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삼성전자와 HP 등 정보통신 업계의 거인들도 생산성을 향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노라면 새삼스럽게 조직 차원의 노하우 전수와 경험의 공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된다. 어떤 조직이 수많은 실수로부터 배우고 또 프로세스를 향상하는지 측정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학습곡선’을 측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학습곡선’이란, 같은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하는 동안 작업의 효율이 개선되는 과정을 측정한 것이다.
아래의 그래프는 ‘학습곡선’인데,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생산성이 개선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기업마다 학습곡선의 모양은 다 다를 수 있다. 이 그래프를 보면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생산성 향상 속도가 점차 느려지지만, 조직에 따라서는 일정한 속도로 생산성이 향상될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정말 학습곡선이 존재하기는 할까? 또 어떻게 해야 학습곡선을 탈 수 있을까?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의 레이 레이건스 교수 등은 외과수술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학습곡선이 실제 존재하는지, 더 나아가 어떻게 해야 습득되는지 분석했다.*
레이건스 교수팀은 정형외과에서 시행하는 팔꿈치와 골반 관절의 교체 수술에 주목했다.
(연구대상) 병원의 정형외과는 규모가 커서 여러 수술팀이 같은 종류의 수술을 시행하고 있었다. 병원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분석한 연구팀은 수술 방법의 편차가 크지 않은 관절 교체 수술에서도 수술팀에 따라 소요시간에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데이터에 따르면, 전체 수술팀의 평균 소요시간은 2.6시간이었는데, 가장 빠른 팀은 불과 28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가장 느린 팀은 무려 11.5시간이나 걸렸다. 레이건스 교수팀은 수술팀 간에 나타난 수술 소요시간의 차이가 ‘경험을 통한 학습’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일한 수술에 이렇게 시간 차이가 나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에 레이건스 연구팀은 과거 이 병원에서 시행한 관절 교체 수술 데이터 1151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크게 다음의 세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발견 1: 구성원의 교체 없이 수술을 반복할수록 해당 팀의 수술 시간은 단축된다. 동일한 구성원이 10회의 수술을 경험할 때마다 수술시간은 약 10분 단축된다. 즉 ‘팀’ 차원의 학습곡선은 존재한다.
발견 2: ‘병원’ 차원의 학습곡선도 확인되었다. 병원의 모든 수술팀이 100회의 수술을 경험할 때마다 수술팀 전체 평균 수술 시간이 34분 단축되었다. 수술 경험이 늘어날수록 병원 차원의 노하우가 축적되어 각 수술팀에 학습효과를 가져다준다.
발견 3: 수술팀 구성원 개개인의 경험이 팀의 퍼포먼스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다. 먼저 구성원 개인이 축적한 수술 경험이 어중간한 경우에는 오히려 소속팀의 수술시간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상의 결과는 팀을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따라, 더 나아가 팀원의 협력관계에 따라 생산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병원뿐만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의 마빈 리버만 교수 등은 미국의 제조업체 5만 5000개를 대상으로 학습곡선을 측정한 결과, 다음의 결과를 도출했다.**
발견 1: 미국은 모든 산업에서 기업의 학습곡선이 나타난다.
발견 2: 학습효과가 높은 기업은 이익률도 높은 경향이 있다.
발견 3: 산업에 따라 학습효과의 차이가 크다. 산업별로는 컴퓨터, 의약품, 정유산업 등이 가장 학습효과가 컸으며, 반대로 학습효과가 가장 낮은 산업은 가죽 가공, 제사, 제지 산업 등이었다.
이상과 같은 연구의 결과는 두 가지의 시사점을 제시한다.
첫째, 팀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학습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팀원들에 비해 수준이 크게 차이 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 팀의 성과는 오히려 더 낮아질 수도 있다. 따라서 회사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조직 문화를 육성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학습곡선의 기울기가 가파른 혁신적인 산업일수록 팀워크의 형성을 장려하고 직원들의 근속 기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
둘째, 산업별로 학습곡선의 형태는 다르다. 국가경제 차원에서 정보통신 혹은 바이오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산업의 구조가 학습곡선의 기울기가 완만한 전통산업에 편중되어 있을 경우에는 이 나라의 성장이 느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통신이나 바이오 등 학습곡선의 기울기가 가파른 산업을 적극 육성하는 등의 산업정책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이런 면에서 볼 때 꽤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주요 기업들의 조직 구조가 장기간의 근속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 등 학습곡선의 기울기가 가파른 산업들의 비중도 높기 때문이다. 물론 정규직 위주의 고용구조로 인해 경기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고, 특히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가 크게 확대되는 등 불평등 문제가 부각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만 이런 문제가 한국경제의 ‘강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동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다 학습곡선의 기울기를 가파르게 만든 핵심 역량을 자칫하면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과학이 어렵고 또 개혁이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Ray Reagans, Linda Argote, and Daria Brooks, “Individual Experience and Experience Working Together: Predicting Learning Rates from Knowing Who Knows What and Knowing How to Work Together”, Management Science(2005), Volume 51, Issue 6.
**Natarajan Balasubramanian and Marvin B. Lieberm, “Industry learning environments and the heterogeneity of firm performance”, Strategic Management Journal(2010), Volume 31, Issue 4.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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