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일군 기업들은 창업 1~2세대를 지나 3~4세대에 이르고 있지만 최근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가족 승계는 더 이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카리스마 넘치는 ‘오너경영인’ 체제에 거부감이 커지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담당 업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늘고 있다. 사업에서도 인사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전문경영인이며 그 자리는 뭇 직장인들의 꿈이다. ‘비즈한국’은 2018년 연중 기획으로 각 업종별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의 위상과 역할을 조명하며 한국 기업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지난해 정유업계는 국제유가 상승과 정제마진 호조에 힘입어 4억 7232만 7000배럴의 석유제품을 수출했다. 전년 대비 4.3% 증가한 수치며 2013년 이후 4년 연속 증가 추세다.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GS칼텍스, 정유 4사는 7조 9589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정유업계 맏형 격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말 그룹 내 대표적 재무전문가로 꼽히는 조경목 SK(주) 재무부문장(54)을 정유부문 자회사 SK에너지 신임 사장으로 선임하며 석유사업 수익성 개선을 위한 물꼬를 텄다. 반면 업계 막내 격인 현대오일뱅크는 2014년 현대중공업그룹 내 대표적 재무전문가로 통하는 문종박 사장(61)이 취임한 뒤 최근까지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 중이다.
# 조경목 SK에너지 사장…32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재무전문가
SK그룹은 지난해 12월 정기 임원 인사에서 SK에너지 사장에 조경목 SK(주) 재무부문 부사장(55)을 승진 임명했다. 그간 SK에너지와 SK이노베이션을 이끌었던 김준 사장은 총괄사장으로서 SK이노베이션 경영에 집중할 전망이다.
조경목 사장은 SK그룹 내 손꼽히는 재무전문가다. 약력을 보면 김준, 정철길, 박봉균 등 전 SK에너지 사장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1964년생인 조 사장은 1982년 경신고, 1986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SK이노베이션의 전신인 유공 재정팀에 입사했다. 서울대 졸업 당시 조 사장은 전체 수석졸업자에게 수여된 ‘대통령상’도 받았다.
입사 후 조 사장은 SK그룹 지주사인 SK(주)와 SK텔레콤을 오가며 재무부문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았다. 유공 재정팀에서 정유사업의 살림을 챙긴 조 사장은 2000년 SK(주) 자금팀 부장을 맡았고 2002년 SK(주) 코퍼레이트 디벨럽먼트 그룹(Corporate Development Group) 팀장에 올랐다. 2004년 SK(주) 자금팀 팀장, 2005년 SK(주) 금융팀 팀장을 지냈다.
이후 조 사장의 행보는 색다르다.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 2006년 2월 SK텔레콤 자금팀 상무, SK텔레콤 재무관리실장을 맡았다. 중후장대 산업인 정유업과 경박단소 산업인 통신업은 기업문화가 서로 다르다. 전직 SK그룹 관계자는 “계열사 간 인사교류는 배타적 기업문화를 탈피하고 그룹 내 함께하는 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3년간 SK텔레콤에서 지낸 조 사장은 2009년 다시 지주사로 돌아왔다. 그 해 SK(주) 재무실장 상무를 지낸 데 이어 2012년 재무팀 전무, 2013년 재무부문장(CFO)까지 지냈다. 2015년 SK가 SK C&C와 합병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를 인정받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다 32년 만에 친정 SK이노베이션으로 복귀하며 ‘사장’이란 타이틀을 얻게 됐다.
경력에서 보듯, 조 사장은 석유 전문가는 아니다. SK그룹 내 여러 계열사 재무업무를 섭렵하며 그룹 최고 ‘재무통’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만큼 조 사장이 SK그룹 내에서 현금창출원 역할을 해내는 SK에너지를 맡게 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을 주축으로 그 밑에 100% 자회사인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를 통해 석유화학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SK에너지가 맡는 석유사업은 화학이나 윤활유사업보다 수익성이 낮다.
