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닌텐도 스위치를 구입했다. 사실 ‘최근에서야’가 맞을 것 같다. 출시 직후부터 세계적으로 품귀를 겪었고, 매번 미국이나 일본에 갈 때마다 구입하러 다니던 게 하나의 절차가 돼 버렸다. 하지만 실제 제품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국내에 출시되면서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박스를 열면서 ‘닌텐도 스위치 구입에 왜 이렇게 목을 맸던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게임기 구입을 결정짓게 한 것은 게임이나 콘텐츠보다도 ‘재미있다’는 한결같은 주변의 반응이었다. ‘퇴근이 빨라졌다’, ‘주말 밤을 꼬박 새웠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이야기는 이른바 게임 마니아들이 아니라 오히려 게임기까지 사서 게임할 것 같지 않은 이들이었다.
닌텐도 스위치는 하드웨어적으로 묘한 기기다. 일단 경계부터 애매하다. TV 옆에 세워두는 거치형 게임기이기도 하고, 갖고 다니면서 즐기는 휴대용 게임기 같기도 하다. 요즘 많은 기기들이 그렇듯 1990년대에 세워진 기준으로 굳이 그 경계를 나눌 필요도 없긴 하다. 거치형 게임기에서 뽑아내는 수준의 콘텐츠를, 갖고 다니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큰 매력이다. 구입을 결정한 계기에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무심히 가방에서 스위치를 꺼낸 것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 세대마다 반복되는 의문 “요즘 기기가 맞나?”
의외로 닌텐도 스위치의 하드웨어는 매우 소박하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례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4와 X박스 원의 고성능 버전을 따로 내놓았을 정도로 게임 시장은 고성능 바람이 불고 있다.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PC 역시 고가의 게이밍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닌텐도 스위치에는 스마트폰 정도의 성능을 내는 엔비디아 테그라 프로세서가 들어간다. 물론 테그라 프로세서는 GPU를 기반으로 높은 게임 성능을 앞세우는 칩이긴 하다. 하지만 현재 불고 있는 게임 시장의 하드웨어 흐름과는 분명 다르다.
고성능은 물론이고, 흔한 미디어 플레이어도 없다. 뭔가 있을 것 같지만 없다. 앱 장터에서 무선랜으로 스트리밍할 수 있는 훌루(Hulu)를 내려 받을 수 있는 게 놀라울 정도다. 메뉴도 아주 단순하다. 과연 21세기에 나온 휴대용 기기가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 기기로 할 수 있는 일은 게임을 구입하고, 게임을 즐기는 것밖에 없다. 닌텐도의 고집이기도 한데, 게임을 즐기는 데 이 정도 성능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기능을 넣을 필요도 없다. 필요하면 다른 기기로 하라는 것이다. 늘상 느끼는 서운함이지만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돌아보면 닌텐도는 어느새 성능 경쟁에서 쏙 빠졌다. 수퍼패미콤의 뒤를 이은 닌텐도64와 게임 큐브는 당시 플레이스테이션과 X박스의 성능 경쟁에 한참 밀렸고 그 와중에 로딩 속도, 복제 방지를 위해 게임팩과 전용 디스크를 쓰면서 콘텐츠의 용량까지 부족해졌다. 이는 치명적인 실수로 지적되기도 했고, 결국 닌텐도는 아타리처럼 한때 최고였지만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회사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 뒤의 닌텐도의 행보는 오히려 거꾸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닌텐도DS는 당시 경쟁하던 소니의 휴대용 게임기 PSP에 비해 그래픽이 다소 떨어졌고, 멀티미디어 파일 재생 등을 강조하던 것과 달리 MP3 음악 재생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특징이라면 위 아래로 화면이 나뉘고, 터치스크린을 달았다는 것 정도다. 이 기기는 역대 가장 성공한 게임기로 꼽혔다.
이유는 단순했다. ‘게임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이미 닌텐도DS가 나올 때부터 게임 업계는 특정 기기에 한정하지 않고, 하나의 게임을 여러 게임기에 이식하는 멀티 플랫폼 전략으로 방향을 옮긴 바 있다. 하지만 닌텐도DS로는 하드웨어적인 문제로 이식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재미를 기반으로 기기가 많이 팔리게 되고, 이는 다시 닌텐도DS를 위한 독점, 혹은 맞춤 콘텐츠로 이어졌다.
닌텐도DS는 1억 5000만 대나 팔렸고, 세대교체를 이룬 3DS 역시 7000만대 가량 팔리며 지금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내 책상 서랍에도 각기 다른 세대의 닌텐도DS가 세 대나 있다. 그리고 가끔 생각날 때 꺼내 보면 몇 시간이고 다시 즐겁게 보낼 수 있다. 추억이어서가 아니라 그 게임들이 실제로 지금도 그래픽을 뛰어넘어 그 자체로 재미있다. 묘한 플랫폼이다.
