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고려 말기 유학자 문익점은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몰래 가져와 우리 민족의 의복문화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다만 현대의 기준으로 냉정히 보면 그는 산업스파이란 지적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주름 개선제 ‘보톨리눔 톡신’(보톡스)의 원료로 사용되는 보툴리눔 균주 출처 공방과 관련해 현대판 문익점 논란이 일고 있다.
2006년 ‘메디톡신’을 상용화한 메디톡스와 2014년 ‘나보타’를 상용화한 대웅제약 사이에 서 균주 출처를 놓고 2016년부터 설전이 벌어지더니 2017년 법정공방으로까지 비화됐다. 메디톡스는 “균주와 제조공정 일체를 대웅제약이 훔쳤다”고 주장한다. 대웅제약은 “메디톡스가 마국에서 밀반입한 균주를 제공받았다는 의혹부터 검증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 미국과 한국 서로 다른 토양, 염기서열 일치할 수 있나
‘1g만으로 100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살 수 있다’는 강력한 독성으로 인해 보톨리눔 균주는 이용에 강력한 규제를 받고 있다. 보톨리눔 균주를 확보하기 어려워 1991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 한 다국적 제약사 엘러간을 포함해 보톡스를 생산하는 제약사는 전 세계 8곳에 그친다. 여기엔 국내 제약사 메디톡스, 대웅제약, 휴젤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메디톡스는 2016년 11월 “대웅제약의 ‘나보타’ 보톨리눔 균주의 유전체 중 독소 관련 염기서열 1만2912개가 메디톡스 균주와 100% 일치한다”며 대웅제약이 균주를 훔쳤다고 주장했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균주의 염기서열은 생물체를 규정하는 고유한 정보다. 당사의 균주는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것이다. 그런데 대웅제약은 경기도 용인시 토양에서 균주를 발견했다고 한다”며 “서로 다른 나라의 토양에서 완벽하게 일치하는 유전체를 가진 균주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이다. 전문가들이 비교 분석하면 도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 대웅제약에 이에 응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메디톡스는 지난해 10월 대웅제약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서 메디톡스는 “2007년 12월 메디톡스에 입사한 이 아무개 씨는 메디톡신의 제조 및 생산·개발 등에 참여했다. 이 씨는 2008년 퇴사할 때까지 대학동기이자 대웅제약 직원인 서 아무개 씨에게 균주 정보를 전달하고 12만 달러(약 1억 3000만 원)의 대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웅제약 관계자는 “당사와 메디톡스의 균주 출처가 다르다. 독소 단백질의 염기서열이 일치하는 건 흔한 일이다. 기업비밀이나 마찬가지인 부분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라고 반박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전직 메디톡스 직원이 퇴사한 시점은 2008년이다. 당사는 2010년 6월 경기 용인시 대웅제약 공장 근처 마구간 흙에서 균주를 분리배양하는데 성공했고 2014년에야 상용화할 수 있었다. 후발 주자인 당사의 나보타가 보톡스 최대 시장인 미국 진출에 속도를 내자 이를 방해하기 위해 메디톡스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맹독성 물질 이삿짐 가방에 밀반입 논란
메디톡스가 균주를 획득하는 과정도 논란에 휩싸여 있다. 메디톡스는 메디톡신 개발에 이용된 보톨리눔 균주를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박사학위 과정 시절 은사였던 양규환 박사로부터 제공받았다고 밝혔다.
양 박사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이 대학 환경독성연구센터에서 근무한 후 1979년 2월 KAIST 생물공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됐다. 메디톡스는 양 박사가 위스콘신대로부터 연구목적으로 공여받은 보톨리눔 균주를 갖고 귀국했다고 설명했다.
논란은 양 박사가 2010년 3월 25일 KBS 1TV ‘기업열전 K1’에 출연해 “보톨리눔 균주를 이삿짐 가방에 싸서 귀국했다”고 말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한 관계자는 “맹독성 물질인 보툴리눔 균주에 대해 국제사회는 엄격한 규제와 관리를 하고 있다”며 “보툴리눔 균주는 강한 독성으로 생물테러의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어 고위험병원체로 지정돼 있다. 생물무기 금지협약에 따라 원칙적으로 국가 간 운송이 금지돼 있다. 아울러 정부의 허가 없이 보유와 이동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고 밝혔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양규환 박사는 인터뷰에서 균주를 짐 가방에 몰래 싸왔다고 한다. 학자로서 독성 물질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라며“메디톡스 설명대로라면 보툴리눔 균주를 위스콘신 대학에서 유래했고 이를 합법적으로 취득했다는 증빙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톨리눔 균주를 국내로 반입했다는 1979년은 미국에서 생물무기의 개발, 생산과 비축을 금지하는 생물무기금지법이 비준(1974년)된 이후였다. 미국 수출관리법위반 소지도 있다”며 “국내에 밀반입한 균주를 메디톡스가 보유했다면 균주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메디톡스 측은 “양 박사가 귀국하던 1979년 2월은 보톨리눔 균주를 고위험병원체로 규정하기 이전이다. 또한 수출관리법 위반 역시 발효된 시점도 1979년 9월로 당시 미국법상 어떠한 문제도 없다”며 “생물무기금지협약은 경제적, 기술적 발전을 위한 사용을 허용하고 있고 생물무기테러방지법은 2002년 시행됐다. 따라서 양 박사의 균주 반입 당시 위반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비즈한국’은 양규환 박사로부터 직접 당시 상황을 듣고자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메디톡스는 주장한 대로 대웅제약이 보톨리눔 균주를 훔쳤다면 대웅제약은 도덕성 측면에서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메디톡스 역시 맹독성 균주를 부실하게 관리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대웅제약 주장대로 국내 토양에서 균주를 발견했다면 메디톡스는 미국 시장 진출을 놓고 경쟁사를 음해하려 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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