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삼성전자가 사상 유례 없는 50 대 1 액면분할을 추진한다. 액면분할이 이뤄질 경우 삼성전자 주주들의 주식 수는 50배가 늘어나고 액면가는 50분의 1로 줄어든다. 그간 삼성전자가 일부 주주들의 액면분할 요구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가운데, 성사된 이사회의 결정을 두고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액면 분할이 오는 3월 23일 열릴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식으로 통과될 경우, 이르면 5월 중 삼성전자의 주당 거래 가격은 현재 주가 기준 5만~6만 원으로 대폭 낮아진다. 대신 발행주식 수가 64억 1932만 700주로 늘어나게 된다.
삼성전자는 액면분할 결정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할 기회를 갖게 되고, 2018년부터 대폭 증대되는 배당 혜택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통 주식시장에서 액면분할은 뚜렷한 호재나 악재로 분류되지 않는다. 기업마다 액면분할을 하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 영원할 것 같았던 ‘코스피 황제주’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은 삼성전자의 셈법에 관심이 쏠린다.
일반적으로 액면분할의 목적은 유동성 확대다. 거래가 활발해야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간 액면분할을 시도한 대기업의 경우 주가가 오른 경우가 많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0년 4월 10 대 1 액면분할을 단행한 SK텔레콤의 주가는 한 달 새 11.5% 올랐다.
삼성전자 주가도 액면분할 발표와 동시에 급등했다. 발표 당일인 31일 오전 11시 기준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 대비 5.9%나 올랐다. 다만 이러한 주가 급등이 액면분할 때문만은 아니다.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한 4분기 실적발표가 함께 이뤄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4분기 메모리 반도체 호황과 OLED 패널 공급 확대에 힘입어, 지난 2017년 매출 239조 5800억 원, 영업이익 53조 6500억 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배당 수준도 파격적이다. 전년 대비 무려 46% 증가한 5조 8000억 원의 배당을 결정했다. 이사회는 보통주 2만 1500원, 우선주 2만 1550원의 배당을 결의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는 배당액을 더욱 대폭 늘릴 방침이라고 미리 약속했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액면분할 발표 이후 주가 하락에 대한 2중, 3중의 대책을 세운 이유는 황제주 프리미엄 상실에 따른 후속대책으로 풀이된다. 주당 가격이 높을 경우 유동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주가 상승 여력은 적지만, 반대로 폭락할 우려도 적다. 여기에 코스피 시장을 대표한다는 의미도 더해지면서 주가는 그동안 천천히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수익성에 대한 전망은 양호한 가운데 유동성이 늘어나 투자자 확보 차원에서 긍정적”이라면서 “누구나 싼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고 배당이 양호하다는 점에서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연구원은 “이로 인해 기업가치 평가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올해나 내년까지 삼성전자 실적 전망이 양호하다는 점에서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코스피 시장이 나름대로 호황을 누린 가운데, 삼성전자는 오히려 실적 대비 주가가 횡보를 지속한 것도 그간 액면분할에 대해 유보적이었던 이사회의 마음을 돌린 것으로 풀이된다. 황제주 프리미엄을 포기하더라도 거래량을 늘리는 것이 주가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렸다.
지난해 4월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전면 철회하면서 주가를 인위적으로 눌러야 할 이유도 사라졌다. 통상적으로 액면분할을 통한 주가 부양은 지주회사 전환을 통한 오너 일가 지분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 재판 진행으로 오너 일가 경영권 승계 작업도 일시 중단된 상태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등도 액면분할과 관련해 아직 입장을 정리 중이거나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이번 삼성전자 액면분할은 주가 부양 등을 위한 경영적 판단으로 보인다”며 “아직까지 이를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와의 관련 짓기는 아직 섣부른 생각”이라고 말했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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