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매달 다른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집이 12개란 말인가? 아니면 한 달씩만 살고 이사 가는 노마드란 말인가? 둘 다 아니다. 집은 하나다. 하지만 매달 다른 집이 된 듯 새롭게 꾸민다.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스타일링이다. 옷을 갈아입듯 라이프스타일 공간과 스타일 전체도 주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
가장 쉽게 하는 것이 가구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위치만 바꾸는 걸로는 아쉽다. 그래서 그림을 렌털해서 매달 바꾸거나, 매달 새로운 인테리어 소품으로 분위기를 내거나, 조명을 바꿔서 분위기에 변화를 주기도 하고, 식물이나 꽃을 통해 분위기를 바꾸거나, 매달까진 아니어도 주기적으로 페인트칠을 해서 분위기를 전환하기도 한다.
왜 이런 수고스러움을 매달 감수하냐고? 집 안을 꾸미는 게 즐거워서 그렇다. 집을 매달 바꾸진 못해도 집 안 분위기를 바꾸는 건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셀프인테리어홀릭족도 있다.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하다 보니 매달 새집에서 사는 듯한 이들도 생기는 것이다. 집스타그램으로 자신의 집이 멋지게 바뀐 걸 계속 자랑하고 과시하고 싶어한다. 이제 집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소비하는 시대다. 자기 취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소비가 바로 집을 꾸미는 일이기 때문이다.
셀프인테리어 시장이 커지면서 가장 큰 수혜자 가운데 하나가 페인트 회사들이다. 벽지 대신 페인트로 집안의 벽을 칠하는 것이 보편화되기 때문이다. 벽지 시공은 셀프로 하기 쉽지 않고, 비용도 적지 않다. 하지만 페인트는 벽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셀프가 가능하다. 이러다 보니 셀프인테리어를 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페인트칠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페인트의 컬러 종류가 국내 업체는 2000여 종류에서 외국 업체는 4000여 종류까지 있다. 거기다 페인트의 친환경성도 강조된다.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기준치 이하거나, 아예 없는 제품들이 많기에 페인트칠로 벽지를 대신하려는 이들이 늘어날 수 있다.
이제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에는 페인트회사 매장이 있다. 페인트를 파는 것부터 컬러 컨설팅, 시공과 인테리어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일대일 상담도 제공한다. 외국 페인트 업체들도 속속 한국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던에드워드는 2013년 대비 2017년 매출이 3배 정도 늘었고, 벤자민무어는 매년 20%씩 매출 증가세를 보인다. 던에드워드와 벤자민무어를 찾는 소비자의 70~80%가 셀프인테리어족으로 추정된다. 확실히 벽지의 시대에서 페인트의 시대로 전환한 듯하다.
집에서 식물의 역할도 커졌다. ‘반려식물’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반려동물처럼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인데, 베란다를 식물원처럼 꾸미는 이들도 생기고, 벽에 이끼나 식물을 식재하거나, 집 안 구석구석 식물을 배치한다. 집 안에서건 집 밖에서건 녹색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커졌다. 플랜테리어의 영향이기도 하고,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청정식물의 수요가 늘어난 것도 있다.
녹색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컬러였지만, 접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거주공간도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콘크리트 구조물로 바뀌다보니, 과거 마당 있는 집에서처럼 녹색이 가득한 환경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결핍은 늘 새로운 욕망을 낳는다. 홈퍼니싱에서는 멋진 가구나 멋진 조명만큼이나 멋진 식물이 인테리어 효과를 낸다. 대형 선인장 화분을 찾는 수요가 늘다 보니 가격이 꽤 비싸졌다. 화분 몇 개 사두는 걸로 끝내지 않고, 전문가에게 플랜테리어를 맡기는 경우도 늘어나고, 관련 전문가도 자꾸 생겨난다.
이제 집을 스타일링해주는 역할이 필요해졌다. 선진국에선 이미 존재하던 시장인데, 한국에서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집 새로 짓고, 비싼 가구 사두고, 비싼 예술작품이나 소품 사두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집 안의 요소들을 스타일링해주는 것이다. 부자들 사이에선 스타일리스트가 정기적으로 집에 와서 스타일링을 봐주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매일 옷을 바꿔 입고, 한 달에 한두 번 헤어스타일 바꾸러 미용실에 가듯, 집 인테리어도 스타일링하는 것이다.
집을 스타일링하는 시대, 더 이상 소유만 가지고 집을 얘기하는 시대는 끝났다. 집이라고 다 같은 집도 아니고, 같은 브랜드의 아파트라도 같은 가치가 아니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보다 그 속을 어떻게 채웠느냐가 훨씬 중요해진 시대가 시작되었다. 확실히 집에 대한 두 번째 패러다임이 열린 것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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