은 1301억 원으로 미래에셋대우(1102억 원)를 앞섰지만 2분기에는 미래에셋대우가 1636억 원을 기록해 1405억 원의 한국투자증권을 이겼다.
한국투자증권의 2017년 총 순이익은 5244억 원으로 미래에셋대우(5049억 원)를 앞섰지만 미래에셋대우의 매출(10조 2898억 원)이 한국투자증권(6조 2005억 원)보다 훨씬 높아 어느 한 쪽이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최 부회장도 유 사장과 마찬가지로 해외 시장 개척에 힘쓰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최근 7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며 “자본금 확충을 통해 글로벌 인수·합병(M&A), 해외투자 등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 부회장의 최근 행보 중 눈에 띄는 다른 부분은 IT 회사와의 협업이다. 지난해 4월 미래에셋대우는 KT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금융서비스 제공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6월에는 네이버와 ‘글로벌 디지털금융 사업 공동 진출과 관련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네이버와 협약을 맺을 당시 미래에셋대우는 “네이버와 전략적 제휴로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 디지털금융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로컬 종합증권사로 성장하고 있는 현지 법인에 온라인 개인 고객을 대대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차별화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 부회장의 숙제는 초대형 IB 진출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인 증권사는 단기금융업무를 할 수 있다. 자기자본 8조 원이 넘으면 투자자로부터 예탁받은 자금을 통합 운용해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종합투자계좌(IMA) 업무도 할 수 있다.
2017년 말 기준 미래에셋대우의 자본은 7조 3824억 원으로 약 5000억 원의 자본을 확충하면 IMA 업무 허가 요건을 충족한다. 한국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4조 3196억 원이기에 당분간 IMA 업무를 허가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초대형 IB 시장에서 최 부회장과 유 사장의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박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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