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25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조선일보’ 기고에서 “정부 정책을 의사의 진료 행위로 비유하자면, 단기적으로는 아픈 부위를 낫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환자의 체질을 건강하게 개선하는 일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주택정책도 단기적, 장기적 해법을 복합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며, 투기 억제나 과열된 수요를 조절하는 것은 단기 해법이면서 전체 부동산시장의 건전성을 높이는 장기 해법이 된다고 제안했다.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은 최소 몇 년이 걸리지만, 시장에 심리적 안정을 가져오는 단기적 효과도 크다는 것이다.
장관에게 묻고 싶었다. 현재 부동산시장에서 가장 아픈 부위가 어디인지.
지난 보수 정권에서는 침체된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완화 정책에 집중했다. 세제혜택, 공급량 증가 등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데 정책적인 지원을 했다. 시장이 활성화되면 시세는 오른다. 오르는 폭이 비정상적으로 높으면 거품이 된다. 2007년 전후처럼 말이다. 2007년 부동산 폭등은 2003~2005년의 초강력 부동산 규제를 무색하게 했다. 시장의 힘을 정부 정책으로 통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2010~2014년 서울 부동산시장 침체는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정부 규제로 조정됐던 것일까?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고 국내 경기침체가 있었으며 2007년 폭등한 가격의 조정기이기도 했었다. 정부 규제는 시장의 흐름을 궁극적으로 바꾸어 놓진 못했다. 2005년의 정부 정책이 효과가 있었다 하더라도 5년이 지난 2010년에서야 달성한 셈이 된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의미다.
통상적으로 진보 정부는 시장 활성화보다는 주거복지에 관심이 높다. 현 정부도 주거복지를 위해 100만 호 가까운 복지주택 제공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정책은 지난해 발표 이후로 볼 수가 없다. 복지주택을 기다리는 서민층들은 ‘내 집 마련’을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기존 주택의 전·월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인지, 부담스럽지만 대출을 받아서 주택을 구매할지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
현 정부는 부동산시장에서 두 가지 숙제를 스스로 제안하고 풀려고 하고 있다. 강남 집값 잡기와 복지주택 제공이다. 현재의 정부 움직임을 보면 강남 집값 잡기에만 혈안이 된 것처럼 보인다. 주거복지에 대한 이야기는 진행 과정을 알 수 없다.
2018년 새해 벽두부터 주택시장이 뜨겁다. 서울은 강남·서초·송파·용산·성동·마포·양천 등 기존 인기 지역 중심으로 매물이 사라지고 있다. 당연히 시세는 연일 상승한다. 정부는 고가 아파트만을 대상으로 정책을 펴는 것처럼 보인다. 전·월세 거주 860만 가구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내놓고 있지 않고 있다.
강남 집값을 잡으면 전·월세 가구의 주거복지가 저절로 상승하는 것일까? 주택정책은 양극화된 시장을 함께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사람과 내리기를 바라는 사람의 정반대 이해관계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시장 참여자의 다양한 이해관계, 거시경제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주택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정부의 처방과 해법은 복합적이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8·2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주거복지 로드맵’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은 즉각적 치료와 체질개선이라는 장·단기 해법을 함께 담았다고 주장한다.
올해부터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이 부활하고, 새로운 DTI(총부채상환비율) 제도가 도입된다. 4월이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시행된다. 보유세와 임대소득세는 역시 강남 위주의 주택 소유자들을 타깃으로 개편할 예정이라고 한다.
주거복지는 정부 힘으로 이뤄내야 하는 정책이다. 주거복지가 필요한 국민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적은 주거비로 양질의 주택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얼마나 추진됐는지 알 수가 없다. 임차인들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3년? 5년? 7년? 10년?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정부 정책은 정치적이어야 한다. 표심으로 당선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은 유권자들이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어떤 경우든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그런 정책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되어야 한다.
8·2 부동산 대책은 실시 전 과열된 부동산시장에 대한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생각한다. 디테일하게 따져보면 모순점도 있지만, 큰 틀에서 정부의 방향성을 국민들에게 전달했다. 공감할 수는 없어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100% 만족스러운 정책은 없다.
정부에서도 이번 정책의 타깃은 강남 집값 잡기와 주거복지 로드맵이라고 이야기했다. 어찌 된 일인지 두 정책 모두 효과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강남 집값만 오른다.
재건축 가능 연한을 30년에서 40년으로 연장하는 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정부가 핵심 지역으로 꼽은 강남구는 해당하는 아파트가 거의 없다. 대부분 40년차가 넘었기 때문이다. 이 방향대로 정책이 추진되면 노원구, 도봉구 등 30년차 아파트 밀집 지역 중에서 급매물이 나올 것이다. 그 지역 내 가격인하 효과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타깃인 강남을 제외한, 이미 조정이 시작된 다른 지역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미 재건축 단계에 진입한 단지들은 희소성이 높아지므로 가격이 오를 것이다. 새로 입주한 아파트들도 한동안 상품적인 측면으로 경쟁 대상이 없어졌으므로 가격이 오를 것이다. 대부분 강남권 아파트들이다.
얼마 전 현 정부 고위 공직자들이 대부분 강남권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 기사가 정부 정책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쓰였다는 것도 알겠다. 결과를 가지고 짜 맞추려는 것도 알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를 보며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한 정부 인사에게 강남 집값을 왜 잡으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정말 이렇게 답변했다. “다른 지역 국민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수치적으로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강남구민보다 많다. 정치인으로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다음 선거에서도 당선이 되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일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은 왜 강남에 살고 있을까. 그 지역에 사는 이유를, 그 지역에 살려는 이유를 정작 본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렇게 그 지역 집값 잡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더 이상 강남은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이미 그들만의 공화국이 되었으니까. 차라리 강남 주민들의 희망대로 강남 특구로 지정하고, 자체 예산을 마음대로 쓰고, 자체 정책을 추진하는 대신, 세금은 더 많이 걷어 주거복지 로드맵을 위한 비용으로 쓰는 방안을 추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강남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강남 말고 다른 지역, 특히 강북 지역에서 서울 평균 이하 지역에 더 집착하는 것이 정치적이지 않을까. 노원구 월계동, 상계동에서 재건축만을 기다리는 주민들이 당황하고 있을 모습들이 떠오른다. 명색이 서울인데 의정부시나 남양주시, 양주시보다 관심을 못 받는 도봉구 주민들도 어른거린다. 이 지역들은 언제까지 강남의 들러리 역할을 해야 할까.
일련의 정부 정책들이 방향성을 가지고 추진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방향성이 누구나 예측 가능한 방향이면 좋겠다. 서울에서 가장 취약한 동북권(도봉·노원·강북구 등) 주민들에게 피해는 주지 않았으면 한다.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와 부동산 팟캐스트 1위 ‘부동산 클라우드’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부자의 지도, 다시 쓰는 택리지’(2016) ‘흔들리지 마라 집 살 기회 온다’(2015) ‘수도권 알짜 부동산 답사기’(2014) ‘대한민국 부동산 투자’(2017) ‘서울 부동산의 미래’(2017)가 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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