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드래곤볼을 비롯한 수많은 소년 만화에 법칙이 하나 있다. 바로 주인공은 늦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가장 늦게 등장해 가장 빠르게 악당을 물리친다. 가상 공간에만 있는 법칙이 아니다. 야구에는 4번 타자의 만루 홈런과 축구에는 에이스의 무회전 프리킥이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발휘하는 클러치 히터로서의 본능은 당대 최고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스타크래프트에도 있다. 바로 ‘올킬’이다. 올드 팬에게 올킬의 대명사는 강민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해설위원이자 인터넷 방송인이 되었지만, 과거 그는 올킬을 예고하고 몸소 보여줬다. 2004년 당시 강민이 속한 KTF는 ‘e스포츠의 레알 마드리드’라 불릴 만큼 쟁쟁한 게이머를 보유했다. 박정석, 홍진호, 변길섭, 조용호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강민은 그 중에서도 빛났다.
# ‘원조 올킬’ KTF 강민
2004년 MBC 무비스 팀리그에서 KTF는 풀리그 마지막 경기를 3:0으로 완승해야만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다. 전주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강민은 선봉으로 나와 상대를 올킬하겠다고 예고했다. 그 다음 주 SOUL과의 경기에서 강민은 한승엽과 박상익 그리고 변은종을 순서대로 격파하며 예고를 현실로 만들었다.
라이벌전에서 빛나야 진짜 에이스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경기에서 팬들은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의 활약상을 기대한다. KT와 SKT의 경기에서 팬들은 이영호와 김택용 그리고 정명훈을 기대하듯이 말이다.
# ‘역 올킬’ KT 이영호
그 라이벌전에서 올킬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그 어려운 일을 이영호가 해냈다. 2010년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에서 SKT는 KT를 3:0으로 몰고 갔다. SKT의 박재혁이 선봉으로 나와 박찬수와 배병우 그리고 박지수를 순서대로 꺾었기 때문. 패배의 길목에서 이영호가 나왔다. 14분 만에 박재혁을 꺾은 이영호는 뒤이어 나온 김택용을 10분 만에 이겼다.
다음은 라이벌 정명훈. 장기전으로 이어지기 십상인 테란 동족전에서 이영호는 정명훈의 투 팩토리 전략을 막아내고 GG를 받아냈다. 7분 46초 만의 승리였다. ‘괴수’ 도재욱이 이영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초반 찌르기로 인해 8분 만에 백기를 들었다. 0:3으로 수세에 몰린 라이벌전에서 이영호는 당대 최고의 선수 4명을 상대로 40분 만에 4:3 역올킬을 이뤄냈다.
# ‘뜻밖의 올킬’ CJ엔투스 조병세
연예인들은 흔히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고 말한다. 프로게이머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PC방 예선을 전전하던 무명의 선수가 결승에서 팀을 위해 역올킬을 이루어내는 것만큼 환상적인 시나리오가 있을까?
시나리오가 아니다. 실화다. 과거 CJ엔투스 소속 조병세의 이야기다. PC방을 전전하던 조병세는 2008-2009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결승전에서 팀의 네 번째 선수로 나왔다. 상대는 플레이오프에서 KT를 상대로 올킬을 기록하고 결승전에서 CJ의 김정우와 변형태 그리고 마재윤을 꺾은 이제동이었다.
그 누구도 조병세의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다. 러쉬 아워 3에서 이제동을 꺾은 조병세는 역상성인 프로토스 노영훈과 임원기의 전략을 간파해 쉽게 꺾었다. 마지막 선수는 테란인 구성훈이었고, 조병세의 장기는 테테전이었다. 그렇게 그는 위너스 리그 결승전에서 4:3 역스윕을 이뤄냈다.
올킬한 선수가 곧 에이스는 아니지만, 모든 에이스는 한 번쯤 올킬했다. 시대를 휘어잡은 본좌 선수들도 그랬다. 팀이 수세에 몰렸을 때 에이스에게 쏟아지는 엄청난 기대와 압박을 이겨내야만 가능하다. 황당할 정도로 압도적인 플레이와 당황스러울 정도로 허섭한 플레이는 한 끝 차이다.
팀이 백척간두에 몰려 있을 때 환상적인 플레이로 올킬을 달성하는 선수여야만 진정한 에이스다. 영화 ‘코코’에 등장하는 에르네스토 델라 크루즈는 “주어진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노래한다. 강민과 이영호 그리고 조병세는 한 줌의 기회를 거대한 성공으로 만들어냈다.
우리도 우리 삶의 에이스가 되기 위해서 한 번쯤 인생플레이를 펼쳐 우리 앞에 놓여있는 수많은 퀘스트를 올킬해야 하지 않을까? 그때를 기대해본다.
구현모 알트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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