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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중환자실이 없습니다, 늘… 적자이기에

운영할수록 적자라 병원마다 최소화…비용만큼 지불하는 시스템 만들어야

2018.01.18(Thu) 23:43:35

[비즈한국] 나는 응급실에서 전원(병원을 옮김) 문의도 받는다. 전용 휴대폰이 있어 24시간 당직 전문의가 교대하며 받는다. 이 전화는 응급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우리 병원으로 오기 위한 유일한 정식 통로다. 병실과 인력 상황을 파악한 전문의가 늘 직접 응대하는 시스템이다.

 

내가 어제 한 일은, 밤사이에 걸려온 전원 전화 여덟 통을 전부 못 받겠다고 답한 것이다. 전부 중환자실이 필요한 환자였고, 며칠간 우리 병원 중환자실은 도저히 여유가 없었다. 실은 안 그런 적이 별로 없었다. 인계받으며 가장 먼저 듣는 말은 ‘중환자실이 없다’고, 인계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중환자실이 없다’고, 내원한 중환자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도 ‘중환자실이 없다’고, 다른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에 가장 먼저 하는 말도 ‘중환자실이 없다’다. 이렇게 미안하게도 여덟 통을 전부 내쳤다. 

 

서울 시내 한 종합병원의 중환자실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비즈한국DB


‘중환자실이 없다’는 중환자를 다루는 사람에게 힘이 쭉 빠지는 말이다. 하지만 뒤집을 수 없는 절대 논리 같은 말이기도 하다. 없으면 없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논리로도 이를 이길 수 없다. 다른 중환자를 빼고 내 환자를 넣을 수도 없고, 없는 중환자실을 만들 수도 없다. 중환자실이 없으면 무조건 아무것도 못 한다. 다른 병원에 가거나 그 병원으로 오면 안 된다. 문제는 간밤에 여덟 통이 날아올 정도로, 대부분 병원이 ‘중환자실이 없다’.

 

중환자실 환자가 사망하거나 상태가 좋아져서 여유가 생기는 날도 있다. 그러면 원내에서 안 좋아진 사람이나, 수술이 끝난 사람, 본원으로 내원한 중환자가 채운다. 그마저도 남으면 이처럼 타원에서 득달같이 전화가 와서 중환자실은 곧 찬다. 빌 때는 별로 없다. 지난주에는 심정지까지 겪으며 필사적으로 처치한 젊은 여자가 드디어 팔부 능선을 넘어 살아나는 추세였다.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보면 안정적일 것 같았다. 하지만 중환자실이 없었다. 당연한 것처럼. 중앙 전원 센터에 문의하자, ‘오늘은 서울 시내에 중환자실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미 상황을 알았음에도 절망적이었다.

 

중환자실이 없어 환자가 죽을 뻔한 얘기만 모아도 작가의 명예를 걸고 대하소설로 써낼 수 있다. 이 문장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식은땀이 난다. 지지난주에는 강동에 있는 병원에서 뇌출혈 환자가 오겠다고 했다. 마침 자리가 있어 받았다. 출발할 때 의식이 있다고 했는데, 도착하니 묻는 말에 대답을 못 했다. 흔들리는 차에서 뇌출혈이 늘어난 것이다. 즉시 머리를 열어야 했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흔해서 소설로도 못 쓴다.

 

의사가 생각하는 중환자실 입실 기준은 급사 가능성이다. 일반 병실에서는 8시간에 한 번 정도 상태를 체크하지만 중환자실에서는 10분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심정지에 대처하고, 안 좋아지는 기미만 있어도 즉시 처치에 나설 수 있다. 원칙상 뇌출혈, 심근경색, 패혈증, 큰 수술 직후 등은 무조건 중환자실이다. 정말 당장 죽기 직전의 사람들이 살아나는 곳이다. 인구가 노령화되면서 중환자실은 더욱 수요가 늘고 있다.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 입을 모아 말한다. ‘중환자실이 없다.’

 

대체 왜 내 의사 생활 10년간 중환자실은 무조건 없었을까. 이유는 놀랍게도 하나다. 적자가 나기 때문이다. 이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다. 모든 환자가 중환자실로 직행해야 하는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 팀은 불철주야 많은 의료진이 일한다. 그들은 비참할 정도로 성실하게 생활한다. 이 실상을 이제 전 국민이 다 안다. 그리고 그들은 한 해 10억 원씩 적자를 낸다. 센터장부터 그렇게 일하는 팀이다. 그리고 그들은 투자에 실패하거나 시장경제에 적응을 못하지 않았다. 그냥 일했고, 적자가 났다.

