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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다반사] 우리는 언제쯤 '한 알에 1만 원'짜리 딸기를 가져볼 수 있을까

논산딸기시험장 견학…품종 따라 맛·향 천차만별, 구분 없는 유통구조 아쉬워

2018.02.12(Mon) 13:59:16

[비즈한국] 딸기가 좋다. 딸기 철이 되는 겨울이면 미친 사람처럼 딸기를 사들여 먹는다. 딸기를 사는 기준은 유난스럽게도 품종이다. 국내 딸기의 84%가량을 점하며 11월부터 나오는 ‘설향’ 품종도 훌륭하다. 그런데 좀 더 늦게 나오는 ‘죽향’과 ‘육보’도, 내수용으로 적은 물량만 풀리는 ‘매향’도 기다렸다가 먹는다.

 

잘 보면 다 다르다. 생김새도, 맛도 다르다. 늦봄에 수확하던 노지 재배 시절, 이전의 딸기는 덜 달아서 설탕을 찍어 먹어야 아이들 입맛에 먹을 만 했다. 이제는 시절이 달라졌다. 이른 겨울부터 수확하고, 99%가 유리 온실 등 시설 재배다.

 

이 시대의 딸기는 13브릭스(Brix) 이상의 대단한 당도를 자랑하지만 단 딸기 홍수 속에서도 품종마다 산도가 다르고, 경도가 다르고, 무엇보다도 향이 다 다르다. 지난해 맘먹고 비교 테이스팅 해본 딸기는 실제로 다 달랐다. 이를테면 설향은 복숭아 향을 갖고 있고, 육보는 크리미한 풍미를 갖고 있다. ‘금실’은 싱그러운 장미, 청포도 향을 연상시키는 매력적인 향을 갖췄다.

 

올해는 또 딸기가 어떻게 다양화 되고 있나, 궁금했다. 취재로 인연을 맺은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시험장) 김태일 장장께 부탁을 드려 요리사 몇에 카페 사장님, 제과점 사장님 등 딸기에 관심 많은 업계인들과 딸기 견학을 다녀왔다. 김 장장은 설향을 육종한 ‘설향의 아버지’로 딸기에 있어서 대표적인 연구자다.

 

논산딸기시험장에서 육종 중인 딸기들에겐 아직 이름이 없다. 게다가 대부분은 도태된다. ‘J150311’하는 식의 이름은 ‘15년도에 J가 교배한 3-11번이라는 의미. 사진=이해림 제공

 

한파로 올해 딸기는 1월 내내 생육이 ‘꼼짝마’였다. 전국의 딸기가 다 그러고 있어서 올해 딸기 가격은 더디게 하락하고 있다. 시험장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라 시험재배 중인 농가까지 동원해 10가지 딸기를 구해 주셨다. 

 

설향, 육보, 수출용 품종인 ‘매향’에, 최근 보급되고 있거나 보급될 예정인 신품종 딸기 ‘킹스베리’, ‘숙향’, ‘써니베리’, ‘두리향’에 아직 이름도 짓지 않은 선발 품종 ‘NSJ131504’, ‘NS130903’, ‘NS130511’ 3종까지 총 10종류의 딸기를 비교하며 맛 봤다.

 

하나하나의 맛이야 설명해 뭣하리. 죄송하지만 어차피 못 구한다. 단, ‘NS130903’은 단단하면서 수분이 적당히 있고 산도와 당도의 균형이 절묘하고 향도 색다른 면이 있어 시장에 나오길 기대하는 신품종이다. 이 딸기가 내년, 내후년에라도 시장에 나오면 꼭 글로 남길 예정이다.

 

시험장의 ‘딸기밭’에서 실컷 따 먹었다. 일반적인 ‘딸기 체험’과 다른 점은 한 고랑마다 다 다른 딸기가 열려 있다는 점이다. 선발 과정 중의 방대한 교배 조합의 딸기 중 대부분은 도태될 것이고, 그 중 극소수만이 선발되어 위의 ‘NS’로 시작되는 딸기 같이 출세한다. 

 

또 ‘유전 자원’ 딸기 수도 방대하다. 육종할 때 엄마, 아빠로 쓰기 위해 키우는 전 세계의 갖가지 딸기가 밭에 자라고 있다. 제각각이 다 다른 딸기라니! 천당 체험이 따로 없었다. 향도 다르고 맛도 다른데 손을 자르기 전에 멈출 수 있겠는가. 당 쇼크 비슷한 것이 올 때까지 딸기 밭에서 이 딸기 저 딸기 먹었다.

 

장장실에서 비교 테이스팅한 10종의 딸기 중 가장 많은 기대를 모은 새 품종. 사진=이해림 제공

 

항상 딸기를 다루고 있으며, 요리, 음료, 디저트에 더욱 적합한 딸기에 목마른 업계 전문가들은 각각의 차이와 특성으로부터 이상적인 딸기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놨다. 유통 단계에서 모든 농작물의 품종이 뒤섞여 버리는 현재 시장상황에서 그들에게도 이런 비교 테이스팅은 처음이었다. ‘설향 아버님’ 역시 최전방 요식업계 종사자들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시장의 요구에 발맞춰 새로운 딸기를 육종하는 시험장의 박사들이나, 최종 소비자 단계에서 좀 더 다양한 딸기를 요구하는 요식업계의 전문가들이나, 욕구는 같았다. 더 다양한 품종의 딸기는 왜 우리에게 닿지 못할까. 닿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생산 현장의 최초 단계와 최종 단계 사이에 가로막힌 벽을 넘나들며 더 많은 대화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돈은 소비자인 ‘우리’가 쓰는 것인데, 그 주권을 되찾아 와야 하지 않을까.

 

나는 낙관적으로 본다. 품종은 누군가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어렵지 않게 금세 다양해지기 마련이다. 실제 백화점이나 프리미엄 슈퍼마켓에선 설향이 아닌 다른 품종 딸기의 이름을 이미 프리미엄 가치로 활용하고 있다.

 

별 이유 없이 새로운 품종이라는 이유만으로 1.5배가량의 가격이 붙기도 하지만, 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상품을 망설임 없이 사는 축이다. 희소성은 언제나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된 먹보 소비자들에게 열렬히 환영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종 구분을 요구하는 시장은 전체 경제 규모에서 작다. 너무나 작다. 게다가 1%에 해당하는 프리미엄 소비군에서 조차 고가격 과일에 대한 심리장벽이 쳐져 있다. 딸기 선진국인 옆 나라 일본에서 파는 한 알(한 팩이 아니다)에 1만 원 넘는 딸기를 이토록 신기하게 볼 일인가. 아직 우리의 딸기 시장은 다양성에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볼 수 있는 것이 ‘몰래 먹는 딸기’ 같은 딸기다. 몰래 먹는 딸기라니, 대관절 무슨 딸기라는 겁니까. ‘그만큼 맛난가 보다’, ‘그럼 꽤 달겠지’라는 것 외엔 어떤 정보도 담겨 있지 않은 딸기의 이름이 갑갑하다. 대개의 딸기 ‘브랜드 명’ 작명 방식이 품종과 동떨어져있다.

 

일단은 더 많은 유통 관계자들이 그저 품종 정보만 정확히 전달해 줘도 연구자들이나 까다로운 소비자들은 더 바랄 게 없겠다. 딸기가 다 다른 딸기이고 취향 따라 골라 먹는다는 말은 아직까지 ‘유난 떠는’ 소리에 불과한 모양이지만.​ 

이해림 푸드 라이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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