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12월 28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건물 철거 현장에서 대형 크레인이 넘어지며, 크레인의 붐대가 시내버스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인해 시내버스 내에서 하차하려 서 있던 A 씨(여·53)가 사망하고, 승객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끊이지 않는 크레인 사고에 대한 사회적 비난 여론이 큰 가운데 발생한 이 사건은 당일 톱 뉴스로 보도되며 많은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사고 직후 사망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두고 관련 회사들이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 사고 관련 업체는 총 5개사로 시행사인 에이엠플러스자산개발, 시공사인 도시의미, 철거업체인 태림이앤디, 크레인업체인 남도크레인, 시내버스회사인 영인운수다.
12월 28일 오전 9시 40분경, 650번 시내버스(외발산동↔낙성대입구)가 공항대로 버스 중앙차로(강서구청사거리·서울디지털대학교 정류장)에서 정차했다. 승객들이 승하차 하는 사이 버스정류장 오른편 도로에 5톤짜리 굴착기가 공중에서 떨어졌다. 곧이어 버스 안에 서 있던 승객 A 씨 위로 대형 크레인의 붐대가 떨어졌다. 그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나머지 승객 15명은 급하게 버스에서 뛰어내리다 부상을 당했다.
16명의 사상자를 낳은 이번 사고는 에이엠플러스자산개발이 소유하던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에이엠플러스자산개발은 애경그룹과 군인공제회가 2008년 3월 합작 설립한 부동산개발회사다. 5층 높이 건물벽을 허물기 위해 대형 크레인에 굴착기를 메달아 건물 옥상에 올리던 중 크레인이 전도되면서 50m 높이의 크레인 붐대가 꺾여 도로를 덮친 것이다. 현장을 감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대형 크레인이 연약한 지반에 설치돼 전도됐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강서경찰서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남도크레인의 강 아무개 기사(41)와 철거업체인 태림이앤디 토공사의 김 아무개 공사현장 관리소장(41), 시공사인 도시의미 건설사의 전 아무개 관리소장(57)을 불구속 입건하고, 9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11일 검찰은 수사 보강 후 구속영장을 재신청하라며 반려한 상태다.
또한 경찰은 철거업체인 태림이앤디가 무단으로 철거공법을 변경한 정황이 포착돼 서 아무개 이사(41)와 정 아무개 감리단장(56)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수사는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보상 절차는 더디기만 하다. 시행사인 에이엠플러스자산개발과 시공사인 도시의미는 철거 작업에 직접 관여한 철거업체 태림이앤디와 크레인업체인 남도크레인에 보상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 유족이 선임한 유재원 변호사(메이데이 법률사무소)는 “시행사와 시공사는 ‘아무런 과실이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며 뒤로 한 발 물러나 있다. 철거업체와 크레인업체만 상해보험 처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며 “현재로는 크레인업체 직원이 장례식장에 찾아와 부의금을 전달한 게 보상의 전부다. 사망자 유족은 장례를 치르느라 친척들에게서 돈까지 빌렸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철거업체와 크레인업체도 피해 보상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이들 업체가 가입한 보험사에서 보상절차를 대신 진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시행사인 에이엠플러스자산개발 측은 크레인 전복 사고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에이엠플러스자산개발 관계자는 “사망자나 부상자에게 보상금을 지원할 필요는 없지만, 철거업체와 크레인업체의 보상절차가 완료되면 사망자 유족과 부상자에게 충분한 위로금을 전달할 계획이었다”며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면 과실이 어느 업체에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밝혀지겠지만, 에이엠플러스는 시행사일 뿐 크레인 전복 사고와는 무관하다. 보상 책임을 철거업체에 떠넘기는 건 결코 아니다”고 해명했다.
시공사인 도시의미 측은 ‘비즈한국’의 거듭된 취재 요청에도 “아는 내용이 없다”, “담당자가 부재중이다”는 말만 반복할 뿐 피해 보상과 관련된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철거업체인 태림이앤디과 크레인업체 남도크레인에도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크레인업체를 제외한 시행사, 시공사, 철거업체 측은 피해자 장례식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도의적 책임마저 회피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유족에 따르면 크레인업체 직원 5명만이 장례식장에 찾아왔으며, 유족에 사과의 뜻과 함께 부의금 50만 원을 전달했다.
사망피해자 A 씨의 아들 B 씨(27)는 ‘비즈한국’에 “크레인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며 “어머니가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위로금은 아니더라도 사과는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토로했다. B 씨의 아버지는 4년 전 지병으로 사망했고, 취업준비생인 B 씨는 현재 소득이 없는 상태다. B 씨의 남동생(25) 또한 미취업 상태다.
이런 지적에 대해 시행사 에이엠플러스자산개발 관계자는 “사망자의 안타까운 가정사는 언론을 통해 접했지만, 친척들에게까지 돈을 빌리며 장례비를 충당한지는 알지 못했다”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충분한 위로금을 전달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A 씨가 사망한 650번 시내버스의 운송회사인 영인운수도 아무 과실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인운수 관계자는 “버스가 주행 중에 발생한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운송회사에는 보상 책임이 없다. 재해사고 과실은 철거업체에 있기 때문에 보상의 책임은 철거업체에만 있다”고 설명했다.
사망자 유족의 법률대리인인 메이데이 법률사무소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영인운수도 보상의 책임이 따른다며, 내주 중 영인운수를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할 계획이다. 유재원 변호사는 “시내버스가 잠시 정차했을 때 발생한 재해사고의 경우 운송회사도 보상의 책임이 따른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며 “정차한 버스 안에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승객들이 아무도 없는 경우에만 보상의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사망자 유족은 국과수 현장감식 소견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지난 9일 강서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국과수는 연약한 지반에 아웃트리거를 설치해 크레인이 전도됐을 것으로 판단한 건데, 유족 측은 50m 길이의 크레인 붐대에 5톤 무게의 굴착기를 매달았으므로, 과중한 무게에 의해 크레인이 전도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한 정황 증거로 허용 하중이 표기된 크레인 매뉴얼을 제출했다.
유 변호사는 “피해보상보다 중요한 게 사고의 원인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라며 “강서경찰서와 국과수는 다시 한 번 현장 감식을 통해 재수사를 해야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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