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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병사 영웅담은 조작" 한 육군 대령의 내부고발 그 후…

조작 지시자 놓고 법적공방 반전의 반전…권익위 "절차대로 처리했을 뿐"

2018.02.09(Fri) 16:21:59

[비즈한국] 지난해 “군 최고 간부가 2011년 사단장 재임 시절, 익사한 병사를 영웅담으로 조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공익제보 했던 당시 연대장이 최근 오히려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조작 지시’는 사실로 드러났지만 사건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제보 처리 과정에서 제보자 신분이 노출되거나, 조작 책임소재를 두고 진실공방이 벌어지는 등 사건의 주변부에서 다른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군인권센터가 기자회견을 열고 ‘17사단 익사 병사 영웅담 조작 사건’을 폭로하자, K 중장은 L 대령을 상대로 무고 및 명예훼손으로 군 검찰에 고소했다. 사진=연합뉴스


# 익사로 숨진 병사를 연대장이 의인으로 조작

발단은 지난 2011년 8월 경기 김포 일대에서 한강 하구 경계를 담당하는 육군 17사단 101연대 소속 병사가 익사하면서 비롯됐다. 당시 숨진 병사가 소속된 중대는 조를 나눠 한강 하구 수풀 제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건 직후 부대는 “전역을 2주 앞둔 병장이 실족해 물에 빠진 후임병을 구조하고 급류에 휘말려 순직했다”고 밝혔다. 숨진 병사는 1계급 특진해 하사로 추서됐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그런데 수개월 뒤 사건 결론이 뒤집혔다. 당시 사고를 목격한 부대원들과 당사자 진술이 엇갈리며 의혹이 불거지고, 17사단 전체에서도 ‘영웅담’이 조작이라는 소문이 돌면서부터다. 군 당국은 새롭게 합동조사에 착수했다.

합동조사단이 내린 결론은 앞서의 ‘영웅담’과는 정반대였다. 조사단은 숨진 병사가 휴식 시간 한강에 들어갔다가 물골에 빠져 후임병이 구조를 시도했으나 숨진 것으로 확인했다. 영웅담 조작을 주도한 당사자는 당시 연대장이었던 L 대령으로 지목됐다. 조사 결과에 따라 L 대령이 2011년 11월 보직해임과 감봉 2개월 등 중징계를 받으면서 사건은 마무리 되는 듯했다.

현재 군이 운용 중인 ATCIS(육군전술지휘정보체계) 문건. 익사 사건에 대한 중간 보고에는 없었던 “물에 빠진 병사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사고자가 물골에 빠져 실종”​, “​사고자는 분대장으로 솔선수범해 위험한 지역에서 작업했다”​는 내용이 마지막 보고에 갑자기 추가됐다. 사진=군인권센터


# 조사 없이 국방부에 사건 넘긴 권익위…제보자는 피의자로 전환

영웅담 조작 사건은 6년 뒤인 지난해 7월 다른 내용으로 논란이 불거진다. 당시 연대장 L 대령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조작은 사단장이​ 직접 지시했다”고 공익제보하면서부터다. 

L 대령은 권익위 제보에서 “당시 사단장이었던 K 중장이 사건 발생 1시간 후 연대장에게 전화해 ‘살신성인, 의로운 죽음’을 강조했고, 사단장의 ‘특명’을 받은 정훈공보실장이 구체적인 영웅미담 시나리오를 설명했다”며 “사단장이 ‘경징계로 처리될 테니 일단 조작 지시를 내렸다고 말하라’고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제보 당시 K 중장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으로, 대장 진급과 총장 하마평에도 오르내리던 인물이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별도로 L 대령을 면담한 사실도 최근 ‘비즈한국’ 취재 과정에서 확인됐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서 불거졌다. 제보를 받은 권익위가 조사도 벌이지 않고 당사자 동의 없이 국방부에 사건을 넘기면서부터다. L 대령 측은 “‘6년 전 국방부에서 잘못된 조사를 하고 징계까지 내려 믿을 수 없어 권익위에 제보했고, 공익제보자 신분 노출을 원하지 않는다’고 알리면서 국방부 이첩을 수차례 거절했음에도 조사관이 임의로 국방부에 사건을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보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권익위가, 오히려 조사 대상인 국방부에 사건을 넘기면서 사건처리는 물론 제보자 신분까지 노출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권익위 관계자는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관련 규정에 따라 처리했다”고 짧게 답했다.

사건이 국방부로 넘어가면서 공익제보자는 순식간에 피의자로 전환됐다. 국방부 군 검찰단은 2017년 8월 K 중장의 ‘조작 지시’ 제보에 대해 혐의없음 결론을 내리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L 대령의 사무실과 주거지, 가족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2017년 9월 군인권센터가 기자회견을 열고 재차 폭로하자, K 중장은 L 대령을 무고 및 명예훼손으로 군 검찰에 고소했다. K 중장은 “L 대령이 2011년 징계 당시 구제신청을 할 수 있는 절차가 있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는데, 대장 진급 시기가 다가오자 악의를 품고 허위로 제보했다”고 주장했다. 

군 검찰단은 L 대령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L 대령은 제보 전 사실관계 확인 없이 추측성으로 민원을 제기했으며, K 중장이 허위진술을 강요했다고 제보했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가 L 대령의 제보 내용과 보고체계 문건, 관련자 증언 등을 토대로 정리한 사건 일지. 사진=군인권센터


# 반전의 반전 결과에 입장 난처해진 권익위


K 중장은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자 결국 지난해 말 전역했다. 그럼에도 L 대령의 무고 및 명예훼손 사건은 해를 넘겨 최근까지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반전이 거듭되고 있다. 그동안 진행된 재판내용을 종합하면, K 중장은 법정에서 6년 전부터 이어오던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뒤집었다. 변호사가 “숨진 병사가 후임병을 구하다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물놀이 과정에서 익사했다는 사실을 2011년 사건 발생 당시부터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알고 있었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그동안 K 중장은 “연대장이 사건을 조작한 뒤 보고해,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다. 앞서 물놀이 과정에서 익사했다는 사실은 2011년 영웅담 조작 논란 이후 합동조사단이 결과를 발표한 뒤에야 밝혀졌다.

 

여기에 △ 중대장-대대장-사단장이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며 L 대령만 3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근거로 사건 보고 과정에서 제외됐으며, 실제 당시 연대장만 홀로 사고 책임을 지고 징계를 받았다는 주장 △ 사고 당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중대장과 대대장은 연대장(L 대령)에게 보고 없이 주말에 작업을 지시한 후 자신들은 축구를 하고 있었다는 새로운 정황 등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양측의 진실공방은 앞으로 더 치열해지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내부고발 사건을 권익위가 제보자 보호 조치 없이 국방부로 넘기면서 이해 당사자들이 순식간에 늘어난 사건”이라며 “재판 결과에 따라 L 대령의 제보가 거짓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나면 ‘영웅 조작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보다 더 파장이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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