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일군 기업들은 창업 1~2세대를 지나 3~4세대에 이르고 있지만 최근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가족 승계는 더 이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카리스마 넘치는 ‘오너경영인’ 체제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담당 업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늘고 있다. 사업에 있어서도 인사에 있어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전문경영인이며 그 자리는 뭇 직장인들의 꿈이다. ‘비즈한국’은 2018년 연중 기획으로 각 업종별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의 위상과 역할을 조명하며 한국 기업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 이원희 현대자동차 사장
현대자동차는 지난 29일 정몽구·윤갑한·이원희 각자 대표이사 체제에서 정몽구·이원희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된다고 공시했다. 이는 26일 윤갑한 사장의 사임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까지 3명 대표 체제에서는 정몽구 회장은 그룹 경영총괄, 이원희 사장은 현대자동차 경영총괄, 윤갑한 사장은 울산공장장으로서 생산·노무 관리를 담당했다.
윤 사장의 퇴임에 대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논평에서 “윤갑한 전 사장은 작년 12월 27일 41차 교섭에서 노조를 상대로 10분간 훈계하고 일방적으로 퇴장해 현대차그룹 최고경영진으로부터 연내 타결 불발에 대한 퇴진 압력을 받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표출한 바 있다”며 “현대차 노조는 2018년 1월 초 현대차그룹에 대립적 노사관계 청산을 위해 윤갑한 사장에 대한 조속한 경질을 강력히 촉구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윤 사장의 후임으로 하언태 울산공장 부공장장(부사장)을 신임 울산공장장으로 임명했다.
현대차는 부사장급에서 개발·생산·노무·영업·수출 등 각 사업부문을 책임지며, 이원희 사장이 이를 총괄하고 있다. 윤갑한 전 사장의 경우는 울산공장장이면서 대표이사를 맡았으나, 이번에 부사장급이 울산공장장을 책임지게 됐다. 정몽구 회장은 그룹을 총괄하지만 모든 계열사의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리는 대신 상징적으로 현대차 대표이사를 맡고 있어 이원희 사장이 실질적으로 현대자동차의 경영을 책임진다. 정의선 부회장은 사내이사를 맡아 현대차의 영업 및 국내외 총괄을 담당하고 있다.
1960년 2월 5일생인 이원희 사장은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웨스턴일리노이대학교 회계학 석사 출신으로 1984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이후 미국판매법인 재경담당 이사·상무·전무를 거쳐 본사 재경본부장 부사장·사장을 지내다 2016년 3월 대표이사직을 맡았다. 이전까지 현대차 대표이사는 주로 생산관리(공장장) 출신이 맡았다. 전임자인 김충호 전 대표는 영업담당, 김억조 전 대표는 공장장, 양승석 전 대표는 생산관리 담당이었다.
최근 현대자동차의 판매 부진에 따라 ‘재무통’인 이 사장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진다. 대개 위기 상황에서는 재무통이 부상해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다만 기술이 바탕이 되는 회사에서 재무전문가가 경영을 맡았을 때 혁신성이 떨어지는 부작용은 경계해야 한다. 밥 루츠 전 GM 부회장은 저서 ‘빈 카운터스(Bean Counters)’에서 재무전문가들을 ‘콩 세는 사람들(bean counters)’로 비꼬기도 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G70’을 론칭하며 제네시스 브랜드 라인업을 강화했다. 현대차는 장기 과제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도약하기 위한 브랜드 강화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재무전문가로서 이 사장이 이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인다.
현대차 측은 이런 시각에 대해 “이원희 사장이 취임한 2016년 초 현대차그룹은 800만 대가 넘는 사상 최대 판매량을 달성하던 때다. 위기이기 때문에 재무전문가가 경영을 맡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현대·기아차 대표이사는 해당 시점에서 최적임자를 뽑는 것일 뿐”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2015년 12월 31일 이 사장이 대표이사로 임명될 당시 현대차는 “이번 인사는 불확실한 경영환경 아래 선제적 리스크 관리 역량을 한층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5일 현대자동차는 2017년 실적을 발표했다. 판매대수는 450만 6527대로 전년 481만 5542대보다 6.4% 감소했다. 매출은 96조 3761억 원으로 전년 93조 6490억 원보다 2.9%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4조 5747억 원으로 전년 5조 1935억 원보다 11.9% 줄었고, 순이익은 4조 5464억 원으로 전년 5조 7197억 원보다 20.5% 감소했다.
특히 2017년 4분기는 직전 3분기 대비 매출 65.9%, 영업이익 79.6%, 순이익 60.5%가 감소해 최악의 시기를 지나는 중이다. 현대차 측은 “원화 강세 흐름이 연중 지속된 가운데, 주요 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되고 영업부문 비용이 증가했으며, 중국 등 일부 시장에서의 판매가 어려움을 겪으며 수익성이 전년 대비 하락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1일 이원희 현대자동차 대표이사(사장)는 서울 중국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세청장 초청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내년(2018년)에도 임원 임금 삭감과 간부급 임금 동결 등 긴축 기조를 이어갈 계획”이라며 “판매량과 영업이익률 등 실적이 내년엔 조금 나아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비용절감 노력은 계속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2016년 말 2017년 전체 계열사 임원들의 임금을 10% 삭감하고 사무직 과장, 연구직 책임연구위원 이상 간부급 직원의 임금을 동결했다.
