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AI 스피커 시장이 100만 대를 돌파했다. SK텔레콤 ‘누구’와 KT ‘기가지니’의 누적 판매량이 각각 40만 대와 50만 대, 지난 연말 LG유플러스가 네이버와 손잡고 출시한 ‘프렌즈 플러스’, ‘우리집 플러스’ 등의 초도 물량이 15만 대가량으로 추산된다.
아마존 ‘에코’나 구글 ‘홈’과 비교해 아직 완성도나 기술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면에는 통신 3사의 공짜 마케팅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즉, 인터넷 및 IPTV 가입자를 대상으로 무료에 가까운 혜택을 내세우며,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짜 AI 스피커를 비롯한 각종 단말기가 기존 가입자의 약정을 연장시키는 ‘꼼수’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와 소비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비단 AI 스피커뿐만이 아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홈 사물인터넷(IoT), 기가와이파이 공유기 등도 전부 인터넷, IPTV 이용 약정과는 별도의 약정을 만들어 가입자들을 붙들고 있는 셈이다.
# AI 스피커 ‘공짜로 안기고 슬그머니 약정’
KT는 1월 31일까지 ‘기가지니 콜라보’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인터넷 서비스인 ‘기가인터넷’과 IPTV 서비스 ‘올레TV’ TV15 요금제를 동시에 가입하면 월 9900원을 할인해 준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실제 요금 할인이 아니다. 월 임대료 6600원이 드는 AI 스피커 ‘기가지니’와 월 임대료 3300원이 드는 무선 공유기 ‘기가와이파이 홈’을 전액 면제 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문제는 이미 KT를 사용하고 있는 사용자의 경우 이 같은 조건이 오히려 더 불리하다는 사실이다. 임대 약정과 인터넷 및 IPTV 이용 약정은 별개이기 때문. 따라서 인터넷 약정이 끝나더라도 단말기 약정이 끝나지 않을 경우 울며 겨자 먹기로 인터넷 서비스 업체를 유지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AI 스피커를 무료로 준다는 말에 덜컥 가입했다가, 막상 인터넷을 해지하려고 할 때 단말기 임대 약정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적잖다. 실제로 KT는 지난해 8월부터 해당 이벤트를 진행하며, 기존 KT 이용자를 대상으로 각 영업점과 대리점에 기가지니 무료 이용 권유 전화 마케팅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외에도 보도자료를 보면 KT는 올레TV를 5년 이상 장기 이용한 사용자가 ‘TV12’ 이상 요금제로 변경하면 기가지니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준다’는 표현이 아니라 ‘사용할 수 있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바로 3년 약정 때문이다. 이는 KT를 5년이나 이용한 고객이 더 비싼 TV 요금제와, 3년 약정을 추가하는 조건으로 받는 일종의 보상이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 가입 영업점에서 제시하는 조건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보상이라는 지적이 따른다.
KT 고객센터에 따르면 약정기간 내에는 사용자가 기가지니를 반납한다고 해도 지금까지 할인 받은 금액을 전부 위약금으로 물어야 한다. AI 스피커가 인터넷 연장 가입을 위한 꼼수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오는 이유다.
# 결합하면 공짜지만, 갈라서면 ‘제값’
KT 이외에 LG유플러스나 SK브로드밴드 등 경쟁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LG유플러스는 네이버와 손잡고 AI 스피커 ‘프렌즈 플러스’를 출시하며 ‘고객 감사 대축제’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이 이벤트는 기가인터넷-IPTV 결합상품 혹은 홈 사물인터넷(IoT) 신규 가입자에게 스피커를 무료로 증정한다는 내용이다. 무료로 증정한다는 표현을 썼지만, 진짜 무료는 아니다. 1년 약정이 걸려 있으며, 약정 기간 내에 인터넷과 TV를 해지할 경우, AI 스피커 역시 일할 계산해 별도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
물론 인터넷과 홈 IoT 모두 약정이 3년이기 때문에 신규 가입자의 경우 AI 스피커가 인터넷 가입 해지에 발목을 잡을 가능성은 적지만, 그렇다고 공짜로 주는 것은 결코 아닌 셈이다.
그간 LG유플러스는 홈 IoT에서 단말기 임대 약정과 서비스 가입 약정을 별도로 가져가는 영업 방식으로 적잖은 재미를 봤다. 여기에는 기가인터넷과 홈 IoT 결합 사용자를 대상으로 5000원을 깎아주는 핵심요금제 할인 제도가 그야말로 ‘핵심’으로 작동한다.
지난 2015년 출시된 최초의 IoT 제품인 ‘플러그’의 월 이용요금(이용료, 기본료, 단말기 할부금)은 6550원. 하지만 약정 할인으로 4000원이 할인되어 2550원만 내면 된다.
여기에 핵심요금제를 통해 5000원이 추가 할인되기 때문에, IoT를 이용하는 것이 이용하지 않는 것보다 더욱 요금이 저렴하다는 점을 내세워 많은 가입자를 확보했다. LG유플러스가 업계 최초로 100만 홈 IoT 가입자를 확보하게 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영업 방식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문제는 기존 LG유플러스 인터넷 사용자가 약정 중간에 홈 IoT 서비스에 추가 가입할 때 발생한다. 서비스 약정과 IoT 약정이 따로 계산되기 때문에, 인터넷 및 TV를 해지 할 경우 핵심요금제 할인을 받을 수 없어, 결국 사용 요금을 고스란히 내야 한다. 그렇다고 홈 IoT를 중도 해지 할 경우에는 상당한 위약금이 뒤따른다.
# 기가와이파이가 필수? ‘NO’
통신 3사는 기가인터넷 서비스와 함께 2.4Ghz와 5Ghz 듀얼 채널을 지원하는 802.11 ac 규격의 기가와이파이 공유기도 임대하고 있다. 해당 공유기를 사용하면 유선뿐 아니라 무선에서도 기가급 속도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기가와이파이 공유기의 월 사용료는 3사 동일하게 1만 2000원. 하지만 3년 약정과 결합을 조건으로 같은 액수를 할인해주기 때문에 실제로 소비자가 지불하는 임대료는 없다.
하지만 기존 100M 광랜 사용자가 약정 도중 기가인터넷을 업그레이드 할 경우에는 주의해야 한다. 인터넷 속도를 높인다고 해서 약정 기간이 늘어나지는 않지만, 기가와이파이 공유기 임대 약정이 별도로 발생해 3년간 지속되기 때문이다.
물론 보다 비싼 요금을 내고 기가인터넷을 신청한 만큼 무선 인터넷도 기가급으로 쓰기 위해서는 사실상 필수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임대보다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기가비트를 지원하는 무선 공유기를 구매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유리하다.
통신 3사도 공식적으로 가입자가 기가와이파이 공유기 임대 거부 의사를 밝히면, 억지로 설치해주지 않는다. 다만 기가인터넷 가입 시 기가와이파이 공유기 임대가 필수라고 안내한다면 해당 직원의 실적을 위한 꼼수일 가능성이 크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최근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각종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단말기 임대 약정을 남발하고 있다”며 “약정은 업체와 가입자 간의 계약인 만큼 새로운 서비스 일수록 꼼꼼하게 따지고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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