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일군 기업들은 창업 1~2세대를 지나 3~4세대에 이르고 있지만 최근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가족 승계는 더 이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카리스마 넘치는 ‘오너경영인’ 체제에 거부감이 커지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담당 업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늘고 있다. 사업에서도 인사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전문경영인이며 그 자리는 뭇 직장인들의 꿈이다. ‘비즈한국’은 2018년 연중 기획으로 각 업종별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의 위상과 역할을 조명하며 한국 기업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지난해 생명보험업계는 저금리 장기화, 2021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확정, 자살보험금 논란 등에 따라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 삼성·한화·교보, 이른바 생명보험사 ‘빅3’ 최고경영자들은 신년사 등을 통해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을 직시하고 선제 대응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뤄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차남규 한화생명 부회장·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생보 빅3 CEO들의 위기의식은 지난해 실적 악화와 무관하지 않다.
삼성생명은 삼성카드와 삼성증권 주식 매입 등 1회성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2017년 당기순이익 규모가 1조 2925억 원으로, 2016년 2조 1500억 원에 비해 8574억 원(39.9%)이나 줄었다. 2017년 실적이 공시되지 않은 한화생명은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이 2016년 9124억 원에서 2017년 7562억 원으로 17% 감소했다. 교보생명도 같은 기간 6076억 원에서 5986억 원으로 1.5% 줄었다.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은 채널별로 차별화된 전략 수립을 통해 ‘질적 성장’을 이룩한다는 방침이다. 차남규 한화생명 부회장은 디지털 플랫폼, 헬스케어서비스, 인슈어테크 등 급변하는 환경변화에 대한 선제 대응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 국내 최대 생보사 CEO 김창수 사장 보험 업력 짧지만 ‘현장통’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은 보험맨으로서 경력은 차남규 한화생명 부회장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에 비해 짧다. 국내 최대 생보사인 삼성생명의 CEO의 직함이 두 경쟁사와 달리 사장이라는 점도 이러한 이유다.
김창수 사장은 현장경영을 통해 업계 1위로서 삼성생명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진두지휘해왔다.
김 사장은 1982년 삼성물산에 평사원으로 입사, 30년 동안 근무하면서 해외 대형 프로젝트와 플랜트 수출에 기여하며 해외 영업통으로 활약했다. 김 사장은 2010년 삼성물산 상사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2012년 그룹 인사에서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돼 보험업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2014년 1월부터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외 현장을 동분서주했던 삼성물산 경력을 바탕으로 김창수 사장은 현장경영을 중시하고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가 그의 지론이다. 전용 블로그인 ‘EO 열정 Talk’를 사내에 개설해 경영 활동, 현장 이야기 등을 전하면서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방식을 통해 현장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창수 사장은 삼성생명에 취임한 직후부터 보장성보험 중심의 매출을 강화해 왔다. 보장성보험이란 보험사고가 생겼을 때 피보험자에게 약속된 보험금을 제공하는 보험상품이다. 보험금이 피보험자가 납부한 보험료를 넘지 않아 수익성이 높은 상품이다. 대표적으로 암보험이 있다.
보장성보험은 다른 보험상품에 비해 보험설계사들의 의존도가 높다. 김 사장은 보장성보험 확대를 위해 전속설계사 조직을 확대했다.
삼성그룹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추진하다가 지난해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태 연루 혐의로 구속되면서 잠정 중단된 바 있다. 5일 이재용 부회장이 항소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면서 금융지주회사 전환이 탄력을 받게될지 주목된다.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모든 금융자회사의 지분을 30%(비상장사는 50%) 이상을 보유해야 하는 데 김창수 사장 체제하에서 삼성생명은 이 요건을 충족한 상태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생명이 보유중인 삼성전자 지분 7.21%를 처리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석방은 ‘양날의 검’으로 김창수 회장의 거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총수 부재 가운데 2017년 3월 연임에 성공했고 임기는 2020년 3월까지다. 삼성생명은 금융당국과 자살보험금 미지급을 놓고 갈등을 벌이다 김창수 사장이 연임 불가능한 ‘문책성 경고’ 제재를 받을 위기에 처하자 전액 지급으로 선회했다. 이를 통해 김창수 사장은 경징계를 받고 연임에 성공했다.
올 1월 삼성물산을 끝으로 비금융 계열사들의 60세 이상 CEO들이 모두 물러났다. 이재용 부회장의 석방으로 곧 금융계열사 사장단 인사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창수 사장은 1955년생으로 올해 63세다.
# 차남규 부회장 ‘핀테크’에 방점, 승마협회장 사임은 ‘신의 한 수’
차남규 한화생명 부회장도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과 마찬가지로 사원으로 출발해 CEO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차 부회장은 한화그룹 공채 사원으로 출발해 2011년 이후 7년간 한화생명을 이끌고 있는 보험업계의 대표적 ‘장수 CEO’다.
