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보험사들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의 보험 가입을 꺼리고 있다. 금융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한 거래소는 보험이나 거래소 자체 보상이 유일한 피해자 구제책. 때문에 투자자 피해 구제는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가입 요건이 깐깐했다. 보험사가 요구한 정보를 빠짐없이 전달했는데도 긍정적 답변은 받지 못했다.” 1월 중순 개설을 앞둔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의 말이다. 이 거래소는 지난해 12월부터 A 보험사 ‘사이버보험’ 상품을 가입 신청했지만 최근 계약 체결 보류 통보를 받았다. 현재로선 거래소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 관계자는 “보험 가입이 어려울 것 같아 거래소 자체 보상 대책을 강화해 개설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보험은 가상화폐 투자자들을 위한 ‘최소의 안전장치’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가 금융업이 아닌 통신판매업으로 구분돼서다. 사업자등록증을 갖추고 구청 등에 신고만 하면 영업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서버 다운이나 해킹 등 피해가 발생해 거래소가 파산해도 예금자보호법 등처럼 금융업 수준의 투자자 보호수단은 없다. 보험 또는 거래소 자체 보상 외에 별다른 투자자 구제책이 없다는 얘기다.
국내 20여 가상화폐 거래소 중 사이버종합보험에 가입한 곳은 단 둘뿐이다. 거래량 기준 국내 3대 거래소 안에 드는 ‘빗썸’과 ‘코인원’이다. 코인원은 지난해 8월 가상화폐 거래소 최초로 현대해상 ‘뉴사이버시큐리티’ 사이버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고, 빗썸은 같은해 10월 현대해상 ‘뉴사이버종합보험’과 흥국화재 ‘개인정보유출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다. 중소 가상화폐 거래소 ‘유빗’도 보험에 가입했지만 지난해 12월 해킹 피해로 파산했다. 나머지 가상화폐 거래소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없이 영업 중이다.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말 그대로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다. 최근 국내 가상화폐 거래 규모가 3조 원에 육박하지만 코인원과 빗썸의 보상한도는 각각 30억 원과 60억 원이다. 대규모 피해가 발생해도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의 보상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개설된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계약을 하고자 보험사에 꾸준히 문의했지만 반려됐다. 보상한도도 기존 수준(빗썸 60억 원) 이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보내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험사들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안전과 신뢰가 확보되지 않은 가상화폐 거래의 리스크 때문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관리하던 저축은행도 부실사태가 발생한 마당에 아무런 관리·감독도 없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신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소가 서버다운, 해킹 등 사고에 취약하다는 점도 신뢰도를 낮춘다. 가상화폐의 블록체인 기술은 기존 금융기관 시스템과 비교해 사이버 사고로부터 완벽에 가깝게 안전한 것으로 알려지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는 블록체인 기반이 아닌 거래소 내부 서버로 영업 중이다. 가상화폐 거래가 크게 늘면서 블록체인 처리속도가 거래량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올랐기 때문이다. 모든 데이터가 ‘중앙’에 집중된 만큼 사이버 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가상화폐 거래량 폭증 시 발생하는 거래소 서버다운도 이 때문이다.
손해율 측정이 어려운 점도 계약을 꺼리는 원인이다. 보험에 가입한 가상화폐 거래소가 거의 없는 데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포함한 국내 전체 기업의 사이버보험 가입률도 1.3%(보험연구원 통계, 2015년)에 불과하다. 손해율 측정을 위한 표본이 부족하다.
손해율 측정의 잣대인 ‘가상화폐’ 자체의 정체성이 불분명한 점도 문제다. 보험사들은 일반적으로 화폐의 경우, 면책 요건으로 규정해 손실을 보상하지 않는다. 있지도 않은 돈을 잃어버렸다고 하고 보상해 달라고 하는 등 도덕적해이 가능성이 높아서다. 여행자보험도 카메라나 휴대폰 등 물품 도난은 보상하지만 화폐 도난은 보상하지 않는다.
빗썸과 코인원과 보험 계약을 체결한 현대해상은 약관에 제3자의 재산 정의를 준화폐로 규정하면서, 거래소가 파산하더라도 해킹으로 인한 가상통화 도난 피해를 보상하지 않기로 했다. 이들의 계약은 거래소 고객의 가상통화 피해액보다 정보자산의 유실·훼손·유출에 의한 소득 손실 또는 운영비 증가나 시스템·정보의 복구 중 발생한 비용, 사업 중단 비용을 보상하는데 중점을 둔다.
보험사들이 연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보험사들은 ‘코리안리’ ‘뮌헨 재보험’ 등 재보험사를 통해 사이버보험의 위험을 분산시키고 있다. 코리안리 등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보통 사이버보험 보장액의 10~30%를 재보험에 가입한다. 보험사가 손실을 전액 떠안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반대로 보면, 보험사에 이어 재보험사도 측정되지 않는 규모의 보험금을 지급해야한다.
다른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소가 보험업계에서 ‘새 먹거리’라고 할 수 있는 사이버보험 시장을 키울 것이란 전망이 높았다”면서도 “다만 해킹으로 인한 거래소 파산, 최근 정부 규제 움직임 등으로 가상화폐 거래소 보험은 ‘독이 든 성배’라는 말이 나온다. 보험사 손실은 곧 일반 보험 고객들의 손해다. 일부 기업들이 지분 매입 방식으로 거래소를 개설하고 있어 신뢰도와 안전성 등에 대해 더 지켜볼 필요는 있겠지만, 당분간 보험사들은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보험 계약에 신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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