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持株會社)는 말 그대로 ‘주식을 갖고 있는 회사’라는 뜻입니다. 계열사 주식을 가지고 그 회사를 지배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회사를 지주회사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홀딩스 컴퍼니(Holdings Company)’로 쓰입니다. 기업명에 홀딩스라는 단어가 붙으면 지주회사라는 뜻입니다.
2001년 LG그룹이 국내 처음으로 전환 작업에 착수해 2년 만에 지주회사 체제를 완성했습니다. 이후 일부 기업들이 지주사로 전환했고, 17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엔 200여 개 기업이 지주사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엔 지주사 직함이 없던 굵직한 국내 대기업들이 대통령 공약과 정부 정책에 맞춰 지주사 개편을 완성했거나 전환 작업을 준비 중입니다.
지주사는 1987년 우리나라 경제정책에 처음 등장합니다. 10여 년간 빠른 속도로 성장한 한국 산업과 함께 덩치를 키운 ‘재벌’들을 정부 차원에서 규제하면서부터입니다. 당시엔 지금과 반대로 정부 차원에서 지주사 설립을 금지했습니다. 지주사가 주식만 가지고 많은 회사 조직의 정점에 올라,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지배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시각 때문이었습니다.
지주사 체제가 발을 딛지 못한 자리는 ‘순환출자’라는 관행이 채웠습니다. 순환출자 역시 주식을 가지고 여러 회사를 지배하는 구조로 지주사와 비슷하지만, 그 형태가 복잡합니다.
한 기업 그룹에 A, B, C라는 회사가 있다고 가정해 볼까요? 이 그룹 총수가 세 회사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각 회사 주식 지분을 상당 부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 총수는 A 기업에는 충분한 주식을 갖고 있지만 B, C 기업 주식은 상대적으로 적게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순환출자는 여기서 활용됩니다. A 회사가 B 회사 주식을 사고, B 회사는 C 회사 주식을, C 회사는 다시 A 회사 주식을 사는 방식(A→B→C→A)입니다. 즉, 순환이란 단어 그대로 한 바퀴 도는 겁니다. 이 경우 그룹 총수는 회삿돈으로 매입한 주식을 자기가 구매한 것처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순환출자 구조의 부작용이 심각했다는 점입니다.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 그룹의 몸집이 커지면서 연결고리가 더 복잡해졌습니다. A 회사의 계열사들도 순환출자 구조, B 회사의 계열사들도 순환출자 구조를 갖는 식으로, 이해관계가 얽히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식을 갖지 않은 A 회사가 C 회사 경영에 간섭하는 일도 생겼고, 회사가 가져가야 할 이익을 복잡한 순환 구조를 이용해 빼돌린 뒤 총수나 임원들이 사적으로 사용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지주회사 체제는 이 문제의 대안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계기로 10년 만에 허용됩니다. 이때 지주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10년 전 ‘피라미드 정점에 오르는 수단’에서 ‘경영위험 분산 및 유연한 구조조정이 가능하다’로 바뀌었습니다.
지주사 구조는 순환출자와 비교해 간단합니다. A 기업이 B, C 기업의 주식을 모두 가져 지주회사가 되고, B, C 회사를 그 아래 자회사로 둡니다. A 기업 주주는 모든 자회사를 지배합니다. 주식 보유 외에 다른 사업도 할 수 있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지주사는 자기가 가진 자본의 2배까지만 빚을 낼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업을 하든 자유지만, 자회사 주식 보유를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자회사가 아닌 회사 주식은 5%를 초과해서 보유할 수 없습니다. 지주사 빚이 늘거나 경영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자회사에도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B 회사와 C 회사 역시 같은 그룹에 속하더라도 서로의 주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자회사끼리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경영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룹 내에서 어떤 자회사가 잘했고 못했는지 투명하게 알 수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주사 체제 도입 후에도 여전히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한 기업이 많습니다. 파악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연결 고리를 가진 기업도 있습니다. 그 중 일부가 최근 지주사 전환 작업에 나선 겁니다.
기업들은 그동안 왜 지주사로 바꾸지 않았을까요? ‘돈’ 때문입니다. 지주사 전환에는 들어가는 돈이 많습니다. 증권 전문가들은 평균 5조 원가량이 투입된다고 분석합니다.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대기업이라도 섣불리 도전하기는 어려운 규모입니다.
특히 주식 지분 확보에 돈이 필요합니다. 지주회사가 되려는 A 회사는 자회사 B, C의 주식을 가져야 하는데, 자회사가 증권시장에 상장했다면 주식 지분 20%, 상장하지 않은 회사는 40%의 지분을 가져야 합니다. ‘자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도 같습니다. A 회사는 그 외에도 그동안 복잡하게 연결한 순환출자 구조를 풀기 위해 별도로 주식을 사고파는 작업을 해야 하고, 지주회사를 만든 뒤 2년 내 앞서의 지분들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과징금도 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한 기업이 모든 자회사의 지분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회사별로 가진 주식을 교환하거나 합병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지난 1월 2일 지주사 전환 작업을 마친 롯데가 가장 최근 사례입니다.
롯데그룹은 2014년 6월 이전까지 순환출자구조가 74만 8963개에 달했습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15년 순환출자 해소를 처음 발표한 후 합병 및 분할합병 방식으로 이를 줄여왔고, 지난해 10월 ‘롯데지주’가 세워지면서 순환출자 고리는 13개까지 감소했습니다. 그리고 1월 2일 롯데상사 등 6개 비상장사 투자 사업 부문을 롯데지주에 통합하기로 결정하면서 지주사 체제 전환을 마쳤습니다. 이제 롯데지주 아래엔 51개 계열사가 남게 됩니다.
이러한 지주사 전환 작업을 증권시장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기업들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그동안 회사 가치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며 “사업 부문별로 독립적인 경영체제를 구축해 경영 효율성은 물론 지배구조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경쟁력 있는 자회사들의 적정 가치를 재평가 받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국내 자산 총액 5조 원 이상 공시 대상 기업집단은 총 57개로, 최근 전환 계획을 밝힌 효성과 현대산업개발을 포함해 현재 지주사 체제는 25개입니다. 미전환 기업은 총 32곳으로, 이 가운데 7곳은 지주회사로 지정되지 않거나 전환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KT, KT&G, 포스코, 대우조선, 대우건설의 경우 지분구조는 지주회사 체제지만 공정위 기준에서 지주회사로 지정되지 않았고, 에쓰오일(S-Oil)과 한국지엠은 외국계 주주가 지배하고 있어 지주사 전환 가능성이 낮습니다. 결국 국내 대기업집단으로 구분된 기업은 지주사 체제 전환 기업 반, 지주사 체제 미전환 기업 반으로 거의 정확히 나뉩니다.
롯데와 같이 현대중공업과 효성, 우리은행, 크라운해태제과 등도 이미 지주사 전환 작업에 착수했고, 올해 또는 내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반면 삼성과 미래에셋 등 지주사 전환 계획이 없다고 밝힌 일부 기업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제 지주회사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됐다는 점입니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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