#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
닌텐도DS가 남긴 메시지는 쉽지 않다. ‘게임기는 게임이 재미있어야 한다’는 아주 간단한 원론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는 게임큐브의 뒤를 이은 거치형 게임기 ‘위(Wii)’에서도 반복된다. 양손에 나누어 쥐는 독특한 콘트롤러는 당시에 마이크로소프트의 키넥트나 플레이스테이션의 무브로 고민되던 기술이자, 게임으로 활용이 쉽지 않은 기술로 꼽혔다.
그런데 닌텐도는 기꺼이 사람들이 뛰고 춤추게 만들었고, 다시 게임을 주제로 친구들을 집에 불러 모으는 ‘파티 게임’의 기억과 문화를 되살렸다. 이것도 당연하지만 ‘재미있다’는 반응 때문이었다. 닌텐도도 그걸 잘 알고 있다. 이즈음 닌텐도의 광고는 유명인들에게 닌텐도DS나 위 등의 게임기를 쥐어주고 실제 게임하면서 즐거워하는 표정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지금도 연기가 들어가지 않은 그들의 즐거워하는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그 재미에는 마리오와 젤다 등 확실한 프랜차이즈도 한몫을 했다. 마리오와 젤다는 늘 닌텐도의 새로운 기기의 출시와 함께 했고, 이 독점작들은 그 이름값도 톡톡히 해냈다. 심지어 실패로 꼽히는 닌텐도64조차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은 최고 명작으로 꼽히기도 했다.
다시 스위치로 돌아와 보자. 스위치는 또 새로운 닌텐도의 게임용 하드웨어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디스플레이가 분리된다고 생각했는데, 이 기기의 핵심은 컨트롤러를 분리하고, 또 필요에 따라 원하는 형태로 붙여 쓰는 것에서 시작된다. 반응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사실 거치형 게임기와 휴대폰 게임기의 묘한 경계는 이 직전의 ‘위 U(Wii U)’를 통해 큼직하게 실패를 겪은 바 있다. 심지어 ‘닌텐도는 모바일로 넘어가는 게임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 다시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비판까지 샀다.
# 고집스런 닌텐도, 결과물은 ‘게임기’
하지만 다시 돌아온 스위치는 닌텐도의 모바일 전략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어쨌든 게임을 가장 즐겁게 즐길 수 있는 하드웨어를 만든다’는 가치 평가를 받고 있다. 성공했으니 결과론적인 평가로 볼 수도 있지만 닌텐도 스위치에 대한 평가는 묘하게도 닌텐도의 전성기마다 터져 나온 ‘재미있다’로 되돌아간다. 수퍼패미콤 시절에는 성능이 최우선이었기에 세가와 하드웨어 경쟁을 했을 뿐, 그 뒤로는 반도체 기술보다도 게임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콘솔 플랫폼의 목표로 명확히 자리를 잡았다.
최근 소개된 ‘라보(Rabo)’는 닌텐도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예다. 이 하드보드지로 만든 책은 뜯어서 접은 뒤에 스위치와 컨트롤러를 꽂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자체로 기존과 다른 체감형 게임을 즐기거나 게임기를 이용한 공작물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종이가 7만~8만 원(버라이어티킷 6980엔, 로봇킷 7980엔)이나 한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그 유튜브 영상을 보면 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안에는 또 새로운 재미가 보이기 때문이다.
동작인식 카메라, 가상현실(VR) 헤드셋 등으로 게임은 늘 체감형 콘텐츠를 꿈꿔 왔다. 하지만 여전히 비싼 하드웨어는 장벽이고, 실패했을 때 돌아올 가장 큰 부담이기도 하다. 닌텐도는 늘 이런 문제를 가볍게 풀어낸다. 어떻게 보면 VR에 대한 시장의 관심을 몇 천 원짜리 종이로 풀어낸 구글의 ‘카드보드’도 떠오른다. 지극히 ‘닌텐도스러운’ 해석 방법이고, 그 결과물 역시 충분히 재미있어 보인다.
기기의 본질은 늘 새로운 기술과 얽혀 복잡스러운 가치관 혼란을 일으키곤 한다. 게임이 점점 영화를 닮아가고, 그만큼 화려한 그래픽과 방대한 내용,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막대한 제작비용과 기간이 들어가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재미’라는 말도 이제 낯설지 않다.
닌텐도는 여전히 되묻는 것 같다. ‘게임은 게임으로 재미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 말이다. 다음 게임기가 또 실패할 수도 있지만 닌텐도는 여전히 ‘게임기’를 만들고 있고, 앞으로도 ‘게임기’를 만들 것 같다.
최호섭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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