SK이노베이션이 2017년 3분기까지 낸 공시에서 전체 매출 33조 7070억 원을 기록한 가운데 SK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3조 8797억 원으로 71%다. 하지만 SK에너지의 영업이익은 9928억 원으로 SK이노베이션이 기록한 2조 3891억 원의 42%에 불과하다. 매출 비중은 높지만 영업이익은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사업 구조인 셈이다.
조 사장의 등장으로 석유제품의 생산·유통·판매를 일원화해 석유사업 수익성 개선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SK에너지는 이미 지난해 8월 유통구조 단순화를 위해 SK네트웍스로부터 국내 석유유통사업을 인수했다. SK에너지가 생산한 석유제품을 SK네트웍스를 거치지 않고 주유소에 직접 공급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조 사장이 앞으로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의 뒤를 따를 것이라는 시각 도 있다. 김 사장도 SK에너지에서 기반을 다졌으며 조 사장 취임 전까지 SK이노베이션과 SK에너지 사장을 겸임했다.
# 문종박 현대오일뱅크 사장…손대는 합작사업마다 ‘대박’
정유업계 후발주자인 현대오일뱅크를 이끄는 수장도 대표적 재무전문가로 꼽히는 문종박 사장이다. 2014년 9월부터 현대오일뱅크 사장을 맡고 있다. 문 사장 취임 후 현대오일뱅크는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2014년 2262억 원이던 영업이익이 2015년 6294억 원으로 뛰었고, 2016년엔 9657억 원을 기록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지난해에는 1조 2605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1957년생인 문 사장은 1976년 경북고, 1983년 연세대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현대중공업에 입사, 재정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1993년엔 현대중공업 싱가포르 법인장을 맡았고 1997년엔 현대중공업 재정부 부장을 역임했다. 2003년엔 현대중공업 재정담당 이사대우를 맡은 뒤 2006년 현대중공업 상무로 승진해 현대선물 경영에 참여했다.
현대오일뱅크에서 내실을 다진 건 2010년부터다. 문 사장은 그해 경영지원본부장(전무)을 맡은 뒤 2011년 현대오일뱅크 글로벌사업본부장과 현대오일뱅크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했다. 2013년엔 현대오일뱅크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2014년 9월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자리에 올랐다.
문 사장은 현대중공업 내 대표적인 재무전문가로 꼽힌다. 업계에선 현대오일뱅크로 자리를 옮긴 뒤 경영지원본부장과 기획조정실장 등을 맡으며 현대오일뱅크의 사업다각화를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다. 경쟁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현대오일뱅크가 신흥강자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문 사장 역할이 컸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현대오일뱅크는 특히 문 사장 지휘 아래 현대케미칼, 현대OCI 등을 잇달아 설립했다. 현대케미칼은 현대오일뱅크가 60%, 롯데케미칼이 40% 비율로 1조 2000억 원을 투자해 세운 석유화학공장으로 2016년 11월부터 가동하고 있다. 국내에서 정유회사와 석유화학회사가 협력해 공장을 세운 사례는 현대케미칼이 처음이다.
현대케미칼은 지난해 267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는데 이는 현대오일뱅크의 비정유부문 영업이익(8485억 원)의 64.8%를 차지하는 수치로 실적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현대오일뱅크는 OCI와 손잡고 카본블랙공장인 현대OCI를 추진해 왔다. 출자비율은 현대오일뱅크가 51%, OCI가 49%로 모두 2600억 원의 자금이 들었다. 카본블랙은 석탄에서 나오는 콜타르와 원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화학소재로 타이어, 고무, 프린터잉크 등 원료로 사용된다. 현대OCI 공장은 올해 3월 가동을 앞두고 있다.
이 같은 문 사장의 합작사업은 올해도 지속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1월 회사 임직원들에게 보낸 신년 메시지에서 이 같은 내용을 강조했다. 문 사장은 “신규사업 발굴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BTX부터 윤활기유, 오일터미널, MX, 카본블랙에 이르기까지 신규사업 추진을 통한 포트폴리오 다변화는 비정유부문의 영업이익 비중 확대로 나타났다”며 “이는 국제유가 등락에 따른 정유사업의 변동성을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시각각 변화의 파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의와 혁신의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며 “구성원들이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안 되는 이유보다 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며 울타리 밖으로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도움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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