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얼마 전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고 주장한 한 경제학자의 방송을 들었다. 사회자가 던진 질문은 ‘집값이 폭락하면 부동산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라는 주제였다. 사회자는 그 경제학자의 주장대로 ‘과도하게 높다고 주장하는 집값이 정말 현재 한국 경제 문제들의 원인이냐’는 질문을 했고 답변도 유사한 결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맹점이 있다. 과도하게 높은 집값의 기준은 얼마부터인가 하는 것이다. 3.3㎡(약 1평)당 1000만 원 이상이면 높다고 평가해야 하는 것인가? 3.3㎡당 4000만 원이 훌쩍 넘는 현재의 강남권 아파트 분양가는 과도하게 높은가?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수요·공급의 원리로 가격이 결정된다. 독점시장이 아니라면, 소비자들은 필요 이상의 공급이나 과하게 높은 금액의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부동산시장이 독점시장이 아니라면, 지금의 부동산 가격은 시장의 수요·공급 작용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면, 현재의 부동산 가격은 특정 세력의 음모로 봐야 한다는 것인가?
검증할 수 없는 음모론을 논외로 하더라도, 부동산 폭락 지지자들에게, 우리 부동산 역사를 통틀어 집값이 낮았던 적이 있었나를 반문해 보고 싶다. 우리 부모 세대나 그 이전 세대에는 집값이 저렴했는데, 우리 세대에 갑자기 집값이 과도하게 폭등한 것인지 말이다. 누구라도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판단해 봐도 공통적인 결론이 나올 것이다.
이 경제학자의 주장은 박탈감과 상실감이 큰 중산층 이하 계층들에게 부동산 가격이 경제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과 비판 대상을 임의로 특정함으로써 심적 위안만을 줄 뿐이다. 어떤 대안도 없이 말이다.
부동산 가격이 높다고 평가되는 지역이 물론 있다. 서울에서는 강남권이 그럴 것이고, 경기도에서는 과천, 분당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런 지역들을 우리는 특정 가격 상승기에 ‘버블세븐’이라 불리기도 했다. 버블 지역은 중산층 이하 계층들이 들어가기에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매우 많은 지역인 것도 사실이다. 또한 버블 지역으로 들어갈 경제력이 되는 층도 충분히 존재한다. 그러니 부동산 불경기에도 신규 분양이 있으면 높은 청약경쟁률이 나오는 것 아닌가.
개인적 바람은 버블 시장은 그냥 두었으면 한다. 3.3㎡당 5000만 원이든, 1억 원이든 그 가격을 수용하는 층이 있다면 지속적으로 공급이 될 것이고, 수요가 없으면 가격을 낮춰서 다른 수요층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세보다 비싸게 매매 되더라도 취득세를 많이 걷을 수 있고,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로 확보한 추가 세수를 부족한 정부의 복지 기금으로도 활용할 수 있으니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특정 지역이 비싸다는 것은 공급 대비 수요가 많다는 반증이다. 그 경제학자의 표현대로 과도하게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서라도 그 지역으로 진출하고 싶은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버블 지역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그 지역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경제적 여건이 충분치 않은 수요층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버블 지역이 비싸지 않으면 누구나 다 들어가려 할 터인데, 물리적으로 그 수요를 수용할 수 없다. 엄청나게 많은 수요로 인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었고, 그 가격을 수용한 층들이 현재 그 지역에 자리 잡은 것이다. 경제 능력이 되지 않으면 핵심 지역은 포기하고, 주변지역으로 관심을 넓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남 개발 이후 1기 신도시, 2기 신도시가 생긴 것이다. 대안들 중에서 자신의 경제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지역을 골라 진출하면 되는 것이다. 이게 자연스런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연속되는 금융위기로 부동산 불경기가 장기화되면서 오히려 진짜 버블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진짜 버블은 향후에도 불황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버블이 걷히면서 버블이 아닌 지역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입지적으로 우월한 서울 강남권이 다시 부각된 것이다.
본격적인 서울 부동산 재집중화가 시작되었다. 2015년 이후 서울의 부동산 시세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과거처럼 서울 모든 지역이 동시다발적으로 상승하지는 않지만 서울 내 상위 지역 시세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면서 검증된 강남권 및 상위 10개 구 지역이 주목받는 것이다.
현재 강남, 서초, 송파, 용산, 마포, 성동의 분양시장이 가장 활발하고, 과천은 대부분 단지에서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으며, 분당은 리모델링 기대감으로 이슈가 집중된다.
새 아파트가 계속 공급되는데 왜 공급이 부족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부동산은 입지가 가장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입지가 대부분 한정되어 있다. 입지 선택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적용될 것이고, 선택 받지 못한 부동산들도 누적될 것이다.
수요가 몰리는 입지가 한정돼 있다면, 그곳에 추가적인 물량을 공급해야 수요 문제가 해결된다. 그 방법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 원인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재개발과 재건축 밖에 방법이 없다.
불행하게도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공급물량 확대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모두 서울대에 갈 수 없듯이, 강남에 들어가고 싶다고 모두 강남구민이 될 수는 없다. 총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좋은 입지는 등락을 거친다 하더라도 가격은 우상향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부동산 가격이 문제이니 무조건 부동산 가격이 내려야 한다’는 주장은 문제다. 이는 경제적 차별도 아니고, 공평한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적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중산층 이하 계층들은 이 시기 어떤 대안을 준비해야 할까? 우리 같은 중산층 이하 계층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재테크 수단은, 강남권 지역만큼 비싼 입지는 아닐지라도, 경제생활이 크게 불편하지 않는 곳에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이다. 대출은 부담스럽지 않는 범위여야 한다.
생활권 내 자가 소유의 집 마련은 그 자체도 재테크가 될 뿐만 아니라, 중산층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인플레이션 헤지(hedge) 수단이다. 물가는 어떻게든 오를 테니까 말이다. 주택 가격은 장기적으로 볼 때 물가상승분만큼만 올랐다. 이것이 과도하다면 물가는 낮추는 방안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와 부동산 팟캐스트 1위 ‘부동산 클라우드’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부자의 지도, 다시 쓰는 택리지’(2016) ‘흔들리지 마라 집 살 기회 온다’(2015) ‘수도권 알짜 부동산 답사기’(2014) ‘대한민국 부동산 투자’(2017) ‘서울 부동산의 미래’(2017)가 있다.
※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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