 

일반적인 중환자실의 적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중환자 두 명에 간호사 한 명이 적정하지만, 세 명도 보고 네 명도 본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품과 도구들도 마음대로 못 쓴다. 쓰면 쓸수록 적자고, 인원을 제대로 확보하면 아주 크게 적자다. 이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사고도 많이 난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도 적자다. 각 병원은 시스템 때문에 간신히 유지하는 정도다.

 

현 의료계에는 거대한 자본이 오가며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여기서 흑자의 힘은 정말이지 위대하다. 몇 년 전 신생아 중환자실 수가를 두 배로 올린 것만으로 병상이 50%가 늘었다. 하지만 역사상 흑자가 난 중환자실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상황에서 중환자실 투자는 자살과도 같다. 망하는 지름길이다. 중환자실을 일부러 투자했다는 병원은 단언컨대 한 곳도 못 들어 봤다.

 

여기서 정부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당장 중환자실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비용은 조금 들어야 한다. 그 결과 수가는 안 올리고, 몇 개의 병원을 지정해 중환자실 확충 기준을 제시하고 지원금을 주었다.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은 중환자실 병상을 딱 그만큼만 채우고 지원금을 받았다. 그렇지 않은 병원은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중환자실은 딱 그만큼만 늘었다. 대신 지원금을 받는 병원을 윽박질러 어떻게든 환자를 책임지도록 했다. 중환자가 사망하면 권역으로 지정된 몇몇 응급실 탓으로 돌렸다. 그게 지금 이 시스템이다. 책임만 늘었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본전만 돼도 대형 자본이 투자를 할 것이다. 규모를 늘리는 것은 어떻게든 보탬이 되니까. 하지만 적자가 나니, 중환자실은 원천적으로 늘어나지 않고, 환자 유치에는 소극적이다. 그래서 이국종 교수가 대단한 것이다. 그는 병원에 계속 충원을 요구해서 적자를 늘리고 있다. 알려진 대로 병원장과 사이가 안 좋을 만하다. 

 

하지만 그의 유명세가 아니었다면 그나마 병원에서 들어주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것은 그가 거의 일방적으로 만든 센터다. 그것으로 오늘 아주대병원의 위상이 있으며, 이 역경을 이겼으니 그만큼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병원도 아주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적자를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허나 이게 조금이나마 흑자였다면 기라성 같은 다른 병원들은 아주대병원을 추월하고자 오늘부터라도 경쟁할 것이다.

 

현장에 있는 우리는 중환자실 부족에 대해서 환자에게 이렇게 설명해야 한다. “지금 중환자실이 없습니다.” 환자는 보통 죽기 전이라 의식이 없다. 대신 보호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병원이 중환자실을 안 짓는군.” “왜 하필 지금 중환자실이 없을까. 운이 없군.” 운이 없는 게 아니다. 늘 그러니까. 여기서 중환자실이 간신히 유지될 정도의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은 공단과 정책이다. 이를 위해서는 할 일은 간단하다. 비용을 딱 비용만큼 지불하는 시스템만 만들면 된다. 현대 의학에서 가장 생사가 오가는 분야이니, 장기적으로라도 꼭 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돈을 덜 주고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다. 추가로 자금을 마련하기는 번거롭고 계산하면 큰돈이다. 특별히 티가 안 나는 분야인 데다가 국민에게 돈을 더 달라는 말은 싫다. 그래서 그 말은 안 하고, 모아놓은 돈은 아끼고, 최소한의 돈을 들여 몇 개 병원을 지원금으로 달래며 윽박지른다. 

 

욕은 중환자실을 마련하지 않은 병원과 치료를 그때그때 적절히 할 수 없는 의사가 먹는다. 여기서 정부는 누적된 공단 흑자를 비급여의 급여화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중환자실 처치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이 혜택을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이 누릴 것이고, 이것으로 표를 얻을 것이다. 선심 행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중환자는 살아나 중환자실이 없었다고 항의하지 못한다. 불의의 사고를 겪은 유가족은 워낙 인명이 그런 줄로만 알고 한탄한다. 이들은 잘 몰라 시스템에 분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중환자실이 있는 병원을 가는 것이 지금보다는 낫다고, 그나마도 찾으면 다행이라고 한다. 덧붙여 이것이 차선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실상 환자에게는 그냥 악에 불과하다. 우리는 누군가를 대신해 악을 꼭두각시처럼 행하고 있다. 다만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 유독 중환자실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문제는 이것밖에 없다. 중환자실은 적자이고, 사람들은 발을 구르다 죽는다. 그리고 나는 다음 출근에 이 말을 반복하러 가야 한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지독한 하루’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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