차남규 부회장은 한화그룹 계열사들을 거쳐 2002년 대한생명의 한화그룹 편입 당시 지원총괄 임원에 선임되면서부터 보험업계에 진출했다. 이후 잠시 한화그룹 계열사 대표를 역임하고 2009년 대한생명 보험영업총괄 부사장으로 선임되며 보험업계로 리턴했다.
차 부회장은 2011년 이후 신은철 전 부회장, 김연배 전 부회장과 각각 한화생명 각자대표 또는 단독대표로 회사를 이끌다가 2015년 8월부터 단독대표로 한화생명을 경영하고 있다. 그 사이 대한생명은 2012년 10월 현재의 한화생명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그는 2017년 11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차 부회장은 금융과 기술의 결합을 뜻하는 ‘핀테크’를 중시하고 있다. 2016년 한화생명은 본사가 있는 여의도 63빌딩에 ‘핀테크센터’를 개소했고 2017년 출범한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 설립에 주주로 참여했다.
그는 동남아시아 등 해외 시장 개척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한화생명은 2009년 국내 생보사 중 처음으로 베트남에 진출했다. 또한 인구 2억 6000만 명의 동남아 인구 대국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 강화에 나서고 있다.
한화생명 역시 금융당국과 자살보험금 미지급 건을 놓고 갈등을 벌이다 지난해 3월 차 부회장이 중징계를 받을 위기에 놓이자 전액 지급으로 선회한 바 있다. 다만 차 부회장은 임기가 2018년 3월까지여서 ‘셀프 연임’ 논란은 일지 않았다.
차 부회장의 임기 만료가 임박한 상황이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신임이 두터워 연임 가능성에 조심스럽게 무게가 실리고 있다. 차남규 부회장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에서 물러나 결과적으로 국정농단 사태 소나기를 피할 수 있었다.
그는 2014년 승마협회 회장에 선출됐다가 2015년 2월 임기를 2년 넘게 남기고 사임했다.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 씨가 딸 정유라 씨의 승마 지원을 위해 재계 1위인 삼성에 회장직을 맡겨야 한다는 입김을 넣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차남규 부회장이 회장직을 사임하면서 그와 한화그룹은 국정농단 사태의 유탄을 피할 수 있었다. 차 부회장 후임으로 당시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 담당 사장이 부임했다. 이후 불거진 삼성의 정유라 씨 지원 문제로 이재용 부회장과 박상진 전 사장이 기소돼 재판을 받아야 했다.
# 신창재 회장, 의사 출신 독특한 이력 ‘신중 경영’ 일장일단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교보생명그룹의 총수이자 교보생명의 CEO다. 신 회장은 2018년 2월 현재 교보생명 주식 33.78%를 가진 최대 주주다.
교보생명의 신창재 회장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현재 교보생명에는 부회장이나 사장 직함을 가진 임원이 없다. 교보생명 사내이사로는 신창재 회장을 제외하면 상근직으로 허정도 전무가 유일하다. 그 외 교보생명의 등기임원은 4명의 사외이사들이다. 박봉권 부사장과 황주현 부사장이은 미등기임원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신창재 회장은 의사 출신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친 산부인과 전문의로, 모교인 서울대 의대에서 1995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1996년 아버지인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의 뜻에 따라 신 회장은 교보생명 부회장에 선임된 후 이사회 의장 등을 거쳐 2000년부터 대표이사 회장직에 올랐다.
보험과 무관한 의사 출신인 신 회장이 교보생명을 이끈 초기 내부 반발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교보생명 임원 20여 명이 2006년 집단 사의를 표하는 ‘사태’도 있었다.
학자 출신답게 신창재 회장은 매우 신중하고 내실 있는 경영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처럼 그룹이란 든든한 배경 없는 교보생명은 CEO의 신중한 경영 가운데 IMF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란 파고를 넘어 성장을 이어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보생명의 내실경영은 2015년 국제신영평가사 무디스로부터 국내 보험사 중 최초로 신용등급 ‘A1’ 평가를 이뤄냈다.
그런 신 회장이 너무 신중한 경영으로 일관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교보생명이 인수·합병(M&A)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이다. 교보생명은 2012년 KB금융 지분 인수, 2013년 ING생명 인수, 2014년 우리은행 인수, 2015년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두고 초기에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보였다가 모두 중도 포기했다.
현재 교보생명은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에 뒤진 시장점유율을 회복하기 위해 IT를 접목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핀테크추진태스크포스팀’을 가동했고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보험을 설립해 온라인 보험에 특화된 영업을 꾀하고 있다.
2017년 2월 금융감독원이 자살보험금 미지급 건을 놓고 신창재 회장과 교보생명에 중징계를 결정하기 직전 교보생명은 ‘전체 계약 건’을 기준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그 전까지 교보생명은 삼성생명, 한화생명과 마찬가지로 지급을 완강히 거부했다. 입장이 바뀐 것은, 신창재 회장이 중징계를 받게 돼 연임이 불가능해지면 경영 공백 장기화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보생명의 입장 선회로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전액 지급’이란 진전된 카드를 금융당국에 제시해야 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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