당시 이 사장은 “올해(2017년) 판매량이 어느 정도 될지는 중국 시장의 회복속도에 달렸다”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최근 양국 정부의 합의 발표도 있어 회복세가 빨라질 것으로 보이지만 그동안 까먹은 것을 올해 중 회복하기는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현대차는 올해부터 북미와 인도 등 권역별 본부가 경영 전반에 대해 결정권을 갖는 자율경영시스템을 도입한다.
다만 중국은 본사 차원의 비상경영 체제를 이어간다. 이 사장은 “중국 시장이 실제 회복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다른 권역에 대해선 지역본부의 권한을 단계적으로 강화할 방침이지만, 중국 시장은 본사에 둔 중국태스크포스에서 챙길 것”이라고 밝혔다.
# 박한우 기아자동차 사장
지난 7일 이형근 기아자동차 부회장이 대표이사에서 사임하면서 기아자동차는 이형근·박한우 각자대표 체제에서 박한우 대표 체제로 바뀌었다. 1952년생인 이 부회장은 2011년 3월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 7년 동안 기아차의 경영을 총괄했다. 박한우 사장은 이 부회장과 함께 대표이사직을 수행하다 현재 1인 대표이사로 기아차 경영을 책임진다. 이 부회장의 후임에 대해 기아차 측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이 대표이사로, 정의선 부회장이 사내이사로 등재된 현대차와 달리 기아자동차에는 오너 가족이 직접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기아차 측은 “정몽구 회장은 그룹 총괄로서, 모든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다할 수가 없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 경영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을 대표하는 현대차가 규모가 크고 주목도도 높지만, 기아차 또한 현대차와 어깨를 겨루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전문경영인 1인 체제가 되면서 박한우 사장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현대차 이원희 사장처럼 박한우 사장 또한 재무전문가다. 1958년 1월 29일생으로 이원희 사장보다 두 살 많다. 단국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와 현대자동차 인도법인에서 이사·상무·전무를 거쳐 2009년 인도법인장(부사장)에 올랐다. 2012년 기아차로 옮겨 재경본부장, 2014년 재경본부장(사장)이 된 뒤 2014년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2014년부터 기아타이거즈 대표이사 사장도 겸임하고 있다.
박 사장은 지난해 재계, 노동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8월 31일 법원이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기아차는 재판부가 지급을 명령한 4223억 원을 기준으로 통상임금으로 부담할 비용을 1조 원 안팎으로 추산한다. 이 여파로 기아차는 9월부터 잔업을 중단하고 특근을 최소화했다.
9월 4일 박 사장은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대회의실에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열린 자동차업계 간담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통상임금 패소를 생각하지 못했다”며 “후속 대응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생산기지를 해외 이전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같은 달 28일 서울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유차배출 오염물질 저감 자율관리 협약식’에서는 기자들과 만나 “통상임금 때문에 힘들다”며 “국내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항소했고, 대법원까지 가겠다”고 말했다. 앞서 항소장 제출기한인 27일 기아차 측과 노동조합 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41부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25일 기아차가 밝힌 2017년 경영실적은 현대차보다도 상황이 더 좋지 않다. 기아차는 전년 대비 판매량 10.3% 감소(301만 8093대→270만 7717대), 매출 1.6% 증가(52조 7129억 원→53조 5357억 원), 영업이익 73.1% 감소(2조 4615억 원→6622억 원), 순이익 64.9% 감소(2조 7546억 원→9680억 원)를 기록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액은 증가했음에도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1조 원가량의 비용 반영 여파 등으로 수익성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며 “올해도 주요 시장의 성장세 둔화로 경영환경 불안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력 신차 판매를 확대하고 신흥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며 수익성 방어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기아차는 지난해 11월 인도에 연간 생산량 30만 대 규모의 공장을 짓기 위해 총 13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확정했다. 2019년 9월 완공 목표다. 생산량의 80%를 현지에 팔고 20%는 중동 등에 수출한다는 세부 생산·판매 계획도 정했다. 산탄데르·씨티·스탠다드차타드·ANZ·ING 등 외국 금융사로부터 투자비의 절반인 6억 4000만 달러를 조달하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각각 2억 5000만 달러와 7000만 달러를 대출키로 했다. 기아차는 나머지 3억 4000만 달러를 자체 자금으로 투자한다.
이와 별도로 기아차는 통상임금 1심 패소에 따른 충당금과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1조 원 규모의 외화채권을 발행했다. 인도 공장이 완공되면 중국과 미국에서 판매 급감으로 고전하는 기아차에 새로운 버팀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사장은 현대자동차 재직 시절 인도법인에서 이사·상무·전무·부사장까지 승진했고 2009~2012년 인도법인장까지 지냈다. 기아차로서는 기존에 인도 공장이 없었으므로 기아차 내에는 인도 전문가가 없다. 현대차에서 인도법인장을 지낸 만큼 기아차 내에서는 박 사장이 인도 공장을 짓는데 최고의 전문가다. 2016년 대표이사를 중임한 박 사장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우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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