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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알앵알] 비트코인 한 닢

비트코인 광풍은 우리 시대 욕망의 상징이 아닐까

2018.01.04(Thu) 17:50:54

[비즈한국] 내가 강남역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34자리 비트코인 지갑 주소가 적힌 종이를 보이면서, “황송하지만 이 1비트코인이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거래소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그래픽=이세윤 디자이너


거래소 대리는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계좌를  조회해 보고, “좋소.” 하고 내어 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거래소를 찾아 들어갔다. 품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종이 메모를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2000만 원 정도에 거래된다는 1비트코인이오니까?” 하고 묻는다.

 

거래소 책임자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비트코인을 어디서 해킹했어?”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채굴이라도 했단 말이냐?” “요즘 누가 비트코인을 채굴한답니까? GTX1080이 달린 컴퓨터는커녕 전기세 낼 돈도 없습니다. 어서 도로 주십시오.” 거지는 손을 내밀었다. 거래소 사람은 웃으면서, “좋소.”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비트코인 주소가 제대로 적혔는지, 대소문자는 정확한지 확인해 보는 것이다. 거친 엄지손가락이 스마트폰 화면에 닿을 때마다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다시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해킹한 것이 아닙니다. 채굴한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1비트코인을 줍니까? 0.0001비트코인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0.00001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블로그며 카페에 비트코인 거래 정보를 올리고 제 지갑 주소에 기부를 청해 1사토시, 1사토시를 조금씩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사토시를 0.00001비트코인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10만 번 하여 겨우 이 귀한 1비트코인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비트코인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비트코인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비트코인으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비트코인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 피천득의 ‘은전 한 닢’ 패러디

 

# 장면2 : 비트코인과 다단계

 

기자 업무 특성상 한낮에 카페에서 마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굳이 엿듣지 않아도 비트코인에 관한 대화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대부분 지금이라도 비트코인을 사도 될지에 대한 이야기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라는 다소 생소하고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하루는 50대로 보이는 여성 두 명과 비슷한 연배의 남성 일행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됐다. 그 남성은 비트코인은 사서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채굴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며, 자신이 소개한 A 기업에서 해시파워(hash power)를 사면 등급에 따라 10년 혹은 평생 추가 비용 없이 지속적으로 비트코인을 채굴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중년 여성은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A 기업에 대한 안 좋은 소문도 있다며 걱정을 표시했다. 하지만 남성은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지금 클라우드 마이닝 회사 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악성 루머가 많다며 두 여성을 끊임없이 안심시켰다. 결정이 늦으면 더는 투자를 할 기회가 사라진다며 엄포까지 놨다.

 

대화를 듣다보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대화에 등장하는 단어들을 조합해 어떤 회사인지 찾아봤다. ‘.eu’ 도메인을 단 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가상화폐 투자 상품을 팔고 있는데, 가격도 100달러부터 2만 5000달러까지 다양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한 번 투자하면 평생 매일 가상화폐를 얻을 수 있다고 소개하는 부분이다.

 

국내 검색 사이트를 통해 한글로 된 소개 자료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유사한 내용이 한글로 번역돼 있었고, 추가로 다른 투자를 유치할 경우 제공되는 혜택에 대한 내용도 있다. 다른 회원의 추천을 받을 경우 실적에 따라 직급이 결정되는데 브론즈, 실버, 골드, 루비, 다이아몬드, 블랙다이아몬드 등 10단계가 있고, 직급이 올라가면 여행을 제공하거나 포르쉐,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을 준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 회사가 사기인지 아닌지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영업 구조 자체는 그동안 보아오던 다단계가 확실했다. 단지, 그 대상이 옥장판이 아니라 비트코인이라는 점만 달랐을 뿐이다.

 

# 장면 3 : 은전 한 닢과 비트코인

 

온 나라에 비트코인 광풍이 분다. ‘​모 기업의 아무개 대리가 가상화폐 투자로 대박이 나서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잠수를 탔다더라’라 하는 루머가 매일 직장인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요즘이다. 심지어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 금지 가능성까지 시사했지만, 단지 몇칠간 주춤했을 뿐, 보란 듯이 1비트코인당 2000만 원 고지를 탈환했다.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가상화폐까지 덩달아 난리다.

 

요즘 전국 대도시에 위치한 호텔에는 이름도 생소한 수많은 가상화폐 투자 설명회가 끊임없이 열린다고 한다. 한 호텔 예약 관계자는 “지난해 중순부터 가상화폐 관련 행사 예약이 이어지고 있다”며 “방문 손님들을 살펴보면 나이대도 다양하고 직업을 가늠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굳이 기존 화폐를 두고 가격 변동이 심한 비트코인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익명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과, 해외 송금이 편리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의 실질적인 가치도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중순부터 투기가 과열되어 시세가 폭등하기 전에도 비트코인의 가치가 서서히 오른 이유도 이와 같다. 세계 각국의 범죄 조직이 비트코인의 유용성에 눈 뜨기 시작했고, 중국과 같이 외화반출 통제가 심한 국가를 중심으로 비트코인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악성코드를 통해 컴퓨터 전체의 데이터를 암호화한 다음,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대가로 몸값을 요구하는 ‘랜섬웨어’도 비트코인으로 인해 생겨난 신종 범죄다.

 

하지만 이러한 수요만으로 지금의 비트코인 시세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이를 두고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갑자기 스파크가 튀었다’고 묘사했다. 모든 투기가 그렇듯이 급격한 연쇄작용으로 가치가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수요가 가치를 만들어내면서 시세가 폭등했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비트코인의 가치가 더 오를지 말지는 그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어떤 전문가는 1비트코인당 1억 원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또 다른 전문가는 하루아침에 0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만 모두가 동의하는 한 가지는 현재 비트코인의 시세가 결코 정상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프라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극소수의 온라인 서비스조차 시세가 요동치면서 지금은 결제를 받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그렇게 비트코인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피천득의 수필 ‘은전 한 닢’에 나온 거지에게 은전은 물물교환의 수단인 화폐가 아니라, 욕망에 대한 집착과 성취의 기쁨을 상징한다. 지금 우리에게 비트코인은 어떤 의미일까.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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